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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류경수, 묘한 광기에 담아낸 깊은 성찰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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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경수가 연기한 '지옥'의 유지사제와 '정이'의 김상훈은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목표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묘한 광기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두 캐릭터를 연기한 류경수 역시 이러한 묘한 광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실제로 만난 류경수는 전혀 달랐다. 평소에도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류경수는 "그래서 더 밝게 행동한다. 안 그러면 불만 있냐고들 하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류경수가 출연한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류경수는 '정이'에서 연합군 승리의 열쇠가 될 정이의 뇌복제 실험을 꼭 성공시켜야 하는 연구소장 상훈 역을 맡았다. 

연구소장 상훈은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유머를 즐긴다. 마지막에는 "유머예요"라며 웃지만 상훈의 유머에 웃는 사람은 회장뿐이다. 또한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항상 과장된 말투와 몸짓을 보여준다. 생동감을 주기 위한 목적을 뛰어넘은 상훈의 행동은 어딘가 찝찝하다. 실제로 상훈 같은 사람이 내 상사라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철저하게 의도된 바였다.

"주변에서 만났을 때 불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도 안 되는 유머를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은 인물 말이에요. 또 불편한 지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모든 표현이 과한 사람은 불편하더라고요. 과한 제스처를 쓴다든가 하는 그런 지점들이요. 관객분들도 '저 사람 왜 저래?'라고 보다가 사람이 아닌 게 밝혀졌을 때 다가가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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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훈은 인간이 아닌 크로노이드 회장의 뇌를 복제해 만든 로봇이었다. 상훈의 정체는 회장이 연구소에 방문하며 정체가 드러난다. 서현과 대화를 나누던 상훈은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정지하며 상훈이 로봇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에게 첫 반전을 선사한 셈이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동작을 정지한 상훈을 사이에 둔 회장과 서현은 아무렇지 않게 상훈의 폐기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윙크는 CG였는데 선배님들이 저를 보고 연기하셔야 해서 멈춰있었어요.  그 장면은 아이러니가 보여지면 좋을 것 같았어요. 보통 로봇이 멈추는 장면에서 감정이 확 드러나거나 무표정하면 멋있을 것 같은데 우스꽝스럽게 멈춰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본인이 폐기될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본인은 웃고 있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대본에는 걷다가 멈춘다라고만 적혀있었는데 아이디어를 추가했어요"

모든 연기가 그렇겠지만 로봇을 연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주변에서 참고할 만한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고 CG가 많이 들어가는 특성상 배경 역시 휑할 때가 많다. 류경수는 오히려 더 과한 인간을 연기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중요한 포인트는 상훈 스스로가 본인을 로봇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점이에요. 나중에 그게 밝혀졌을 때 오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인간보다도 과한 인간. 주변에서 만나면 불편할 것 같은 인간보다도 과한 인간이 포인트였어요. 사실 SF든 어떤 장르든 연기는 항상 어려워요. 이번에는 CG도 많은 편이라 더 어려웠어요. 사실 찍으면서 '잘 했다'고 결론을 낼 수 없는 것이 평가는 관객의 몫이잖아요. 항상 '어떻게 보일까' 고민했어요. 이번에는 상상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는데 구현된 비주얼을 엄청 재미있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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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류경수는 '정이'를 통해 그 인연을 이어갔다. 또한 연상호 감독이 극본과 기획에 참여한 '선산'에도 출연하며 두 사람의 인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옥'의 후시 녹음을 할 때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할 건데 대본을 보낼 생각이야'라고 하셨어요. 저는 대본을 안 보고 무슨 역할인지도 모르고 한다고 했어요. '로봇 나온다'고 해서 로봇 중 하나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큰 역할인지 몰랐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놀랐어요. 제작비도 많이 들고 대선배님들이 나오시는데 제가 맞나 싶었어요. 정말  감사하기도 했고요. 사실 '지옥'의 어떤 면을 보고 저를 또 불러주셨는데 얘기를 안 해주셔서 저도 궁금해요. '지옥'에서는 표현을 절제하다가 마지막에 무너지면서 폭발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제가 주변 눈치를 안 보고 캐릭터에만 몰두하니 그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상훈이는 더 눈치 안 보고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니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즘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반대로 연상호 감독님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접해볼 수 없는 부분을 잘하신다고 생각해서 흥미로웠어요. SF장르는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가 이런 장르를 또 언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마지막일 수도 있고 기회가 또 있을 수도 있겠죠"

