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뜻밖의 여정', 나영석 PD의 '뜻밖의 진부함'

사진출처=방송 화면 캡처
사진출처=방송 화면 캡처

나영석PD는 예능 PD 중에서는 드물게 ‘사단’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출자 중 하나다. 그 기원은 16~17년 전인 KBS2 ‘1박2일’ 시절로 거슬러 간다. 그 당시 인연을 맺었던 얼굴들과 나PD는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 연출자로서는 신효정PD 그리고 작가로는 이우정, 최재영, 김대주 작가 등이 있다. 2012년 나PD가 CJ ENM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이들은 굳건히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예능왕국’ tvN의 초석을 놨다.

나PD는 출연자에 있어서도 ‘보던 얼굴’을 선호하는 편이다. ‘신서유기’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판에 박힌 예능인보다는 신선한 얼굴, 특히 배우 쪽에서 유망주를 찾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서진, 차승원, 윤여정 등의 배우들은 나PD의 예능적 ‘페르소나’와 같다. 이들과 함께 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나PD는 지난 8일 새로운 프로젝트 ‘뜻밖의 여정’을 가동했다.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시리즈를 통해 깊은 교분을 맺고 있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자 이 과정을 함께 하고자 만든 기획이다. 두 사람은 저녁자리를 하다가 우연히 윤여정이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듣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줄 기획을 만들었다.

사실 윤여정의 브랜드는 일흔이 넘은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번 새롭다. 물론 나PD의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지만 깐깐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철두철미하면서도 어딘가 어수룩한 윤여정의 매력은 지난해 영화 ‘미나리’의 세계적인 인기와 관련 행사에서 보인 유머러스한 입담과 어울려 더욱 새로워졌다. ‘뜻밖의 여정’은 그의 유쾌함 못지않게 미국 일정을 진중하게 해내는 그의 집중력에 방점을 맞췄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여기까지라면 ‘뜻밖의 여정’의 가치는 십분 발휘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첫 방송된 ‘뜻밖의 여정’은 프로그램 속에서 ‘뜻밖의 진부함’을 드러냈고 이는 ‘뜻대로 된 캐스팅’에 비롯됐다. 바로 배우 이서진의 합류 그리고 나영석PD와의 관계성이었다.

이서진은 ‘뜻밖의 여정’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진짜 주인공인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을 비롯한 각종 일정을 바쁘게 보낼 때 이서진은 LA 주변을 나PD와 누빈다. 프로그램에는 매니저로 기재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별개의 일정을 갖는다. 그는 나PD와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면서 2020년 방송된 프로그램 ‘뉴욕뉴욕’의 LA판을 재현했다.

나PD와 이서진의 관계는 ‘1박2일’ 시절부터 일관됐다. 진중한 연기를 하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1박2일’에서 ‘미대형’으로 등장한 이서진의 모습은 의외로 허술했다. 겉으로는 까다로워 보이고 투덜대지만 정작 과제가 주어지면 과몰입하는 순수한 모습은 나PD의 뷰파인더를 통해 자주 포착됐다. 그래서 그는 ‘꽃보다 할배’의 짐꾼이 되고, ‘삼시세끼’의 맏형이 되고, ‘윤식당’의 전무, ‘윤스테이’의 부사장이 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뉴욕뉴욕’에서는 아예 버디무비 형태의 파트너가 된다. 나PD의 깐족거림이 가장 잘 통하는 대상이 이서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윤여정의 진정성을 전면에 내세운 ‘뜻밖의 여정’에서 두 사람의 호흡은 변방으로 밀려난다. 아니, 오히려 성급하게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진정성과는 동떨어진 설정이 된다. 윤여정은 나름의 진중함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그에게는 진짜 매니저와 조력자들이 존재하니 나PD와 이서진은 낙동강의 오리알이 된다. 이서진은 여느 프로그램과 달리 윤여정의 여정에 합류하지 못하고 겉돌며, 나PD와 주고받는 입씨름도 이제 수년이 지나니 진부하고 식상한 설정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 더 이상 재미있지가 않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그렇다면 윤여정의 미국행에 나PD와 이서진은 왜 동행하게 됐을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특유의 여행예능을 구현하지 못한 나PD의 갈증도 원인이 됐을 수 있겠다. 비로소 해외여행의 족쇄가 풀려나가는 지금, TV 안에서는 가장 먼저 해외의 생생한 화면을 보이고 싶은 나PD의 욕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2~3년 만에 펼쳐진 미국의 그림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문제는 나PD의 의도가 유효해 보이는 것이 딱 거기까지라는 느낌이다. ‘뜻밖의 여정’은 제목대로 배우 윤여정 뜻밖의 모습에 방점을 찍는다. 배우의 잔잔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물결치는 일상을 보여야 할 기획에 예능적 재미를 위해 오래된 콤비와 함께 나선 욕심이 뜻밖의 파열음을 냈다.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윤여정에게도 이서진에게도 나영석PD에게도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전개를 내보이고 말았다.

프로그램에는 늘 함께 하는 얼굴들이 다 등장한다. 신효정PD, 이우정 작가, 김대주 작가가 보였다. 그리고 늘 보던 얼굴인 이서진도 등장했다. 물론 실력자인 사람들과 오래 본 세월이 재미로 승화되는 것이 나PD 예능의 특징이지만 ‘이제는 지겹다’는 일부 의견도 서서히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 듯싶다. ‘뜻밖의 여정’은 뜻밖의 지점에서 이 평가가 유효함을 증명하고 말았다.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명제를 역설하려는 게 아니다. 필요한 부분은 변해야 하고 필요한 부분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나PD의 새 작품은 모두를 지키려고만 한다. 본인들만 재미있고 즐겁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