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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신윤재(칼럼니스트)
  • 입력 2024.03.29 10:32
  • 수정 2024.03.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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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빨아쓰는 TV...상생일까 아니면 자충수일까

'청소광 브라이언' '배고파' 등 지상파용으로 방송 시작

사진=MBC '청소광 브라이언' 예고편 영상 캡처
사진=MBC '청소광 브라이언' 예고편 영상 캡처

흔히 방송가에서 잘 나가는 아이템이나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 이를 갖다 쓰는 일에 ‘빨아간다’ ‘빨아쓴다’는 표현을 쓴다. 가져가는 아이디어가 일반적일 수도 있지만 핵심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소재나 아이디어를 잘 ‘빨아쓰는’ 경우에는 ‘기가 막히다’는 찬사가 따르지만, 가져간 아이디어를 나름대로 발전시키지 않고 그저 옮겨놓는 수준이라면 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매체 시대는 이미 와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OTT 등 다른 플랫폼이 TV의 영향력을 이미 넘어선 상황이다. TV는 남녀노소 지역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절대적인 시청총량이 유튜브나 OTT 등 다른 플랫폼에 비해 비약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자본과 기술, 인력은 잘 되는 쪽으로 몰린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역전되는 상황도 있다. 아이템 나름이다. 몇 번 성공의 맛을 본 TV는 본격적으로 유튜브 콘텐츠의 ‘빨아쓰기’를 시작했다. 과연 그 ‘빨아쓰기’의 전략이 통하는 상황인지 돌이킬 만하다.

사진=MBC
사진=MBC

MBC는 최근 자사의 유튜브 채널인 ‘M드로메다 스튜디오’에서 지난해 공개한 예능 ‘청소광 브라이언’의 TV 방송을 결정했다. ‘청소광 브라이언’은 다음 달 4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TV 전파를 탄다. 지난해 10월17일 처음 공개된 이 프로그램은 지난 2월13일까지 인기리에 운영됐다.

프로그램은 평소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청소에 집착하는 가수 겸 방송인 브라이언이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해주는 내용이다. 단순히 더러운 집을 소개하고 청소만 하는 예능이라면 이렇게 반향이 생기지 않는다. ‘청소광’ ‘세차광’이 광자가 미칠 광(狂)의 의미인 브라이언은 쓰레기나 먼지, 오물들을 죄악시하고 더러운 환경을 방치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몬다. “댓츠 내스티!!!(That’ Nasty!!!)” “아이 헤이트 피플!!!(I Hate People!!!)”이라며 경악하는 브라이언의 반응이 백미다. 이 캐릭터의 재미로 각 영상은 기본 100만은 손쉽게 넘는다.

사진=SBS
사진=SBS

SBS Plus와 SBS funE는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되고 있는 ‘배고파’ 콘텐츠를 TV판으로 확장시킨 ‘백종원의 배고파’를 지난 22일부터 새롭게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모토로 튀르키예 이스탄불, 마카오, 태국 방콕 등을 도는 백종원의 미식여행을 유튜브에서 TV로 옮겼다. 백종원이 해외 현지로 날아가 현지 맛집과 함께 먹는 요령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처음 방송은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집계 결과 유료가구 기준 0.9%의 시청률을 기록해 만만치 않은 수치를 보여줬다.

시기를 좀 더 넓히면 이러한 사례는 몇 더 찾을 수 있다. 2022년 9월 첫 시즌이 방송되고, 지난해 4월 두 번째 시즌이 방송된 SBS ‘지선씨네마인드’는 SBS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되던 콘텐츠다. 범죄심리학자 박지선의 눈으로 일반적인 사건이 아닌 영화 속의 인물과 사건을 분석한다. 

사진=SBS
사진=SBS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은 콘텐츠는 SBS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박지선 교수에서 장도연이 시즌 2에서 진행을 이어받아 ‘TV로 향한다는 뜻’의 ‘TV향 유튜브 콘텐츠’의 시작을 알렸다.

마찬가지로 2022년 9월 첫 방송 된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도 태생은 유튜브였다. 원래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였던 한문철이 자신의 이름을 건 ‘한문철TV’에서 선보이던 프로그램이었지만 TV로 향해 더욱 발전됐다. 혼자 화면을 보고 리뷰하던 방식에서 스튜디오에서 운전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가진 패널들과 다시 블랙박스를 리뷰한다.

프로그램 급발진 사고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넓히기도 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지난해 5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역시 TV향 유튜브 콘텐츠의 사례로 넣을 수 있다.

사진=JTBC
사진=JTBC

물론 사건사고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의 형식이라면 유튜브의 콘텐츠라도 충분히 TV로의 변환이 가능하다. 오히려 TV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에서 가공될 경우 유튜브 콘텐츠 본래의 매력이 더욱 세련되게 뽑혀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예능으로 갔을 때는 이 상황이 달라진다. ‘빨아쓰는’ 매력이 상쇄되는 것이다. ‘청소광 브라이언’의 경우 유튜브 콘텐츠이므로 브라이언의 반응이 더욱 ‘욕설’에 근접해진다. 이런 상황에 여과없이 방송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백종원의 콘텐츠 역시 각종 여행지의 요리재료 브랜드나 식당의 상호 등이 언뜻언뜻 공개되는 장면들이 시청자의 관심을 모은다. 과연 여러 제약이 있는 지상파 환경에서 이러한 매력이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러한 TV향 유튜브 콘텐츠에는 아이디어의 고갈과 인기의 하락으로 경쟁력에 대한 갈증이 있는 TV 창작자들의 고뇌와 꼼수가 숨어있다. 잘 나가는 자사 유튜브 또는 다른 유튜브 채널의 아이디어를 ‘빨아와’ 자신의 편성 슬롯을 채우는 것이다. 이럴 경우 스스로 창작하는 상황보다 훨씬 편하다.

하지만 잘 나가는 유튜브 콘텐츠는 TV를 만나 두 배 이상 신선함이 빨리 소진된다. 이 콘텐츠의 고유 매력이 잦은 노출과 제약을 통해 반감된다면 어떻게 될까. ‘본진’으로 꼽히는 유튜브에서도 소멸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유튜브를 ‘빨아쓰는’ TV들, 혹자는 이에 대해 ‘고효율의 시너지’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다분히 TV의 입장일 따름이다. 빨아쓰는 일이 잦아지면 결국 유튜브 내에 넘치던 아이디어들도 고사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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