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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2.07.01 10:25
  • 수정 2022.07.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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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둥근데, 왜 '축구 예능'만 인기일까?

'뭉치면 찬다2',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뭉치면 찬다2',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바야흐로 스포츠 예능 전성시대다. 축구, 야구, 농구 등 프로무대가 있는 인기 종목을 비롯해 탁구, 골프 등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이 앞다투어 제작됐다. 이에 발맞춰 ‘레전드’라 불릴 만한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연예계에 자리를 옮겼다. 강한 체력을 요하는 만큼 이른 시기에 전성기를 보내고 은퇴한 선수들이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로서 제2의 삶을 열고 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편차가 크다. 스포츠 예능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은 손에 꼽는다. 게다가 특정 종목에 집중된다. SBS ‘골때리는 그녀들’과 JTBC ‘뭉쳐야 찬다’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롱런하고 있는 반면, 다른 종목의 반응은 평타 수준이거나 신통치 않다. 왜일까?

#축구공은 ‘특히’ 둥글다

2019년 첫 선을 보인 ‘뭉쳐야 찬다’는 3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즌1의 시청률은 10%가 넘었다. 현재 방송 중인 시즌2 역시 5∼7%의 안정적 시청률을 누리고 있다. 

‘뭉쳐야 찬다’의 재미는 의외성에서 발견됐다. 양준혁·김병현(야구), 이봉주(마라톤), 여홍철(체조), 진종오(사격), 이형택(테니스), 김동현(이종격투기) 등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모든 운동을 잘 한다’는 편견을 깨부순 것이 ‘뭉쳐야 찬다’의 킬링 포인트였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주옥같은 솜씨를 뽐내던 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던져주자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개발’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웃음이 터졌다. 여기에 각 레전드들이 간간이 보여주는 주종목의 녹슬지 않은 실력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됐다. 

내로라하는 레전드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반갑다. 그런데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은 새롭고 재미있다. 세계 무대를 누비던 이들이 정작 잘 정비된 조기축구회에 맞불어 패하는 모습에서는 씁쓸함이 아니라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 배턴은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이어받았다. 지난해 6월 시작한 이후 ‘뭉쳐야 찬다’를 넘는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한때 10%에 육박했으며 현재는 6∼7%대의 안정된 성적을 올리고 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성들의 축구도전기를 그린다. 국가대표 출신 가족들로 구성된 ‘FC 국대패밀리’, 개그우먼들로 구성된 ‘FC 개벤져스’, 키가 큰 모델들로 구성된 ‘FC 구척장신’, SBS 예능 ‘불타는 청춘’ 출연진으로 구성된 ‘FC 불나방’ 등이 맞붙는 경기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들이 출중한 실력을 갖춰서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성장기와 열정에 방점을 찍는다. 축구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터라 실수를 연발하고, 몸보다 마음이 앞선다. 그러다보니 부상자도 속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화가 없을 때도 따로 만나서 연습한다. 그 연습의 결과는 경기력으로 증명된다. 

SBS 관계자는 "대중은 이런 과정을 TV를 통해 지켜본다. 그 속에서 출연진들의 진정성을 엿보게 된다"면서 "축구를 잘해서가 아니라, 축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골때리는 그녀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골때리는 그녀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왜 축구일까?

이같은 분석에 대해 "대부분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공은 둥글다"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공이 ‘특히’ 더 둥글다고 말하는 이유는, 가장 서민적인 스포츠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남미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 낡은 축구공 하나에 의지한 채 살아오다가 세계를 호령하는 축구선수로 거듭나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축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장비발’이나 규율이 적은 편이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배트, 글러브를 비롯한 다양한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탁구 역시 탁구채가 필수다. 골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긴 시간을 투자해 골프장까지 이동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서민에게 접근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축구는 어떤가? 축구공과 뛰어놀 공간만 있으면 된다. 굳이 축구화와 유니폼을 차려입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도 보통 축구교실에 가장 먼저 간다. 상대방과 크게 신체 접촉을 일으켜 다치지만 않으면 공을 좇으며 실컷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 골대는 돌 2개를 가져다 놓고 골대인 척해도 된다. 집단 경기이기 때문에 처음 공을 차보는 이들이 몇 명 포함돼도 경기 흐름에 큰 지장이 없다. 

타 종목에 비해 실력 편차가 적다는 것도 축구가 예능 소재로 더 사랑받는 이유다. 축구는 ‘발’로 한다. 발은 손보다 정교하지 못하다. 농구에서는 게임 당 100점 안팎의 점수가 난다. 하지만 축구는 2∼3골 정도가 일반적이고, 아예 0대0 무승부로 끝날 때도 많다. 그만큼 발로 축구공을 다루는 것은 어렵다. 이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 ‘골 때리는 그녀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이강인의 누나인 이정은의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가 FC 국대패밀리에 참여하며 다른 팀과 격차가 벌어졌다. 이는 축구 예능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져줬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조기 축구에서도 소위 ‘선출’(선수 출신)에게는 페널티를 적용한다.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라면서 "이처럼 발로 하는 집단 스포츠인 축구는 하향평준화가 예능적 재미를 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이 프로 선수들의 경기가 아니라 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축구 예능을 보는 것은, 결국 경기력보다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심과 의외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는 이런 대중이 원하는 포인트가 가장 적합한 종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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