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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신윤재(칼럼니스트)
  • 입력 2023.03.23 09:50
  • 수정 2023.03.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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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킴' 이름 내세운 '판도라', 그러나 김순옥이 아니다

시청자 기대심리 맞추지 못하는 전개! 3%로 내려앉은 시청률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은재는 제발 뱃속의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절규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교빈과 애리는 고개를 돌려 가버린다. 이때 은재는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지나간 과거들이 하나씩 스쳐간다.’

‘주인공 장보리는 엄마인 김인화가 큰 아빠인 장희봉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교통사고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에 빠진다. 뒷좌석에서 몰래 빠져나온 뒤 도혜옥의 차에 부딪친 보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연민정과 도혜옥의 집에 함께 산다.’

‘대한민국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헤라팰리스의 펜트하우스에 사는 심수련은 양집사의 시중을 받으며 단장한 후 20층 로비와 100층 펜트하우스를 오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밀려 추락하는 민설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후 비명을 지른다.’

이상은 세 편의 드라마 첫 회 줄거리다. 첫 번째는 2008년 방송된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고, 두 번째는 2014년 MBC에서 방송된 드라마 ‘왔다! 장보리’다. 마지막은 2020년 방송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다.

이 세 편의 드라마는 모두 ‘막장 드라마’의 장인이라 불리는 별칭 ‘순옥 킴’,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시대는 달랐지만 세 드라마는 모두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스스로는 ‘막장 드라마’의 작가로 불리는 일을 거부하고 있지만, 핏빛치정과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자극성 그리고 필요하다면 출연 캐릭터를 몇 번이고 죽였다 살리는 기이한 설정은 ‘막장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빼놓고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런 그가 ‘펜트하우스’ 이후 침묵을 깨고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왔다. tvN 주말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 ‘판도라:조작된 낙원’(이하 판도라)이다. 이번 작품에서 김순옥 작가는 ‘크리에이터’로서 참여한다. 현재로선 그 크리에이터라는 직책이 기존의 작가 직책과 어떻게 다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대신 대본의 중책은 그의 수제자이자 이 작품이 메인 작가로서의 데뷔작인 현지민 작가가 맡았다.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크리에이터’는 대한민국 드라마 지형에서는 연출자인데 ‘디렉팅’ 즉 현장연출보다는 기획과 구성 쪽에 더욱 집중하는 연출자를 뜻한다. 따라서 김순옥 작가는 단순히 대본을 쓰는 일을 넘어서 장면의 구성이나 캐릭터의 구축에도 관여하는 등 좀 더 폭넓게 작품에 관여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판도라’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인 것인가. ‘판도라’가 기획되면서 많은 이들이 그 부분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순옥 작가의 인장처럼 찍히는 다양한 요소가 다시 한 번 TV 드라마에서 구현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판도라’는 기본적으로 두 여자의 이야기다. 홍태라(이지아)와 고해수(장희진)은 서로를 의지하는 절친한 사이지만, 홍태라는 과거의 기억이 없다. 어쨌든 대선에도 출마할 정도의 실력자인 표재현(이상윤)의 아내인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15년 전 기억이 깨어난다. 기억의 전모는 바로 고해수의 아버지이자 전임 대통령인 고태선 저격사건 주범이 자신이라는 점이다.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그것처럼 빠르게 홍태라의 기억이 살아나고, 고해수가 아버지의 저격범인 오영이 홍태라라는 사실을 빠른 시간에 알려준다. 싸움은 두 갈래다. 홍태라는 한울정신병원을 비롯한, 자신의 기억조작에 관여했다고 여겨지는 세력과 싸워야하고, 고해수는 아버지를 죽인 홍태라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원수와 원수가 겹쳐지는 복잡한 구도에 중심이 있지 않았다. ‘판도라’는 두 여자의 싸움에 온갖 음모가 뒤섞인 인물을 끼워넣지만 확실한 악역이 없다. 이는 ‘아내의 유혹’ 신애리(김서형),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펜트하우스’의 천서진(김소연) 역할의 인물이다. 홍태라는 굳이 악행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고, 고해수 역시 악행을 할 수 있지만 그는 그 사실이 드러나면 안 되는 국민적 인지도의 뉴스앵커다.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판도라:조작된 낙원’, 사진제공=tvN​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할 유력한 인물로는 홍태라의 언니 홍유라(한수연)가 있었다. 그는 고해수의 남편 장도진(박기웅)과 불륜관계였고 거기에 구성찬(봉태규)와도 만남을 갖고 있었다. 중간에서 ‘칼춤’을 추기 적절했지만 4회가 끝날 때 쯤 그는 살해당하고 만다. 이전 작품 특히 김순옥 작가의 전작 ‘펜트하우스’에는 ‘절대악’으로 불릴 두 인물 천서진과 주단태(엄기준)가 있었다. 그렇지 않은 ‘판도라’는 다소 밋밋하다. 이는 남자주인공인 표재현이나 장도진, 봉태규에서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게다가 홍태라가 킬러라는 설정 때문에 끼워넣은 액션은 이지아와 관련한 필요없는 비장미만 올려준다. 그리고 한울정신병원의 인물들은 만화에 나오는 악당과 그의 수하 같이 연기의 ‘억텐(억지 텐션)’이 심하다. 쉼 없이 몰아치는 분위기 김순옥 작가의 풍미를 내지만 그 열기의 끝에 어떤 지점이 있는지 시청자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김순옥 작가의 작품은 상대에 대한 욕망(아내의 유혹), 성공에 대한 욕망(왔다! 장보리), 자식의 성공에 대한 욕망(펜트하우스) 등 비교적 뚜렷한 목표를 각 인물에 심어놓고 복마전을 벌였다. 하지만 ‘판도라’는 복합장르에 인물 사이의 갈등은 보이지만 이것이 폭발하는 모습은 김순옥 작가에 비해 주저하는 듯하고, 뭔가 다르게 만들려는 시도는 어긋나고 있다.

그래서 결과는 6%로 시작했던 수도권 시청률이 3%대로 내려앉았다. 그래도 김순옥 작가의 연관된 작품이라 대중이 학습한 기대심리를 ‘판도라’는 묘하게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은 ‘판도라’에게 김순옥 작가를 부른다. 하지만 ‘판도라’의 대답은 이렇다. ‘판도라’, 김순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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