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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이설(칼럼니스트)
  • 입력 2023.05.29 08:55
  • 수정 2023.05.29 09:08
  • 댓글 0

범죄도시3ㅣ시리즈 롱런을 가능케 한 흥행공식?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최근 10여 년간 흥행에 성공한 한국 범죄 액션 영화의 계보는 이렇다. ‘아저씨’(2010. 610만 명), ‘도둑들’(2012·1298만 명), ‘베를린’(2013·716만 명), ‘베테랑’(2015·1341만 명), ‘내부자들’(2015·707만 명), ‘검사외전’(2016·970만 명), ‘마스터’(2016·714만 명) 등….

원빈, 이정재, 황정민, 이병헌, 강동원 등 개성 있는 톱스타들이 머릿속에 스치고,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 장면이 몇몇 떠오른다. 그런데 무척 다양해 보이지만 이 작품들엔 장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야기의 중심축이 기본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점. 어느 정도 스릴러식 반전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전체 구도는 ‘권선징악’의 틀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빌런(악당)은 대체로 무자비한 범죄자이거나 두 얼굴을 가진 권력자, 히어로는 경찰이나 검찰 또는 정부 요원으로 정확히 대비된다. 빌런과 히어로의 경계가 뚜렷하고 빌런이 악행을 저지르면 히어로가 정의롭게 해결한다. 물론 이런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도구는 액션이다. 말보다 빠르고 화려한 격투와 치밀하게 연출된 설정으로 질주하고 싶은 관객의 욕구를 대리만족시킨다. 메시지와 액션이 너무 선명해서 단순하다고 느낄 정도다.

따라서 자칫 지루함에 빠지기 쉽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한 액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시리즈로 발전하기가 어렵다. SF 장르는 시공을 초월하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릴러는 무릎을 치게 하는 반전 드라마로 관객을 붙들지만, 액션은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을 잡아둘 재료가 그리 많지 않다. 흔히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와 ‘베테랑’을 시리즈처럼 혼동하는 관객이 많은데 ‘부당거래’는 연쇄 살인 사건을 두고 형사와 검사가 대립하는 이야기이고, ‘베테랑’은 부조리한 재벌을 파헤치는 형사의 이야기였다. 둘 다 형사가 주인공이고 그게 황정민이었기에 이런 오해가 벌어지는데 심지어 형사의 이름도 다르다. ‘부당거래’의 경찰은 최철기(황정민), ‘베테랑’의 경찰은 서도철(황정민)이었다.

그만큼 범죄 액션은 기억에 남는 시리즈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범죄도시’가 이런 불문율을 깨뜨리고 있다. 2017년 1편이 68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데 이어 지난해 ‘범죄도시2’가 1269만 명을 동원하며 ‘1000만 영화’에 진입했다. 코로나19 직후라 봉쇄와 제한이 풀렸다고는 해도 눈에 띄는 결과였다. 더구나 요즘처럼 한국영화가 비틀거리는 상황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범죄도시(맨위 1편부터 아래로 2편, 3편)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
범죄도시(맨위 1편부터 아래로 2편, 3편)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

31일 개봉하는 ‘범죄도시3’는 이런 흥행 DNA를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진행된 사전 시사회에서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26일 기준, 예매율은 51.1%에 이른다. 24일 개봉한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가 13.7%,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가 11.9%인 것에 비해 4∼5배에 달한다.

클리셰 범벅에 장르적으로 포화 상태인 레드 오션에서 ‘범죄도시’는 어떻게 성공한 액션 시리즈가 될 수 있었을까.

첫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시원한 액션이다. ‘범죄도시’의 액션, 정확히는 주인공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격투는 볼 때마다 ‘한 방’이 있다. 복싱에 기반한 펀치의 파괴력이 가히 메가톤급이다. 상대가 칼을 휘둘러도 맨몸으로 응징한다. 그의 묵직한 펀치에 빌런들은 거의 공중에 떴다가 바닥과 벽에 내려꽂힌다. 종종 그 수위가 과장돼 보인다. 그러나 그런 걸 따질 틈이 없다. 넓은 어깨와 큰 주먹의 소유자인 마동석에게 한 방 맞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시리즈를 성공시킨 주인공인 마동석의 힘이다.

‘범죄도시3’에선 여기에 속도감 있는 카메라 워크까지 더해졌다. 마동석이 상대의 공격을 피해 빠르게 섀도복싱을 하고, 지체 없이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마동석의 움직임과 같은 리듬으로 출렁인다. 1, 2편보다 더 강한 타격감과 스피드가 느껴지는 이유다.

'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둘째는 유머다. 액션과 유머는 서로 필요악이다. 적당하면 윤활유가 되지만 넘치면 액션의 긴장을 떨어뜨린다. ‘범죄도시’의 유머는 지나칠 정도로 적당하다. 결코 선을 넘는 법이 없다. 마동석의 포커 페이스와 함께 엉뚱한 매력을 발산시킨다.

기억에 남는 명대사들이 많다. 1편을 각인시킨 마동석과 ‘장첸’ 윤계상의 화장실 안 1대1 격투 장면. 윤계상이 혼자 나타난 마동석에게 "혼자야?"라고 물어보면, "어 아직 싱글이야"라고 답하는 마동석의 위트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목숨이 걸린 절체절명의 대결을 앞두고 나올 법한 대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유머를 첨가한다.

2편에서 마동석과 ‘강해상’ 역의 손석구가 버스 안에서 격돌하는 장면에도 촌철살인의 대사가 등장한다. 역시 둘 중 하나는 결딴이 나야 하는 긴박한 순간. 마동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내뱉는다. "맞다가 죽을 것 같으면 벨 눌러". 3편에도 이런 유머가 곳곳에 배어 있다. 때론 벼리고 벼린 시나리오에 의해, 때론 마동석의 재치있는 애드리브 속에 탄생한 언어의 유희들이다. 선을 넘지 않는 유머는 관객들에게 쉬어갈 타이밍을 알려준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오마주의 오마주를 낳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셋째는 시그니처다. 시리즈의 생명은 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에 있다. 장르적으로 해묵은 상징을 쓰면 클리셰가 되지만 시리즈만의 장점을 활용하면 개성이 된다. ‘범죄도시’의 시그니처는 갈수록 진해지는 것 같다. 도입부에서 마동석이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가 가공할 힘의 소유자임을 암시한다. 노상에서 행패를 부리는 폭력배를 순식간에 쓰러뜨리고 증거물인 칼을 비닐백에 담으라고 하는 제스처도 마찬가지다. ‘진실의 방’은 힘과 유머를 버무린 ‘치트키’다. 기세등등하던 범죄자들은 진실의 방에서 누구보다 순한 양이 되고, 관객들은 배꼽을 잡는다.

넷째는 한 스푼의 신선함이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최대의 적은 낯익음과 익숙함일 터. 액션물은 지루한 반복이 연출되는 순간 관객에게 외면당한다. 그러나 ‘범죄도시’는 시그니처를 유지하면서도 조금씩의 변주를 통해 새로움을 더한다. 3편의 진실의 방에는 청소 시간이 첨가됐다. 영화를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범죄도시’가 롱런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큰 원동력은 선악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한 진정성에 있다고 하겠다.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 선한 사람이 이긴다는 교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마동석이 "나쁜 놈을 잡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잡는 거야"라고 외치는 말에 그 진정성이 들어 있다. ‘묻지마 범죄’가 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마동석의 정의의 펀치는 관객들에게 큰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벌써 4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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