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Credit 김형석(영화 평론가)
  • 입력 2022.05.31 10:22
  • 수정 2022.05.31 10:25
  • 댓글 0

'칸의 형제' 박찬욱 송강호, K-무비의 화양연화를 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박찬욱 감독(왼쪽)과 송강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칸영화제 시상엔 주조연 구분이 없다)을 수상했다.

이전에도 한국영화가 칸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적이 여러 차례 있지만, 이런 겹경사는 처음이다. 이두용 감독이 '물레야 물레야'(1983)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칸에 초청 받은 것이 1984년의 일. 2000년에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처음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2년 후 '취화선'(2002)으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박찬욱 감독의 수상은 20년 만의 성과인 셈이다. 물론 이전에도 '올드보이'(2003)가 2004년에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박쥐'(2009)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지만 '헤어질 결심'으로 이번엔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박 감독은 내심 자신의 영화로 박해일이나 탕웨이가 수상자가 되길 바랐던 것 같은데, 그 꿈을 이룬 건 그의 오랜 파트너인 송강호였다. 2007년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여자배우상을 수상하며 칸의 여왕이 되었을 때 곁을 지키며 함께 기뻐했던 그는 이번엔 박수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사실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오가며 그가 칸과 안면을 익힌 지도 꽤 긴 시간이 흘렀으니, 이번 수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올해 칸에서 한국영화가 거둔 성과는 경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을 통해 던졌던 화두, 즉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어 달라는 관객에 대한 요구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송강호의 수상은 인상적이다. 그는 한국어의 묘한 뉘앙스를 살리는 연기를 통해 사랑받았던 대표적 배우다. 그러기에 대사가 오로지 자막으로 표현되는 글로벌 마켓에선 이 배우가 지닌 강점이 제대로 살아나긴 힘들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심사위원들은 송강호의 뉘앙스 강한 말맛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평가했을까? 게다가 이 영화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했다. 일본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함께 만든 한국어 영화에서 배우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은 새삼 흥미롭다.

'헤어질 결심'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탕웨이는 한국어 연기를 한다(물론 중국어 대사 부분도 있다). 김태용 감독과 결혼한 후 한국에 거주하고 있긴 하지만, 탕웨이의 모국어는 중국어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어 능력에선 거의 백지 상태에 가까운 그의 입에서 한국어 대사를 만들어냈고, 그 영화를 통해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실 더 이상 한국영화와 영화인이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에서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는 풍경이 그렇게 신기하고 대단하진 않다. 우린 언제부터인가, 세계 영화의 메인 스트림에 합류했다.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던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이정재는 자신의 첫 연출작 '헌트'로 칸에 입성했고, 이미 여러 차례 칸과 인연을 맺었던 박찬욱과 송강호가 나란히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상황은 대단하긴 하지만 충격적이진 않다.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왼쪽부터) 박찬욱감독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왼쪽부터) 박찬욱감독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올해 칸의 성과를 다시 평가하자면, 어쩌면 우린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감독과 중국 배우가 한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 무비라는 범주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하나로 묶여 국제 무대에서 인정 받는 모습. 이른바 ‘한류’의 좀 더 진화된 모습이며, '취화선'과 '올드보이'부터 장기 지속되다가 '기생충'으로 폭발한 우리 영화의 힘이 만들어낸 광경이기도 하다. 이것은 1954년 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의 '지옥문'이 일본영화로는 첫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1963)과 '괴담'(1965) 그리고 테시가하라 히로시의 '모래의 여자'(1964)가 3년 연속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1960년대의, 혹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1980)와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1983)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1980년대의 일본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혹은 첸카이거의 '패왕별희'(1993)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장이모우의 '인생'(1994)이 심사위원대상과 남자배우상(갈우)을 받았으며, 후샤오시엔의 '희몽인생'(1993)이 심사위원상을, 왕자웨이의 '해피 투게더'(1997)가 감독상을 수상했던 1990년대 중화권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들이 그 시절 화양연화를 누렸다면, 한국영화의 시간은 지금이다.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지만 현재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닌 나라다. 그 힘이 드러난 장이 바로 올해 칸영화제이고, 그 영광의 주인공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얼굴인 박찬욱과 송강호라는 점이 기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