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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은지의 특명, 지구를 지켜라!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나이와 상관없이 "언니" "오빠" 소리를 절로 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나보다 잘나가면 언니'라는 드라마 속 대사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를 뛰어넘는 멋짐 또는 능력이 있는 이들을 일컫어 우리는 "언니, 오빠"라고 부른다. 최근 드라마에 출연한 한 배우를 보면서 단전에서부터 언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극본 위소영, 연출 김정식)에서 강지구를 연기한 정은지를 보며 말이다.

정은지는 최근 종영한 '술꾼도시여자들'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입소문을 타며 시작된 드라마 인기는 각종 SNS에서 짤을 양산하며 화제를 거듭했다. 드라마는 못봤어도 정은지와 한선화의 '욕배틀신'은 봤다는 이들이 수두룩할 정도다. 여자 셋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사실 그리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은 아니었다. 캐스팅부터가 흔히 톱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없는 작품인 데다가, 방송사 드라마가 아닌 탓에 화제를 유인할 창구도 크지 않았다. 때문에 이 작품이 더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대사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승부수를 띄운 셈인데, 이 두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며 플랫폼 가입자 수까지 유인하는 성과를 이뤘다. 방영 5주간 티빙 전체 신규 유료 가입자 수의 23%가 '술꾼도시여자들'로 유입됐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술꾼도시처녀들'은 하루 끝의 술 한 잔이 신념인 동갑내기 세 친구의 일상을 그린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다. 서른 무렵에 접어든 세 여자의 일, 연애, 가족 등의 일상적인 것들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공감과 감동을 자아냈다. 정은지는 극중 필터링 없는 화끈한 언행과 츤데레 매력의 생계형 종이접기 유튜버 강지구를 연기했다. 지구는 한 마디로 강한 언니의 표상. 술은 무조건 원샷에, 앞뒤 재지 않는 솔직한 입담, 의리까지 끝내주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인물이다. 극중 변태에게 날린 회심의 발차기는 남주의 빈자리마저 채우며 여심까지 사로잡았다.

"많은 분들께서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해 주셔서 희열을 느꼈어요. 댓글에 'ㅋ'가 많을수록 뿌듯했고요. 재밌어 했으면 좋겠다고 찍은 신들을 다 웃으며 봐주시니 정말 좋았어요.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나서도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계속요. 지금 반응은 얼떨떨하기도 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겸손떠는 게 아니라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촬영하면서 보시는 분들에게 리얼리티가느껴지긴 하겠다 싶긴 했어요. 드라마 촬영하면서 정말 계속 그냥 좋았거든요. 붕붕 떠있는 기분처럼요. 캐릭터가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지구는 세 캐릭터 중에서도 내면이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타고나길 '인싸' 재질로 모두의 사랑을 받았지만, 선생 재직 시절 제자를 잃은 트라우마로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어두운 사연을 지녔으나, 이를 결코 티내지 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걸로 감정을 삭혀내는 인물이다. 이런 지구를 연기한 정은지를 보며 내면의 다단함이 참 많은 배우라는 걸 느꼈다. 겉으로 드러나는 밝음은 애를 쓰면 표현할 수는 있다. 허나 정적인 인물은 보다 섬세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감정 표현의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가늠해내는 건 어지간한 베테랑 배우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처음 대사를 봤을 때는 방어가 굉장히 강한 아이구나 싶었어요. 상처받기 무서워서되려 말이나 행동이 딱딱해질 때가 있잖아요. 지구가 그런 게 아닐까 했죠. 저 역시 지구에게 궁금증을 갖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실은 지구가 초반에는 대사가 많이 없어서 편하기도 했어요. 대본을 암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각보다 적었죠. 직전에 뮤지컬을 해서 암기에 대한 스트레스에 쫓기다가 '술꾼도시여자들'을 하게 되니 약간 거저 먹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지구의 감정신이 고조되다 보니 점차 부담이 되더라고요. 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입해야 보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촬영 후 후폭풍도 컸어요. 감정 기복이 커지더라고요. 텐션이 불규칙하니까 '이걸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들었죠."

