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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4.03.29 11:09
  • 수정 2024.03.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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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비싼 몸값이 K-콘텐츠 불황의 원인? 반만 맞고 반은 틀려

'눈물의 여왕' 김수현, 사진=tvN
'눈물의 여왕' 김수현, 사진=tvN

배우 김수현의 드라마 출연료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계약서 상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공식적인 확인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의 회당 출연료가 "8억 원이다" "3억 원이다" 등 무수한 주장이 쏟아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배우들의 비싼 몸값이 K-콘텐츠 시장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업계를 망가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톱스타 ‘몸값 불패’, 왜 이어질까?

지난달 1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드라마 산업의 위기와 해결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주인공은 이제 회당 ‘억’ 소리가 아니라 ‘10억’ 소리가 현실" "제작사와 방송사가 드라마 판을 키웠지만 일부 배우만 그 과실을 가져가는 게 아닌가 답답하다" 등 고충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배우들이 너무 많은 출연료를 가져가기 때문에 제작비가 크게 뛰었고, 제작사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배우들의 몸값이 크게 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제작사들이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것은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찾기 어렵다. 왜일까? 캐스팅은 제작사들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비상식적인 개런티를 요구한다고 판단하면, 쓰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준비된 예산에 걸맞은 배우를 섭외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불만이 생길까?

이는 정확히 공급과 수요 법칙에 따른다. 특정 시기, 주목받는 배우는 한정적이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김수현, 박보검, 이민호, 차은우 등이다. 이들이 출연하면 국내 방송사 편성을 떼어놓은 당상이고, 해외 유명 OTT 플랫폼에 큰 금액을 받고 판권을 넘길 수 있다. 물론 이들의 몸값은 비싸다. 하지만 그들을 섭외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이 속한 각 매니지먼트는 더 높은 개런티를 요구하는 것이다.

K-콘텐츠 시장이 불황에 놓여도 일부 톱스타들의 몸값은 공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에 비유해보자. 아파트값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고, 또 시세를 주도하는 ‘대장주’가 있다. 대장 아파트는 쉽사리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하락폭도 적다. 게다가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가격 회복 역시 가장 빠르다. 

톱스타도 이런 대장주에 해당된다. 아무리 업계 환경이 좋지 않아도 각 시기를 대표하는 콘텐츠와 스타는 있다.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투자자나 제작사, 방송사는 결국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배우나 작가가 참여하는 콘텐츠를 선택한다. 결국 ‘팔리는 이는 계속 팔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렇듯 찾는 곳이 꾸준하니 톱스타 입장에서는 그들의 몸값을 낮출 이유가 없는 셈이다.

최근 배우 이장우, 김지석, 오윤아 등은 "작품이 없어 고민"이라고 일제히 토로했다. 이장우는 "요즘 드라마판이 개판"이라며 "카메라 감독님들도 다 놀고 계신다. 방송가 황금기에 있던 자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들 모두 주연급 배우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상이다.

결국 일부 배우의 치솟는 몸값이 K-콘텐츠 시장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은 일각의 주장이자 볼멘소리일 뿐이다. 업계에서는 일하고자 하는 배우가 많다. 다만 제작사는 보다 싼 값으로 비싼 배우를 쓰고 싶을 뿐이다.

해외 OTT서 공개된 장동윤 나나 주연의 '내 남친은 큐피드'. 사진=예꼬편 영상 캡처
해외 OTT서 공개된 장동윤 나나 주연의 '내 남친은 큐피드'. 사진=예꼬편 영상 캡처

#편성 못받는 드라마, K-콘텐츠 시장의 균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이미 제작을 마쳤거나 후반 작업 중임에도 아직 편성을 받지 못한 드라마는 약 27편이다. 편당 100억 원의 제작비를 썼다고 고려하면, 300억 원 가까운 돈이 묶여 있는 셈이다. 일부 영화가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해 묵히며 ‘창고 영화’라는 오명을 썼듯, 편성을 받지 못한 드라마 역시 ‘창고 드라마’가 되고 있다. 콘텐츠는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묵혀 놓은 기간이 길어지면 아예 공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더욱 막막한 것은 출구 전략을 짜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극장을 셧다운시켰다. 그러자 영화 ‘승리호’와 ‘사냥의 시장’ 등이 넷플릭스로 방향을 틀어 공개됐다. 팬데믹 시대에 OTT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며 콘텐츠가 대중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OTT 시장 역시 불황을 맞았다. 더 이상 무분별하게 작품을 사오거나 투자하지 않는다. 지갑을 굳게 닫았다. 방송사들도 제작 및 편성 편수를 점차 줄이는 추세다. 호황기에 투자를 받아 호기롭게 제작됐던 작품들이 갈 곳을 잃은 셈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기준, 2022년 각 방송사와 OTT를 통해 공개된 작품은 141편이었다. 지난해에는 123편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올해는 100편 남짓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시장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100편 미만으로 내려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콘텐츠 제작비가 크게 치솟은 것은 분명 시장의 불황에 영향을 줬다. 하지만 단순히 주연 배우 몸값 때문은 아니다. 주52시간제의 시행과 더불어 스태프 인건비가 천정부지 올랐다.  여기에 각종 장비 사용료도 상승하면서 10년 전만 해도 회당 5억 원 안팎이면 찍던 드라마를 이제는 10억 원 들여야 만들 수 있다. 

옥석 고르기도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K-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니즈가 늘면서 너무 많은 투자금이 몰렸다. 그렇다 보니 ‘눈 먼 돈’을 끌어와서 만든 함량 미달 작품도 속출했다. 대중의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이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작품이 쏟아지며 K-콘텐츠에 대한 관심도도 줄어들었다. 현재의 불황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K-콘텐츠 시장의 질적 상향 평준화를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고난의 행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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