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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호중, 쉼표 후 더 뿌리 깊게 내딛는 새걸음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이 돌아왔다. 크레센도로 넓혀왔던 곡절 많은 가수인생이, TV조선 '미스터트롯'(2020)을 통해 포르테로 휘몰아쳤고, 입대로 인해 다시 2년 여간의 긴 쉼표를, 그리고 이제 포르티시시모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하고 있다. 많은 이가 알다시피 김호중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때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커다란 쉼표를 찍어야 했다. 하지만 '군백기'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여전히 뜨겁고, 오히려 더 파급력있게 존재감을 넓혔다. 김호중은 자리를 비웠어도, 떠나지 않은 그의 잔재인 '노래'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군백기도 결코 그에게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대체복무를 하며 발달장애인들을 돌봤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삶의 됨을 알게 됐다. 지난달  9일 소집 해제가 되던 날, 복지관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는 그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얻게 됐다. 그 덕분인지 오랜만에 마주한 김호중의 모습에서 마음이 충족되어진 사람의 건강함이 보였다. 내고 짓는 표정과 말투, 그리고 아우라 모든 것에서 자신감과 활력이 있었다. 

김호중은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취재진과 마주했다. 연말까지 스케줄이 빡빡한 탓에 언론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 기회가 지금 뿐이었다. 당장 이탈리아 화보 촬영부터, 이달 클래식 앨범 발매를 계획하고 있고, 전시회도 개최한다. 9월부터 연말까지 전국 투어도 돌고, 그 사이 디지털 싱글도 발매할 예정이다. 듣는 이마저 혀를 내두를 강행군이었지만, 오히려 김호중은 문제 없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 무대가 제일 편해요"라고 말하는 김호중이었다.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쉬는 동안에 무대가 가장 그리웠어요. 입대 전에는 코로나19가 너무 심해서 공연을 해도 함성도 허용이 안됐었고 오로지 박수만 됐었거든요. TV를 보면서 다시 변화된 공연 소식들을 보게 됐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었고, 제 자신을 시험 아닌 시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소집해제 하고 무대에 서보니까 '이제 제 자리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느 곳보다 무대에서 제일 편안한 느낌을 받았어요."

김호중은 소집해제가 된 후 이틀 뒤 KBS1 '평화콘서트'로 복귀식을 치렀다. 놀랄 수밖에 없는 쾌속 행보였다. 정비할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시간의 부재는 그를 녹슬게 한 것이 아닌, 농익게 했다는 걸 해당 무대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대체복무를 하며 출퇴근이 가능했던 만큼, 퇴근 이후의 시간을 온통 음악에 할애해온 남모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나면 작업실에 가서 음악도 듣고 작업도 했어요. 오히려 주어진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성급해 하거나 조바심내지 않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면서 했어요. 작업실 가서 작업하고 노래도 부르고요. 공백기 동안 불안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재미나게 잘 지냈던 것 같아요. 주말이 되면 팬카페에 글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안부 인사 정도는 소통할 수 있었어요. 재밌는 건 군대 가고 난 후 회원수가 늘더라고요. 불안한 것들을 팬분들이 다잡아주셨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실제 김호중의 팬클럽 회원수는 12만 명을 돌파하며 나날이 회원수를 키워갔다. 일명 '군백기'로 불리는 때에 이 같은 파급력을 지닌 이가 있을까 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호중은 "절 좋아해 주시는 이유는 아무래도 노래가 좋아서 같아요. 제 노래를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노래에 대한 김호중의 자신감이 느껴진 대목이다. 김호중의 말대로 그의 최고의 장점이자 매력은 반박불가한 가창력이다.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엔터테인먼트

장애인 복지관에서의 일도 언급했다. 그가 대체복무를 했던 곳은 서울에 위치한 한 장애인 복지관이다. 발달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했던 그는,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들과 생활하며 함께 순수한 감정들을 느끼고 돌아봤다. 아직까지 복지관에서 연을 맺은 이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그는, 소집해제 하던 날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펑펑 울었던 일화까지 털어놨다.  

"제게 주어진 임무는 (발달 장애인) 친구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거였어요. 사실 쉽게 적응하지는 못했어요. 다 발달 장애인 친구들이라 인지 수준이 3~4살에 머물러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들이 저를 인지하고 이름도 알고 손을 내밀어주는 시간이 오더라고요. 지금도 매일매일 복지관 선생님들, 학부모님들과 연락해요. 사실 그런 친구들을 살면서 마주할 기회가 없잖아요. 나름 인생 살면서 여러 감정을 다 느껴봤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을 통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또 느꼈어요.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 어떤 일이건 간에 진심은 통한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 친구들이 진심을 더 빠르게 느끼더라고요. 사람을 대하는 자세라던지 진심으로 다가가는 법을 가장 크게 느끼게 됐어요."

성장의 시간, 어쩌면 김호중의 '군백기'는 그에게 찾아든 또 다른 행운이었을 지도 모른다. 안팎으로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오히려 정진할 수 있었던 그.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닌, 행복한 추억을 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처럼, 눈빛에 서린 진심은 바라는 길을 따라 걸을 만한 충만함이 보였다.

"쉼표 아닌 쉼표를 찍었잖아요. 그 안에서 굉장히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느꼈어요. 돌아볼 시간도 많았고요.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인간으로서 성숙하지 못했던 부분도 많이 채워졌어요.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노래를 잘한다' '가창력이 좋다'는 평가보다 그냥 저를 딱 떠올리면 '이 노래 덕분에 행복했었지'라는 감상을 안기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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