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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최정훈이 쓴 낭만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잔나비, 사진제공=페포니뮤직
잔나비, 사진제공=페포니뮤직

잔나비가 지난 10일 두 번째 소곡집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을 발매했다. 1번 트랙 '레이디버드'부터 마지막 트랙 '슬픔이여안녕'까지 총 4곡이 수록됐고, 타이틀곡은 앨범명과 동명인 2번 트랙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이다. 집에 머문 오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만든 노래들이다. 최정훈은 '초록을거머쥔우리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수록곡들은 풀숲을 거닐 때와 같은 상쾌한 감상이다. 최정훈이 프로듀싱을 맡아 담백하게 담아낸 모든 소리들은, 진솔하고 은은하게 귓가를 파고든다.

앨범 크레디트에는 잔나비 보컬인 최정훈의 이름이 가득하다. 책임 프로듀서, 앨범 프로듀서, 작사, 작곡, 편곡, 보컬, 코러스, 키보드, 신디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등 앨범 전반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잔나비 멤버로는 김도형이 3번 트랙 '여름가을겨울 봄.' 일렉 기타에 유일하게 참여했다. 사실상 최정훈의 앨범에 가깝다. 전곡 작사 작곡 편곡에 앨범 프로듀싱까지 홀로 맡았으니, 최정훈의 소곡집이라 불리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2020년에 냈던 첫 번째 소곡집에선 나름 김도형과 비슷한 지분으로 앨범 작업을 진행했지만, 현재 김도형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터라 참여도가 낮다. 장경준도 결혼 후 활동을 잠정 중단했으니 잔나비를 이끌어 갈 사람은 현재 최정훈 밖에 없다.

최정훈은 혼자 남아있는 상황에서 잔나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소곡집을 택했다. 정규 앨범을 혼자 내기엔 모양새가 그렇고, 보다 가벼운 느낌의 소곡집이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가 처음 소곡집을 기획하며 한 말은 '지나칠 뻔한' 것들을 챙기며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한 다짐이자 휴식이었다. 그래서 특별하게 새로운 걸 시도하지도, 발전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초록을거머쥔우리는'도 마찬가지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다 써내려간 곡들을 지난 사운드와 중첩시켜 살짝 주제만 바꿔서 냈다. 

잔나비, 사진제공=페포니뮤직
잔나비, 사진제공=페포니뮤직

그래서 이번 소곡집의 노래들은 정서가 친근하다. 정규 3집 수록곡 '밤의 공원'의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여름으로'란 구절에서 끌어다 쓴 제목처럼 말이다. 지난 잔나비를 떠올리게 하는 맑은 감상은 여전한 최정훈의 목소리만큼이나 익숙하게 귓가에 착 감긴다. 타이틀곡은 봄날의 공원 어디쯤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이끈다. 초록, 여름, 우리와 같은 감상적 낱말들에서 오는 향취는 요즘 날씨와 더할나위 없이 일맥상통한다. 토이 음악을 듣는 것도 같은 옛 풍의 사운드는 힘을 뺀 최정훈의 목소리와 만나 묘한 향수를 이끌기도 한다.

이 밖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사진으로 찍고 싶은 날의 기분을 좋아하는 영화 제목에 담아낸 ‘레이디버드’, 봄이 모든 여정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여름가을겨울 봄.’, 슬픔이 오고 가는 모습을 반대편 유람선에 비유한 ‘슬픔이여안녕’까지 보고 느낀 것들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 곡들이 이 앨범에 말랑한 기운을 채워 넣는다. 그리하여 꾸미지 않은 맑은 영혼의 순수가 맴도는 이 앨범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대리 낭만을 선사한다.

잔나비의 음악은 위로 그 이상의 낭만이다. 노랫 속 화자를 만물이 태동하는 봄이란 계절로 묘사하고, 나풀나풀 스르르르와 같은 부사들로 달콤한 은유를 더한다. 최정훈의 노랫말은 먼지 쌓인 다락방에서 뜻밖에 발견한 한 편의 시집이자, 오랜만에 방 청소를 하다 우연히 책상 구석에서 발견한 푸르던 시절 써내려간 옛 일기장이다. 이러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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