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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2.01.28 10:17
  • 수정 2022.0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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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김다미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독보적이다’. 요즘 연예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보는 표현이다. 웬만한 보도자료에는 ‘독보적 가창력·연기력’ ‘독보적인 분위기’ ‘독보적인 외모’ 등이 수식어가 붙는다. 보도자료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여과없이 그대로 기사로 옮기는 매체들을 보면 읽은 이가 낯부끄러워지곤 한다.

하지만 이 수식어가 찰떡 같이 어울리는 이도 있다. 올해 스물 일곱이 된 배우 김다미가 그러하다. 독보(獨步)적. 남이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러할까? 연기력이나 외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신인’의 영역에 가까운 그의 연기력은 여전히 여물어가는 단계이고, 외모는 전형적인 미인형이라 보다는 유니크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와 필모그래피 만큼은 독보적이다.

2018년작인 영화 ‘마녀’ 이후 김다미가 선보인 주연작은 ‘이태원 클라쓰’(2020), ‘그 해 우리는’(2022) 등 세 편. 일단 실패가 없다. 신인 배우인 김다미에게 타이틀롤을 맡겼던 ‘마녀’는 318만 관객을 모았고, 박서준과 호흡을 맞춘 ‘이태원 클라쓰’의 시청률은  16.5%까지 치솟았다. ‘그 해 우리는’은 5% 안팎이었지만 체감 반응은 국경을 넘었다. ‘이태원 클라쓰’, ‘그 해 우리는’ 모두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글로벌 인기를 누렸다. 특히 두 작품 모두 일본 넷플릭스에서 흥행 1위에 올랐다. 

물론 박서준, 최우식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지만, 이들 작품에서 김다미가 스스로 일군 성과 또한 가히 놀랍다. 가장 독보적인 부분은 여성 캐릭터들이 가진 ‘전형성’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또래 여배우들이 통상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로맨스코미디나 멜로물 등을 통해 ‘예쁜’ 이미지를 구축하며 정석대로 걸어가는 것과 달리, 김다미는 ‘마녀’에서 피칠갑을 하는 격한 액션을 소화하고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염색 머리를 한 채 소시오패스로 의심될 만큼 자기 주장 강한 조이서 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이태원 클라쓰’ 방송 당시, ‘형법 32장’을 검색하면 ‘이태원 클라쓰’로 나왔다. 형법 32장은 강간과 추행의 죄에 관한 조항이다. 둘의 연관성은 ‘이태원 클라쓰’ 5회 마지막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 분)에게 키스를 하려는 오수아(권나라 분)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은 조이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입맞춤은 강제추행"이라고 일갈한다.

이 장면은 일명 ‘디펜스 신(defence scene)’이라 불린다. 그동안 선보인 대다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수동적이었다. 사랑하는 남성 주인공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속앓이를 한다. 하지만 이 남성 주인공은 어김없이 뒤늦게 여성 주인공의 마음을 깨닫고 돌아와 결실을 맺는다. 즉, 선택과 결정은 남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조이서는 달랐다. 연적인 오수아를 향해 "제가 사장님 좋아해요. 그러니까…언니 망가져야겠다"고 선전포고하고, 박새로이에게는 "그 여자랑 사귀면 나 여기 그만 둘래요"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IQ 162 천재로 공부와 운동, 못하는 것이 없는 데다가, 학교폭력을 일삼는 급우의 모습을 촬영해 SNS에 유포한다. 이에 흥분한 가해자 엄마가 찾아와 뺨을 때리자 이 모습까지 촬영하며 "이래서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니까"라고 통쾌하게 맞받아친다. 이런 ‘똘기’ 충만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김다미의 연기력과 표현력은 발군이다.

‘마녀’와 ‘이태원 클라쓰’ 속 김다미의 캐릭터가 다소 극화된 모습이었다면, ‘그 해 우리는’ 속 국연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할머니까지 책임져야 하는 팍팍한 현실 앞에서 사랑 또한 주저할 수밖에 없는 보통의 인물이었다. 국연수는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살고 있었던 인물인 것 같다. 이렇듯 김다미의 연기 변신은 퍽 자연스럽기에, 또 놀랍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언뜻 보면 참 잔잔했다. 시청률 수치가 크게 요동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 해 우리는’는 음식에 비유하자면 차(tea)였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그 맛이 우러나고, 계속 손과 입이 간다. 그런데 대중이 현실에서 나누는 사랑 또한 이렇다. 술자리나 클럽에서 만나 ‘원 나잇’하는 사이가 대단한 자극을 줄 수 있지만, 다음 날 맨정신으로 눈을 뜨면 소위 ‘이불킥’을 하기 십상이다. 오랜 기간 연애하며 결혼까지 바라보는 사이는 대다수 차와 같이 은은하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또 곁을 지킨다.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사진제공= 스튜디오N·슈퍼문픽쳐스

'그 해 우리는’ 속 연수와 최웅이 사이 역시 이랬다. 서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모습으로 시작해 다시금 다큐멘터리를 찍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며 "부부입니다"라고 말하는 모습 속 국연수와 최웅은 현실에 온전히 발을 붙인 필부필부였다. 앞서 ‘마녀’와 ‘이태원 클라쓰’를 소화했던 김다미이기에 국연수로 거듭나는 모습은 더욱 놀랍고 반가웠다.

이런 숱한 관심 속에서도 김다미는 들뜨지 않는다. 그 공을 ‘마녀’에 이어 또 다시 호흡을 맞춘 최우식에게 돌린다. ‘그 해 우리는’ 종방 후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가진 김다미는 "악역이 없어서 모든 인물이 사랑 받을 수 있었다. 국연수는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모습과 굉장히 다른 캐릭터다. 뭔가 준비한다기 보다 최웅과 호흡하며 현장에서 최대한 느끼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10년 간 만나고 헤어진 사이로 보일 수 있을까?’ 등 사소한 부분도 얘기를 많이 나눴다. 연수 캐릭터를 잡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는 김다미. 선배들이 시상식에 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설 수 있겠지’라고 동경했는데, ‘마녀’를 통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꿈을 이뤘다. 고작 20대 초반에 일군 성과다. 그리고 이후에도 김다미는 탄탄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써내려가고 있다. ‘배우 김다미’의 30대, 40대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마녀’를 개봉했을 때를 가장 잊지 못해요.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나요. ‘그 해 우리는’도 필모그래피에서 기억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저도 국연수와 비슷한 나이가 돼 가는 시점에 이 작품을 만나서 더 특별한 것 같아요. 20대에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연애를 보여준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죠. 20대에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공부하고 싶죠. 그렇게 하면, 30대에 저를 좀 더 알아가는데 도움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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