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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기를 뺀 라미란, 매달릴 수밖에 없던 '나쁜 엄마' [인터뷰]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응답하라 1988', '정직한 후보'를 비롯해 예능 '진짜 사나이',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라미란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코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배우 라미란이 아닌 인간 라미란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웃음기를 빼자 또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나쁜 엄마를 자처한 라미란은 그동안 잘 보여주지 않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이 아닌 눈물을 뽑아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극본 배세영, 연출 심나연)를 통해 오랜만에 종영  인터뷰에 나선다는 라미란은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유머 넘치는 답변 속에서도 배우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 작품과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한 진지한 태도는 숨길 수 없었다. 

지난 8일 종영한 '나쁜 엄마'는 모두가 예상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맞이했다. 영순(라미란)이 꿈꿨던 복수는 아들인 강호(이도현)가 이뤄냈다. 영순은 강호의 곁에서 끝내 눈을 감았고 강호와 미주(안은진)는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역시 14부는 짧지 않았나 싶어요. 많은 분들이 아쉬워할 것 같고 저도 아쉬웠어요. 작가님께 힘을 내보시라고, 보통 16부로 마무리하지 않냐고도 했어요. 그런데 잘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촬영을 했느데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옛날에 공연하고 '응사'할 때 골목길 사람들처럼 같이 복작복작하게 있는 게 좋았어요. 강말금 씨와 강호 정도 말고는 다 작품을 했던 분들이라 정말 편했어요."

평생을 나쁜 엄마로 살았던 영순은 아들이 사고를 당한 후에야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 그러나 위암 4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영순은 자신이 떠난 후 혼자 살아갈 아들을 위해 다시 나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라미란은 이러한 영순이라는 캐릭터를 구현하며 엄마라는 위치보다는 인간 진영순의 삶에 주목했다. 

"엄마라는 존재의 표현보다는 영순에 대한 이해를 했어요. 같은 엄마라 해도 정 씨 같은 엄마도 있고 박 씨 같은 엄마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모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떻게 표현되냐가 다를 뿐이죠. 그래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이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에 집중했어요. 그로 인해 실수를 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그런 이야기가 생긴 것 같아요. 영순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저희에게 영순의 행동은 너무 가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죠. 그런데 영순은 그런 풍파를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물론 영순도 나중에 사죄하지만요."

 

드라마 속 캐릭터라지만 '나쁜 엄마' 영순의 삶은 너무나 기구하다. 학창 시절 눈앞에서 일가족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남편이 자살로 위장된 채 살해당했다. 검사로 자란 아들은 복수를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정신장애를 얻게 됐다. 본인도 위암 4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끝내 숨을 거둔다. 이렇게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영순이지만 오히려 라미란은 "영순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얼마만큼 받아들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영순은 참 강한 사람이고 행복하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당신들이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할 것 같아요. 사실 작가님께 '혹시라도 영순이가 가게 되면 곱게 보내주세요'라고 했어요. 이렇게 힘들게 살았던 영순이 행복하게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갈 때까지 고통스러워하며 가는 게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영순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던 건 아들 강호 때문이다. 강호 역을 맡은 이도현은 라미란과 밀리지 않는 연기 호흡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특히 '나쁜 엄마'의 촬영 도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가 공개됐고, 주여정 캐릭터를 맡은 이도현의 열연으로 차기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나쁜 엄마'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이도현과 함께 호흡을 맞춰본 라미란은 이도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전에 낚아채길 얼마나 잘했어요.(웃음) 사실 강호 역이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알려지신 분들에게는 안 맞는 경우도 있고요. 이도현 씨는 커버할 수 있는 연령 폭도 넓고 좋더라고요. 저는 이도현이라는 배우의 전작을 다 봐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 잘 될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간에 '더 글로리'가 공개됐는데 난리가 났더라고요. 제가 제작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일단 눈을 마주 보면서 연기를 할 때 교감을 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지 않아요. 나이를 떠나서 그렇게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강호를 보면 다른 뭔가를 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에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았어요."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드라마 '블랙독', 영화 '걸캅스' 등 진한 워맨스를 내세운 작품을 통해 주연으로 나선 라미란은 영화 '정직한 후보' 등을 통해 원톱 주연으로 나서도 작품을 흥행시킬 수 있는 배우로 떠올랐다. 이렇게 주목받는 라미란은 제작 발표회에서 "'나쁜 엄마'는 매달려서라도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시금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제법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인생을 사는 역할을 맡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리고 '나쁜 엄마'라고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대기 같은 서사가 쭉 펼쳐지면서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가 작품에 녹아있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런 작품을 언제 할까 싶었어요.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엄마 나아가 할머니 역할을 하게 될 텐데 그러면 주변으로 빠질 확률이 높죠. 앞으로 제가 맡을 역할이 대부분 그럴 텐데 배우로서 이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역할은 정말 매력이 있었어요. 게다가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주연 배우이기 때문에 가지는 부담감을 느낀 건 아니었다. 동료들과 함께 꾸며낸다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작품에 임했다. 이는 비단 '나쁜 엄마'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지금은 주연이지만 언제든 포지션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작품에 임했다.

"'나쁜 엄마'가 좋았던 게 주인공에게 치우치지 않아서였어요. 주인공이 다 끌어가는 그런 작품이 아니고 인물들이 다 살아있고 그들의 이야기고 그려지잖아요. 그게 합쳐지고 흩어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실 이러다가도 또 다른 역할을 맡게 돼도 제 입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거든요. 부담감?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재미있게 봐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언제든지 아무거나 할 수 있고 30%의 알갱이만 가지고 나머지는 상황에 맞춰 색깔을 맞춰가는 것 같아요."

진지한 모습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나쁜 엄마'는 라미란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렇다고 많은 것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을 한껏 느끼며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다.

"오래 남을 작품이 10년마다 한 번씩은 오는 것 같아요. '나쁜 엄마'는 그런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찍는 동안도 행복했고 방송을 보면서도 행복했어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것 또한 감사해요. 그런 몇 개의 기둥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드라마, 영화를 합치며 50~60편 정도 한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지나가다 옛날 거를 보면 보게돼요. 지금봐도 재미있는 작품도 있어요. 뭐가 터질지는 모르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재미있는 직업이 어디 있어요. 평생 살아도 영순처럼 이런 일은 못 겪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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