특히 류경수는 감독 연상호 이전에 인간 연상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 역시 앞서 인터뷰를 통해 류경수와의 유머코드가 잘 맞는다며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저는 리액션 담당이고 연 감독님이 액션 담당이에요. 제가 잘 웃어서 많이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님은 재미있으시고 현장도 좋고 이야기도 흥미로워요. 연기의 매력 중 하나는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연상호 감독님의 세계관이 항상 흥미로웠어요. 무언가 뒤틀린 것 같을 때도 있고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찌르는 것도 있고 캐릭터도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관심이 많이 갔어요. 사실 이야기를 떠나서도 연상호라는 인간 자체의 분위기, 촬영장의 분위기, 일자리의 환경이 너무 좋아서 어떤 역할이든 하겠다고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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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를 이끌어가는 배우는 서현 역의 강수연과 정이 역의 김현주다.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비교하면 류경수는 갓난아기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정이'는 촬영 단계부터 배우 강수연의 10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오랜 간극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연기라는 공통분모로 통했다.

"평소에 제가 좋아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세대나 나이를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솔직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 표현도 주눅 들면 더 못하는데 정말  편하게 잘 해주셨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끈끈해졌어요. 사실 처음에는 부담감도 컸어요. 강수연 선배님이 오랜만에 복귀 하셨는데 필모그래피를 봐도 제 또래 배우들과는 접점이 없잖아요. 영광이면서도 누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두 분은 인지도 그런 것들을 떠난 동료가 됐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선배님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셨어요"

류경수의 말에 따르면 강수연은 류경수가 뛰어놀 수 있게 판을 깔아줬다. 물론 '원조 한류스타' 강수연과의 연기 호흡은 류경수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많은 도움이 됐다. 강수연은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마지막 작품을 함께 했던 류경수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조언 같은 건 해주지 않으셨어요. 조언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그런 것 없이 정말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첫 촬영 하고 제일 먼저 감독님이 아닌 강수연 선배님께 달려갔어요. '좀 이상하지 않냐'고 여쭤보니 '왜? 난 너무 매력 있는데'라고 해주셨어요. 그 때 용기를 얻었어요. 처음 연기하는 걸 봤는데 유독 눈동자가 잘 보이더라고요. 큰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눈에서 빛나는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이랄까. 보고 있으면 차분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영화 개봉할 즈음 돼서 선배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재미있게 놀면서 촬영하고 촬영 끝난 뒤에도 봤거든요. 저를 예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더 드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냥 일상을 살다가 영화가 나올 때 되니까 한동안 울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선배님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했어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져서 선배님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선배님이 기억됐으면 좋겠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간이 흘러서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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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많은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정이' 역시 개봉 직후 나흘 연속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이후 1년 만에 한국 작품이 글로벌 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또한 공개 3일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같은 흥행과 반대로 실제로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이 평은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류경수는 이 같은 글로벌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한국 사람이라 그런가 한국 작품이 잘될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정이'의 해외 반응은 예상하지 못 했어요. 미국은 특히 SF 영화가 예전부터 많이 나왔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훨씬 발전된 장르잖아요. 그래서 미국에서 1위를 했을 때 놀랐어요. 감사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제가 연기를 하면서 변하지 않는 가치 중 하나는 관객이에요. 평론가 역시 관객이고 모두 관객인데 결국 영화나 배우는 관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평이 재미없다면 그게 맞고 재미있다면 또 그게 맞는 거에요. 저는 너무 재미있게 만들었는데 이것도 맞고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 맞다고 봐요. 다만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있어요. 다만 매 작품 이런 부분은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류경수는 '정이'를 통해 많은 동료들을 얻었고 많은 교훈을 배웠다. '정이'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냐는 질문에 류경수는 "어떠했든 작품으로 남을지보다는 제 삶에서 오래 기억될 작품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은 분들에게도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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