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4.03.08 11:27
  • 댓글 0

카리나 열애 후폭풍, "그렇게 억지사과 받아야 속이 시원했냐?"

사진=BBC 웹사이트 뉴스 화면 캡처
사진=BBC 웹사이트 뉴스 화면 캡처

"K-팝 스타는 압박으로 악명 높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영국 BBC의 보도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룹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성공을 칭송하며 K-팝을 치켜세우던 태도와 상반된다. 

하지만 BBC의 보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K-팝 시장과 K-팝 그룹이 창출한 결과물은 찬란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 일원들이 겪게 되는 온갖 압박과 수모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BBC가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K-팝 스타 카리나, 연애 공개 후 사과’였다. 최근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과의 교제 사실이 공개됐다. 한 매체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고, 결국 "알아가는 단계"라며 연인 사이 임을 인정했다. 그 때부터 ‘일부’ 팬덤의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팬들은 자극적인 문구를 담은 트럭을 소속사 앞으로 보내 항의했고, 온갖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방위로 카리나를 닦달했다. 결국 카리나는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 내용을 보자.

"많이 놀랐을 마이(에스파 팬덤)들에게 조심스러운 마음이라 늦어졌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준 마이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이들이 상처받은 부분 앞으로 잘 메워나가고 싶다. 마이들에게 항상 진심이었고, 지금도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앞으로 마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더 성숙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지켜봐 달라"

카리나는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했고, ‘실망’끼쳐 죄송하다고 고개숙였다. 팬덤을 실망시킨 그의 잘못은 무엇일까? 이재욱과의 교제다. 2000년생으로 올해 24세 성인인 카리나의 이성 교제는 무엇이 문제일까? 

사진=온라인 커뮤니커 캡처
사진=온라인 커뮤니커 캡처

그에 대한 답은 트럭 시위 속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카리나.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했냐. 직접 사과해달라."
"사과하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 판매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거다."

팬덤의 주장을 분석해보면 이렇다. 팬은 카리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다. 즉,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너는 굳이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왜 팬을 ‘배신’하나? 즉, 카리나가 이성 교제하는 것은 팬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유사 연애’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팬덤은 팬으로서 스타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 ‘교제하는 사이’로 착각한다. 서로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사이로 본다는 의미다. 그들 입장에서 카리나가 이재욱과의 교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바람을 핀 것’이라는 논리다.

더욱 기가 찬 건 마지막 문장이다. 사과하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 판매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것이란 주장은, 카리나가 속한 에스파를 위해 지갑을 여는 팬으로서 일종의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다. 앨범과 콘서트 티켓을 사는 팬들은 카리나에게 사생활 단속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카리나는 이를 받아들일 일종의 의무가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협박과 다름없다. 이별한 연인이 치졸하게 "그동안 내가 준 선물 다 가져와" 혹은 "그동안 내가 사준 밥값이 얼마인데?"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카리나는 결국 사과했다. 왜일까? 이는 결국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카리나의 열애 공개 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주요 수익 창구인 팬덤이 동요되고 있다는 것이 시장에 반영된 셈이다. 결국 카리나가 그룹 멤버들이나 소속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됐을 가능성이 크다. 

왼쪽부터 이재욱, 에스파 카리나 /사진=프라다 공식 SNS
왼쪽부터 이재욱, 에스파 카리나 /사진=프라다 공식 SNS

극성 팬덤의 이런 요구와 그로 인한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강도가 거세졌다. 왜일까? 이는 K-팝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설명할 수 있다. K-팝 시장은 산업화됐고, 각 기업들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앨범을 한 장이라도 더 사야 팬미팅이나 영상통화 등에 참여할 수 있고, 스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즉, 돈을 쓰게 만든다. 아울러 스타와 팬덤이 수시로 그들만의 애칭을 부르고 밀어를 주고 받는 환경을 만든다. 마치 연애를 하는 듯한 판을 소속사가 깔아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몇몇 팬들은 스타의 열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더 많은 돈을 쓴 팬일수록 분노의 크기도 비례해서 커질 가능성이 높다.

BBC는 "현재까지도 열애설 인정은 팬들 입장에서 불미스러운(scandalous) 일로 받아들여진다"면서 "K-팝 스타의 소속사들은 그들을 ‘연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romantically obtainable) 아이돌로 세일즈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유사 연애 감정을 부추긴다는 일침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팬덤을 한데 뭉치기 위해 이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심리적, 정서적 타격은 오롯이 스타들의 몫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의 감정을 거세당한 채 영혼없는 사과를 일삼아야 한다. 향후에도 K-팝 스타의 열애를 둘러싼 이런 질타와 사과는 거듭될 것이다. K-팝 스타들은 마땅히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고, ‘들켰을 때’ 일부 팬덤은 당연한 듯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그 사과가 ‘엎드려 절받기’라도 그들은 사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식이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