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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찢남' 前 웹툰작가들의 새로운 펜의 목적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티빙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의 배경은 무인도이지만 동시에 만화 속 세상이다. 벌판과 바다를 배경으로 출연자들을 자연인의 위치에 놓으면서, 이들에게 웹툰컷 실현이라는 미션으로 또다른 차원에 존재하게 한다. '만찢남'이란 제목처럼 출연진인 웹툰작가 주호민, 기안85, 이말년, 모델 주우재는 '만화를 찢는 남자들'이다.

불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마찰시키는 출연진의 모습은 SBS '정글의 법칙'을 떠올리게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무언가를 집중해 만드는 기안84의 모습은 '나 혼자 산다'를 얼핏 연상시킨다. 여행 예능이라 출연진을 속여 무인도로 '끌고'가는 모습은 나영석의 여타 예능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들과는 또 사뭇 다르다. 출연진들은 먹고 자는 생존기에만 골몰하지 않고, 기안84는 더 오래된 인연들과 부닥치며 다른 예능보다 더 진하게 자신을 드러내보인다.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 이들이라면 주호민이나 이말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본업은 웹툰작가이지만 펜을 놓은 지 좀 된 세 사람은 만화 속 세상이라는 배경에서 자신들이 그린 웹툰컷을 실현하면서 본업과도 한발 다가선다. 다만 이들이 다시 쥔 펜은 타인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는 대로 본인 앞에 실현되기 때문이다.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세 사람의 상황이 펜을 놓은 지 좀 된 웹툰작가라는 것은 이들이 무인도라는 공간에 봉착한 것과 묘하게 맞물린다. 오랜 시간 만화를 그려왔던 이들에겐 무인도처럼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늘 과제처럼 주어졌다. 펜으로 빈 종이를 채우는 게 일이었고, 이젠 행동으로 여백을 채운다. 때문에 무인도라는 배경은 이들의 생업이던 백지와 복선이 된다.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때묻은 종이에 더 이상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던 이들에게, '만찢남'은 뽀얗고 깨끗한 새 종이를 건넨다. 

'만찢남'은 이들이 웹툰작가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평가에 시달리지 않는 다른 차원의 마감을 쥐어주며 펜만 들면 복잡하던 머리 속을 리셋시킨다. 그래서 이들은 '만화 속 세상'을 표류하면서도 자주 웃는다. 이말년의 시원한 웃음은 복잡한 셈에 얽혀있지 않다. 그래서 요상한 미션을 치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대는 모습은 화면 밖 시청자까지 자연스럽게 웃게 만든다.   

어디까지나 방송 출연이 부업일 뿐인 정식 예능인도 아니기에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인 행동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사운드의 공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서로 간의 마찰에도 이미지를 포장하려 애쓰지 않는다. 기안84의 뻣뻣함에 이말년은 분노 게이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때때로 걸죽한 욕설도 내뱉는다. 집착적으로 웃음을 쫓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도리어 경계심을 허문 웃음을 유발한다. 이들의 만화컷 미션 수행은 출연진들의 개성에 비해 부차적이지만, 이러한 개성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도우며 각자의 매력을 딴딴하게 품어낸다.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만찢남', 사진제공=티빙

조곤조곤한 말투에 섬세한 감성을 입은 주호민, 태어난 김에 대충 사는 듯 보이지만 한번 꽂힌 것에는 절대 대충이 없는 기안84, 걸걸한 말투에 그저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이말년, 여기에 4차원 프로방송인 주우재. 이런 네 사람이 만화 속 캐릭터가 되어 만화대로 살아가는 모습은 그들이 그려온 웹툰의 유니버스처럼도 보인다. 

공개된 1,2회까지 이들은 직접 그렸지만 자신들이 할 줄은 몰랐던 웹툰컷을 실행하거나, 정체 모를 작가가 그려준 웹툰컷을 수행했다. 예고편에서 이들은 이제 직접 만화를 그리며 자신들의 세상을 실현한다. 비닐 텐트가 럭셔리  텐트로 바뀌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위스키 잔을 부딪힌다. 전입신고까지 하고 싶다며 신이 난 모습이 짧게 비쳐졌다. 

고생스럽건 아니건 이들은 종이 앞에서 처음으로 평가에 시달리지 않는다. 제작발표회에서 주호민은 "기안84는 무인도에 갇힌 게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에 갇힌 것"이라는 말을 했다. 오랜만에 그린 그림이 "재밌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자유의 감각은 때론 기발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도시에 갇혀 치열하게 펜대를 휘두르던 이들에겐 '만찢남'은 다시 무언가를 그릴 때의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자신들을 '전직 웹툰작가'라 소개하는 이들은 그렇게 만화 속 세상에 다시 발을 들였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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