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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를 앞둔 BTS 리더 RM의 자아 성찰

사진제공=빅히트뮤직
사진제공=빅히트뮤직

10년은 강산만 변하는 세월이 아니다. 사람도 변한다. 풀과 나무, 산세와 물길이 세월 따라 변하듯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 습관도 시간 따라 달라진다.

BTS의 리더 RM(알엠)의 첫 공식 솔로 앨범은 그런 한 인간의 변화를 전시한 작품이다. 앨범 'Indigo'는 10대 때 시인과 래퍼를 동시에 꿈꾼 소년이 20대 때 그 꿈을 이룬 뒤, 30대를 목전에 둔 시기에 당면한 감정을 아홉 살 때 '나'로 돌아가 풀어놓는 작품이다. 즉 내가 내가 되고 싶은 이야기, "나에게 갇힌 나"를 해방시키려는 이야기가 이 앨범에는 녹아 있다. 내가 나를 가두다니. 발자크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어쩌면 불행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것일지 모른다.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의 쪽빛(Indigo)을 타이틀로 택한 이 음반은 때문에 RM의 음악적 자화상이자 자서전이요, 먼길을 걸어온 뒤 조용히 감행하는 다리 쉼이며 그 사이 하나 둘 꺼내보는 자아의 필사적인 반추다. RM은 그걸 "20대의 마지막 아카이브"라고 불렀다.

이 휴식과 반추의 전반적인 정서는 그리움과 외로움('Closer'), 자조와 냉소('Lonely')다. 자신의 "분수보다 비대해진 삶"을 맞닥뜨린 한 슈퍼스타의 넋두리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본작이 "빌어먹을 트렌드세터(F**k the trendsetter)"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단정하고 자욱한 붐뱁 비트로 신작의 시작을 알리는 'Yun'. 로린 힐, 메리 J. 블라이즈의 보컬에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와 데 라 소울의 사운드를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은 네오 솔의 거물 에리카 바두가 피처링 한 트랙으로, 제목은 4년 여 전부터 알엠의 예술 감성을 사로잡은 화가 윤형근의 성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조르주 쇠라와 모네, 피카소에서 비롯된 RM의 시각예술을 향한 관심은 "인간의 본질인 진실과 인간의 목적인 천진무구한 세계"를 강조한 윤 화백의 작품 세계에 이르러 마침내 시로 거듭났다. 집에 미술작품을 거는 행위를 '영적 체험'이라 말하는 RM이 숨을 쉬는 작품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추상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질감"이 그 'Yun'에선 들린다. 윤형근의 작품을 벽에 걸고 RM 자신이 주저앉은 듯한 모습을 담은 앨범 재킷은 그래서 틀림없는 곡 'Yun'의 시각적 재현이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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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정물"이라는 모순된 표현으로 캔버스 틀에 갇혀 전시되는 듯 느껴지는 자신의 처지를 그려나가는 다음 곡 'Still Life'에서도 그렇고, 피처링은 수록된 10곡 중 80퍼센트 비율로 적용됐다. RM이 가장 좋아한다는 칸예 웨스트나 어릴 적 영웅인 나스, 에미넴의 이름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한국과 인연이 깊은 싱어송라이터 겸 래퍼/프로듀서인 앤더슨 팩과 한국계 캐나다인 래퍼 폴 블랑코가 RM을 위해 각자 재능을 빌려주었다. 나는 여기서 나머지 한국인 참여자들을 주목하고 싶은데,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콜드(Colde)야 RM의 평소 음악 성향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인디 포크 뮤지션 김사월과 체리필터의 보컬리스트 조유진, 그리고 단순 가수에서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나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걷고 있는 박지윤은 지난 믹스테이프의 넬(Nell)에 버금가는 다소 의외의 섭외로 보이는 것이다. 동시에 이 참여는 평소 RM이 비주류 음악에도 얼마나 귀를 열고 사는지를 간접으로 보여주는, 그의 음악 토양이 가물지 않고 비옥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휘파람 반주 위에 김사월과 듀오로 거니는 '건망증'은 'Yun'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을 향한 RM의 일관된 심정을 자연스러운 미니멀 편곡에 실어 나른다. 짜릿한 한 방도 번쩍이는 후크도 없지만 스스로를 관조하며 자신을 건져내는 콘셉트 앨범에서 화려한 테크니컬 랩 대신 차분한 노래로 메시지 전달에 무게를 둔 그의 선택은 꽤 적절해 보인다. 이 무덤덤한 자기 성찰은 RM이 "넘버원 록스타이자 전설"로 치켜세운 조유진의 탁월한 표현력을 빌린 '들꽃놀이'에까지 이어지는데, 꿈이 집어삼킨 RM과 온전한 내가 아닌 RM의 지친 듯 쓰라린 랩은 코러스로 솟구치는 조유진이 "울트라 A급 국제적 수준의 보컬리스트"(신해철이 생전에 한 말이다)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타는 불꽃에서 (땅의) 들꽃으로" 힘겹게 흐른(Flow)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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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한국 여성 뮤지션의 마지막 피처링 곡이기도 한 'No.2'는 마치 박지윤의 노래에 RM이 참여한 느낌을 줄 정도로 멜로디와 소리 질감이 그간 박지윤이 추구해온 인디 팝 쪽으로 기울어 있다. 과잉의 자의식과 균형된 자아가 공존하는 이 곡에서 RM은 힘을 빼고 박지윤 곁에 다가가 함께 노래하거나 따로 랩을 하며 "뒤돌아 보지 않겠다"는 노래의 테마를 여운처럼 풀어낸다. 그 여운은 과거 타의로 '성인식'을 치른 뒤 나름 뼈를 깎는 노력을 거쳐 음악적 어른으로 거듭난 박지윤과 본의와는 다른 역할을 맡아 20대 대부분을 영광과 압박감의 굴레 속에서 보낸 RM 사이 어떤 동지의식마저 확보하면서 오프닝곡 'Yun'이 가진 의미만큼의 의미를 엔딩곡에 부여했다.

누군가 지적했듯 'Indigo'의 핵심은 힙합이지만 RM은 거기에 네오 솔과 포크, 알앤비와 일렉트로닉, 록을 세련되게 첨가했다. 도시의 밤이 내뿜는 검푸른 고독을 들려준 'Hectic'의 신스팝도 물론 그 요소들 중 하나다. 이어 그것들은 "목소리 큰 자들의 사회에서 침묵의 가치"를 논하고, "내 정체성이 곧 작곡"이라 말한 RM이 타인의 뜻을 대변하는 자로서 부담과 BTS라는 팀 내 정해진 역할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까지 아프게 보듬고 있다. 누군가에겐 인기에 겨워 행복에 겨워 하는 배부른 퍼포먼스라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롤링스톤이 지적했듯 'Indigo'는 분명 2018년의 믹스테이프 'mono.'의 그것처럼 "소외에 대한 성찰이 담긴 프로젝트"이자 "거대한 명성의 한계에 대한 가슴 아픈 자기 성찰"(가디언)이다. 그리고 RM의 글은 그 안에서 "초능력"(롤링스톤)이 되었는데, 이 초능력의 시(詩)는 성공 추구라는 자승자박을 자아 발견이라는 결자해지로 순간이동 시켰다. 아마 RM은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날아갈 듯 기뻤을 것이다. 속이 후련했을 것이다. 어쩌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창살처럼 보이는 윤형근의 그림 저 너머 또 다른 캔버스 속에 자신만의 해방된 공간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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