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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지현의 근사한 연기 증명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배우에게 있어 대중에게 작품 속 배역 이름으로 불린다는 건 훈장이나 다름 없다. 그만큼 캐릭터에 녹아 들고 연기를 잘 해냈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기는 곧 작품의 신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신뢰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낳고, 궁극적으로 배우를 향한 강한 믿음을 품게 만든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뜻의 '믿보배'라는 수식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최근 배역 이름으로 불리며 '믿보배'라는 타이틀을 재차 증명한 배우가 있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 연출 김희원)에서 오인경을 연기한 남지현이다. 방송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은 아씨들'은 마지막회인 12회에서 시청률 11%를 찍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방송 기간 동안에 TV 화제성 부분에서도 5주 연속 1, 2위를 차지했다. OTT에서도 높은 시청 순위를 기록했고, SNS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여러 추측 짤과 등장인물 밈이 양산됐다. 그 중에서도 인경은 캐릭터에 대한 여러 분석이 담긴 글이 인기 짤로 양산됐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과몰입을 유발했다.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평생을 낮고 어두운 곳에서 살아왔던 세 자매에게 거액 700억 원과 함께 인생의 판도를 바꿀 기회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펼쳐냈다. 막막한 현실, 유구한 가난에 갇혀 남들만큼만 사는 것이 꿈이었던 세 자매. 일상의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들의 서사는 높고 밝은 곳으로 향하며 다이내믹한 성장기로 막을 내렸다. 남지현이 연기한 세 자매 중 둘째 인경은 가난으로 생겨난 결핍과 트라우마로 인해 정의 구현에 강한 소신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가장 정돈된 모습으로 서야 할 뉴스 카메라 앞에 긴장감을 감추려 남몰래 술을 마신 채 서는 모순이 있지만, 보다 보면 결국 가장 인간적이고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다.

"캐릭터가 정말 입체적이어서 복잡해요. 정말 입체감의 '끝판왕'이다보니 양가적인 면도 유기적인 게 많았어요. 정의감이 가득한 기자인데 술을 마셔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사실 말도 안 되잖아요. 그 사이에 가정사도 끼어 있고요. 인경은 오랜 시간 고민이 깊었던 아이거든요. 사실 인경이라는 인물의 행동에는 이해가 잘 됐어요. 대본을 보면 이해가 됐는데 시청자들에게도 그 부분이 느껴질 수 있도록 표현해야하니까 그 부분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했어요."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인경은 '작은 아씨들'의 숨은 빌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주장하는 신념들은 타인의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들이었고, 인경이 지나간 자리에는 누군가의 피와 상처가 있었다. 정의에 대한 신념이 강해 오히려 그 순수한 본질이 타인에게 해가 되는 민폐적인 부분이 부각됐고, 이 때문에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도 들어야 했다. 남지현은 이처럼 캐릭터가 마냥 사랑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꿋꿋하게 인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는 예상했던 일이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세 자매 모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주(김고은)랑 인혜(박지후)는 두 배우가 잘 표현해줘서 함께 연기하는 동안에도 고민이 없었어요. 인경이에 대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눈에 보이는 걸 쫓아가는 친구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인주는 눈에 보이는 돈을 쫓는데 인경이는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걸 쫓지 않고 한층 심층적인 걸 쫓아요. 사실 박재상(엄기준)을 노린다기보다는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걸 쫓아가는 친구여서 방송이 되면 분명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뭘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예견했던 일인 만큼 남지현은 보다 큰 믿음을 갖고 인경이라는 인물에 뿌리를 내리고자 연기에 몰두했다. 시청자들에게 미움받더라도 온전하게 캐릭터가 구현될 수 있도록 넘치도록 감정을 쏟아부었다. 때문에 인경이 이상해보이거나 밉살스러워 시청자들의 욕받이가 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드라마가 종영된 후 모두의 입에선 남지현에 대한 찬사가 흘러나왔다. 작품 속 인간의 이면을 비춰준 반드시 필요했던 존재였다는 걸 상기시키며 말이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믿음을 많이 주셨어요. 제가 연기하면서도 '이렇게 까지 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감독님께서 '뒷 내용에 이런 게 나올 수 있고, 이러한 이야기가 펼쳐질 건데 그러한 연기가 전조가 되는 거기 때문에 해도 된다'고 설명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더 겁없이 연기했어요.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었어요. 이전 작품들에서는 모두의 응원과 애정을 받으면서 극을 끌고갔다 보니까 주변에서 (욕을 먹는 부분에 대해서) 걱정해 주시더라고요.(웃음) 상처받거나 실망한 건 전혀 없었어요."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남지현, 사진제공-=매니지먼트숲

인경처럼 본인에게도 집요한 면이 있냐고 묻자 그는 "꾸준히 하는 면은 있다"는 답을 내놨다. 한 번 발을 들인 것은 절대 그만두는 법이 없다는 말에 인경의 모습이 본캐와 상통을 이뤄 더한 몰입감을 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더해 함께 대화를 나눌수록 삶에 대한 건강한 집념이 공간의 사방으로 기분 좋은 아우라를 가득 메웠다. 유려한 화술은 말에 기품을 더했고, 옮겨내는 목소리 톤은 깊디 깊었다. 

"인경이만큼은 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다만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면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 '이제는 해야되겠다'라며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생기면 주변 상황이 어떤지 간에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운동 같은 것도 촬영을 하면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건에 상관없이 무조건 해요. 패턴을 바꾸는 경우는 있어도 멈춘다는 개념이 없어요. 생각해 보니까 연기도 그렇게 했더라고요." 

아역배우로 시작해 3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쌓아온 연기 내공은, 인경이라는 밉살스러운 캐릭터에도 온정을 품게 만들었다. '작은 아씨들'에서 완전무결한 연기를 보여주며 몰입 그 이상의 경지를 이끌어냈다. 10살에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데뷔 18년차를 맞이한 그. 달려온 그 이상의 시간으로 많은 작품에서 그의 근사한 연기를 계속 볼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10년이 아역이었고 8년 동안 성인 역할을 했더라고요. 성인이 되고부터가 연기 경력이 더 짧긴 한데 더 많이 멀리 걸어온 기분이에요. 딱 서른살이 되면 아역 10년 성인 연기 10년이 되더라고요. 그럼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남은 시간을 알차게 채우고 싶어요. 또 최근에 깨달은 건데 연기 시작할 때부터 학생과 배우를 계속 같이 해왔더라고요. 대학교 졸업하고 온전한 직업인으로서 연기를 해본 게 아직 2년 밖에 안 됐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되게 힘이 넘쳐나서 이런 저런 장르를 다 해보고 싶어요. 진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상태처럼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고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활활 불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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