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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신윤재(칼럼니스트)
  • 입력 2022.12.08 10:42
  • 수정 2022.12.08 10:47
  • 댓글 0

송중기 전엔 이준기, 주인공들은 왜 인생 2회차를 살아야 할까?

웹소설 웹툰 영향으로 회귀물 드라마 봇물! "왜 자꾸 돌아와?"

'재벌집 막내아들', 사진제공=SLL, 래몽래인, 재벌집막내아들문화산업전문회사
'재벌집 막내아들', 사진제공=SLL, 래몽래인, 재벌집막내아들문화산업전문회사

2022년 12월 초, 최근 TV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시작부터 배우 송중기와 이성민의 출연, 웹소설이나 웹툰을 통해 유행했던 회귀물이라는 설정 그리고 일주일에 금, 토, 일요일 3일을 편성하는 파격적인 전략 등으로 화제가 됐다.

막상 뚜껑을 열자, 화제가 될 만한 요소는 더욱 많았다. 배우 이성민이 시청자의 호흡을 잡아채는 연기는 물이 올랐고, 시선을 잡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아주 많았다. 거기다 극 중 배경이 되는 순양가의 모습은 실재하는 재벌가의 모습과 주요인물을 투영한다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주목도를 높였다. 처음 6%의 시청률로 시작했던 작품은 9회를 앞두고 있는 요즘 2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극 초반 현시점의 재벌가 순양그룹에서 각종 궂은일을 하고 있는 윤현우(송중기)가 그룹 안의 흑막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실제 순양가의 막내손자로 다시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설정을 ‘회귀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미 이 회귀물이라는 설정은 2010년대 후반부터 웹소설이나 웹툰을 통해 크게 유행했던 설정이었다. 이러한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이렇게 시간을 되돌리는 틀을 가진 작품들을 ‘회.빙.환’이라는 용어로 줄여서 불렀다. 이는 각각 ‘회귀’ ‘빙의’ ‘환생’의 약자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용어들의 쓰임은 조금씩 다르다. 회귀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크게 후회되는 일 또는 목숨을 잃거나 잃기 직전의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으로 돌아간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기억에 가진 채로 돌아간다.

빙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동시성을 담보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이 시각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세계를 바꿔서 마블의 용어 ‘멀티버스(Multi-Verse)’처럼 평행세계가 존재해 그 세계 속 이 시각의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환생 역시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지만 동시대가 아니다. 아예 미래가 될 수 있고, 과거도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순양가의 해결사가 순양가의 손자, 아예 다른 사람이 돼 나타나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환생의 작법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 ‘회.빙.환’은 지금 안방극장을 주도하는 장르로 성장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상승세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러한 설정은 최근 TV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검사였던 주인공 김희우(이준기)가 악의 축 조태섭(이경영)을 노리다 그의 하수에게 죽임을 당하고 20대 초반의 나이로 돌아가 복수를 계획하는 내용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게 ‘회귀물’이다.

김희선 주연의 MBC ‘내일’ 역시 ‘회.빙.환’의 코드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저승사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막거나 잘못 죽은 사람을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코드는 ‘환생물’인 셈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 사진제공=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 사진제공=SBS

‘회귀’ ‘빙의’ ‘환생’ 등의 코드는 최근 드라마 창작의 젖줄이 되는 웹소설, 웹툰 대세장르다. 이에 따라 이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연쇄작용으로 많이 방송되기 시작했고 ‘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가능성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장르의 유행에는 조금 더 깊은 함의가 숨어있다. 

지난 8월 오픈서베이가 진행한 웹툰 트렌드 리포트에서 20대가 각 연령대 중 가장 웹툰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웹툰이나 웹소설을 소비하는 일은 일상적이며 전체적으로 봐도 일주일에 4.6일, 꾸준히 보는 작품수는 10개에 육박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웹소설, 웹툰 콘텐츠는 이들 세대의 욕망을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의 어려움, 팍팍함으로 쉽게 이룰 수 없는 일들은 ‘회.빙.환’ 장르에서는 쉽게 이뤄진다. 이러한 설정변화에 따라 개연성은 다소 사라지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마치 이들 세대에게 익숙한 게임처럼, 인생은 마치 잘못 끝났을 때 저장해놓은 데이터를 다시 가져와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들 세대를 둘러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이렇게 현실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구현돼 정신을 환기하는데 도움을 준다. 젊은 세대가 욕망하는 것이 클수록, 다른 상황이 되고 싶은 열망도 강한 것이다.

물론 옮겨간 사람의 능력을 쓰는 빙의 대신, 회귀나 환생은 지금까지 주인공이 쌓아놓은 데이터를 다시 이용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좀 더 높은 나이의 세대 욕망이 투영됐다는 주장도 있다. TV의 ‘회.빙.환’ 장르를 봐도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이준기는 검사였고, ‘재벌집 막내아들’ 송중기는 대기업의 핵심직원이었다. 

어쨌든 핵심은 좀 더 편리하게, 극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반전시키려하는 대중의 욕망이 극에 깊이 투영됐다는 사실이다. ‘회.빙.환’ 장르는 당분간 안방의 대세가 될 전망이다. 네이버 시리즈 조회수 1억6000만회를 넘은 인기 웹소설인 빙의물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상화를 준비 중이다. 소설의 독자였던 주인공이 책의 세계 인물에 빙의된다. 평사원에서 CEO가 됐지만 인생을 잃은 주인공의 인생 2회차를 다룬 웹소설 ‘상남자’도 드라마화가 진행 중이다. 환생을 거듭한 여자가 전생인 18번째 인생에서 만났던 남자와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로맨스 환생물 ‘이번생도 잘부탁해’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회.빙.환’ 장르의 유행 이유가 어떤 것이든 간에, TV에 대중들의 욕망이 강하게 비춰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극 안에서 만큼은 더욱 강력한 누군가가 되고 싶고, 더욱 빼어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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