이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그의 연기에 공감의 찬사를 보냈다. 그 역시 걱정도 있었지만, 촬영 내내 즐거운 마음이 들어 행복한 마음이 가장 컸다고 털어놨다. 촬영할수록 한선화, 이선빈과 진심으로 가까워진 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덕분에 탄생한 세 배우의 '찐케미'는 시즌2까지 확정짓는 대박을 터트렸다. 특히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다 보니 즉석에서 완성된 애드리브가 엄청났다고 한다.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한선화 언니도 지연이라는 캐릭터를 진짜 힘들어 했거든요. 근데 정작 저는 언니가 지연이를 연기하는 걸 보고있으면 정말 행복했어요. 대본으로 봤을 때 별게 없었는데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정말 재밌었어요. 전 기분이 처지더라도 지구 자체가 그런 캐릭터니까 그냥 그러고 있었는데 언니는 지쳐도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서 고마웠어요. (이)선빈이는 저의 눈물버튼이었어요. 지구는 울면 안되는데 그것 때문에 편집이 된 부분들이 많아요. 그냥 선빈이 자체를 소희로 겹쳐서 봤어요. 또래들과 같이 연기하는 건 역시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지구의 행동은 배려는 깊은데 표정은 시니컬하고, 말투는 사나운데 속내는 걱정으로 차있다. 이러한 외강내유의 걸걸함은 실제 정은지의 모습과 겹쳐보이기도 했다. 정은지 역시 이런 지구의 모습과 자신이 닮았다면서도 "주량은 지구보다 약하다"는 너스레로 웃음을 자아냈다. 

"일단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의 모습들은 비슷한 게 있어요. 친구들을 과보호하기 보다는 강하게 키워서 애들이 진짜 힘들 때만 저를 찾아오거든요. 목소리나 이런 것들도 평소에 중저음이라 지구를 연기할 때 편하긴 했어요. 그리고 제가 알게 모르게 다정한 순간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팬분들이 '이건 지구의 은지 모먼트 아니냐'고 할 때도 있고 츤데레 같은 면모가 비슷해요. 아! 팩트폭행하는 것도 좀 닮긴 했어요. 지구랑 다른 점은 폐쇄적이라는 거? 전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닫아 두기보다 적절한 선을 지켜서 원만하게 가려고 해요. 주량도 마찬가지고요. 극중 지구의 주량이 나와있지 않은데 그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저의 주량은 소주 한 병 반 정도가 기분 좋게 취해요."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정은지, 사진제공=아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

화제가 된 한선화와의 '욕배틀'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귓가에 내리꽂는 살벌한 욕설 사이로 두 아이돌 출신의 흥미로운 욕배틀은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도배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까지 욕을 해도 사이가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열연한 두 배우를 보며 한편으론 촬영장에서의 분위기가 염려됐다. 

"촬영하면서도 정말 재밌었어요. 큰소리로 사람들 많은데서 욕하면서 정은지가 아닌강지구로서 뭔가 재밌어하는 스스로를 봤어요. 약간 에코가 있던 현장이라 심한 말을 했을 때 울려퍼지는 희열감이 있더라고요. 둘 다 목소리가 큰편이라 쩌렁쩌렁 울리는데, 그것 때문에 감정이 더 들끓는다고 해야 하나? 찍을 때는 화가 더 많이 났었어요. 찍고 나서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집중하다 보니까 그 순간에는 엄청 화가 났다가 풀샷을 찍으면서 감정이 옅어질 때 재미를 느꼈죠."

'응답하라 1997' 이후 그렇다할 흥행작이 없던 그는 다시 한번 강한 여자의 얼굴로 대표작을 드디어 바꿔놓는다. 선망의 캐릭터로 다시 한번 정은지라는 배우를 대중에게 각인 시키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필모그래피까지 궁금해졌다. 그에게 내려진 특명, 지구를 무사히 지켜내며 우주 진출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지구를 연기하면서 경험치가 많이 쌓였구나를 느꼈어요. 예전에 막연하게 궁금했던 것들이 이해되는 걸 보니 그동안 제가 많은 경험을 했구나 싶었죠. 사람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쌓인 것 같아요. 내년이면 또 서른이에요. 30대는 더 연륜이 쌓이니까 더 다양하고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돼요. 걱정도 들고요. 뭐가 변할지에 모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바뀌는 것에 있어 기대되고 좋아요. 노래 부를 때도 30대의 깊이감이 있을 거잖아요. 연기자로서도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질 것 같아서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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