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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① 나무위키를 믿습니까?


모든 검색어는 나무위키로 통한다. 적어도 구글코리아에서 이 말은 진실이다. [원펀맨]이나 [스티븐 유니버스] 같은 애니메이션, tvN [또 오해영] 등의 드라마, 혹은 ‘오늘의 유머’나 ‘메갈리아’처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구글에 어떤 검색어를 쳐 넣든 결과페이지 상단에는 어김없이 나무위키 링크가 걸린다. 문서 규모로는 한국어 위키 중 2위, 일일 편집 빈도수는 1위, 이용률로는 국내 사이트 중 16위를 차지하는 만큼 나무위키는 운영진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금 한국에서 가장 방대하며 활발하게 이용되는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브컬처에 관해서라면 이보다 더 유용한 참고서는 없을 정도다. 나무위키의 각 항목에는 전체적인 줄거리나 등장인물들의 정보, 회차별 이야기는 물론 해당 작품을 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농담이나 트리비아 등이 빠짐없이 포함돼 있다. 요컨대 서브컬처 팬들에게 나무위키는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며,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여 내용을 채워 넣는 집단지성 허브로서의 미덕은 꾸준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편집한다는 나무위키의 시스템은, 역으로 사실이 아니거나 편향된 주장을 낳기도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가치가 전혀 없는 의견조차 정보값이 있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테면 나무위키의 ‘네이버웹툰/논란 및 사건 사고’ 항목에서는 [오빠 왔다]와 [맛집 남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의 작품성을 비판하며 네이버 웹툰 선정 시스템은 잘못됐다, 작품성이 아니라 조회수만 중시하고 있다고 객관적인 시선인 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내(글쓴이)가 볼 때는 별로’라는 주관적인 기준뿐이다. 작품성이란 절대적인 수치로는 산정하기 어려운 상대적인 것이며, 결국 네이버 웹툰에서의 작품성은 조회수로 증명될 수밖에 없는 부분임에도 말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위키의 특성상 이런 식의 주장은 다른 위키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 다만 나무위키에는 이 외에도 “토론을 통해 중립적이고 사실적인 서술과, 특정한 관점·세력에 종속되지 않는 서술을 지향하며, 보편적인 인권과 윤리에 어긋나는 사상과 집단을 배격한다”는 공식규정과 크게 동떨어진 혐오와 차별이 곳곳의 페이지에서 횡행한다. ‘퀴어문화축제’ 항목에는 참가자들의 노출 전략을 비판하며 “잠재적 아군 집단에 대해서 고려할 생각이 없거나, 내지는 적극적으로 적으로 돌리고 있다”는 등 ‘내가 허락한 동성애만이 타당하다’는 식의 논리가 서술돼 있다.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여성혐오다. ‘메오후’(여성 중심의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오타쿠를 비하하는 표현인 ‘파오후’를 합성한 말로,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용어) 같은 항목이 당당히 등록돼 있는가 하면, ‘아몰랑’(논리적 설명이나 근거 제시를 요구받을 때 그냥 넘어가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주로 여성이 정치·사회 문제에 무지하다는 비아냥처럼 사용됨)에 대해 여성혐오적 단어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두 단어가 ‘정보’로 기재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운영진은 이런 항목을 딱히 제지하지도 않는다. 현재는 수정된 상태지만 한때 ‘산후조리원’ 항목에는 “의학적으로는 단순히 집에서 휴식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산모의 과도한 엄살로 “비유하자면 사무직인 한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종이에 베이자 거기에 붕대를 싸매고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가서 파상풍의 위험은 없는지 정밀검사한 후 깁스 하는 꼴”이라는 악의적인 뉘앙스의 글이 쓰여 있었다.

의외의 항목에서도 여성혐오적 서술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송혜교’ 페이지에서는 “남자들이 ‘난 통통한 여자가 좋더라, 음 송혜교 정도?’ 라는 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며 “(송혜교가) 2000년대 중반까지 여자들의 적”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의 체중에 쓸데없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은 남성이지만, 이 부분은 무시하고 ‘여자는 예쁜 여자를 싫어한다’는 편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틀린 팩트나 편향된 의견이라고 해도 나무위키에서는 작성자를 알 수 없다. 지난 5월 나무위키가 파라과이에 기반을 둔 umanle S.R.L.(가칭)에 인수되어 현지 법을 적용받음에 따라 콘텐츠의 내용에 대해서 나무위키 측에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혐오와 차별, 선입견에 기초한 항목들은 전혀 필터링되지 않으며,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나무위키의 콘텐츠가 검증 없이 얼마든지 퍼져나갈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진다. 앞서 말했듯 구글에서는 무엇이든 검색하기만 하면 나무위키의 결과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여러 언론이나 논문에서는 문제의식 없이 나무위키의 내용을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조차 게임 기사를 쓰며 “나무위키에 게재된 내용 일부를 참고했다”고 밝히는 형편이다. 관심 있는 소재에 대해 나무위키의 정보를 참고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미디어에서조차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사이트를 인용 출처로 삼는 현상은 나무위키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위키를 무조건 경계하자거나 마치 ‘일간베스트 저장소’처럼 라벨링해서 배척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나무위키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정보 또는 지식의 외양을 한 채 혐오와 차별, 잘못된 팩트와 논리를 펼치고 있지는 않은지 분별할 수 있는 적절한 의심이다. 즐기고 퍼뜨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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