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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펑펑 울게 할 '인생은 아름다워' 명곡들

한국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의 '아름다운' 출발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 제작 (주)더렘프)를 봤다. 아직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여서 시시콜콜 얘기할 순 없겠지만 압축하자면 작품 속에 이미지로 떠다닌 곽지균 감독의 '젊은 날의 초상'과 제리 주커의 '사랑과 영혼'이 암시하듯 한 중년 부부의 젊은 시절 추억과 두 사람이 끝내 헤어지는 아픔이 영화의 두 뼈대라 볼 수 있겠다. 25년 전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가 만든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 영화와 제목만 같지만 당시 국내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이건 흡사 최국희 감독의 영화를 위한 문구인 것 같았다.

"웃으면서 동시에 펑펑 울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영화적 지적도 심심찮게 보인다. "펑펑 울 것"이라는 신파 성향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고 살짝 미흡한 녹음 기술 차원에서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대중음악을 다루는 사람이므로 여기선 그저 영화 곳곳에 흐른 15곡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곡들은 기본적으로 연도별로 나열했고 같은 가수의 곡들은 연도가 달라도 묶어서 리뷰했다.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인 만큼 이 작품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영화적 평가를 떠나 나는 삽입된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 일사불란한 '군무'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팍팍한 일상을 뚫고 적어도 영화가 흐르는 2시간 동안은 당신의 인생이 조금은 아름다워지리라, 믿는다.

신중현과 엽전들 '미인' (1974)

신중현을 가리켜 흔히 한국 록과 솔(soul)의 대부라 일컫는다. 우린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하는데 바로 '한국 일렉트릭 기타의 대부'다. '미인'은 그런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엽전들' 시절에 발표한 곡으로, 영화에 흐르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노래이기도 하다. 시대 탓에 열악했던 장비의 흔적이 역력한 원곡과 달리 영화에선 구성에도 연주에도 코러스에도 풍성한 어레인지를 더해 염정아와 류승룡의 첫 만남을 실컷 들뜨게 해주었다. 근 반세기 전 신중현이 국악의 5음계와 장단을 응용해 만들어낸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 곡의 기타 리프를 두고 혹자는 "한국 록의 아리랑"이라고 했다.

임병수 '아이스크림 사랑' (1986)

임병수의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멕시코 가수 루이스 미겔의 1982년 히트곡 'Directo al Corazon'을 번안한 곡이다. 원문 가사와 뒤섞인 한국어 가사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 지예가 쓴 것으로, 당시만 해도 이국적이고 파격적이었던 몽글거리는 발음은 볼리비아 교포 출신이었던 임병수의 이면을 엿보게 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영화에선 김수철의 '젊은 그대'가 떠오르는 리듬 정도만 뺀 보컬 멜로디와 편곡이 원곡과 거의 비슷하게 설정돼 흐르는데  박세완, 옹성우의 깜찍 현란한 율동이 더해져 보는 재미도 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유열 '이별이래' (1987)

1986년 제10회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를 불러 대상을 받은 유열이 한 해 뒤 내놓은 그의 또다른 대표곡이다. 시인을 꿈꾼 80년대 대표 작사가 박건호가 노랫말을 썼고 윤시내의 '열애'를 만든 최종혁이 곡을 붙였다. 편곡은 역시 80년대를 주름잡은 이호준의 것으로, 그가 길을 낸 현악의 가파른 예각과 세련된 살롱 풍 멜로디는 곡에 매달린 이별의 비극성을 극대화시켰다. 영화에선 그 역동적인 현악 세션을 살짝 누그러뜨려 시작부터 이별을 전제한 이야기 속 아내를 보내야 하는 남편의 허탈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쓰였다.

최호섭 '세월이 가면' (1988)

80년대를 대표하는 원 히트 원더(싱글 하나만 히트시킨 대중음악 아티스트) 최호섭의 곡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최창권)가 작사/작곡한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의 주제가를 불렀고, 청년이 되어선 록 밴드 다섯손가락의 초대 보컬리스트로 잠시 활약했다. 그런 최호섭의 형인 최명섭이 '세월이 가면'의 가사를 쓰고 동생 최귀섭이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젠 공공연한 얘기다. 편곡은 이호준과 80년대를 양분했던 김명곤의 솜씨.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로 웅장한 고독을 그려낸 그의 편곡은 영화 마지막에서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와 사별한 부부의 화음 앞에서 천천히 가라앉는다(알려진 바론 최국희 감독이 영화 본문에 넣지 못한 아쉬움에 엔딩 크레디트에 넣은 것이라 한다). 여담으로 최명섭, 최귀섭, 김명곤 세 사람은 이듬해 '세월이 가면'과 함께 80년대 대표 발라드로 기억될 명곡 하나를 더 만들어냈으니, 바로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같은 것'이다.

이승철 '잠도 오지 않는 밤에' (1988)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1989)

이 영화엔 부활을 떠난 이승철의 솔로 초기를 대표하는 두 곡이 나온다. 그가 부른 두 노래 모두 박광현이 작사/작곡했고 편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했다. 특히 '잠도 오지 않는 밤에' 경우엔 2년 뒤 작곡가(박광현)가 직접 편곡해 불렀는데, 그러나 대중의 뇌리엔 그로부터 다시 2년 뒤 김건모가 편곡하고 노래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라는 곡에 녹인 버전이 더 남았다. 당시 라인기획의 수장으로서 '히트 제조기'로 이름을 떨치던 김창환은 랩 가사와 멜로디 구성을 다시 짜면서 김건모의 곡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도 오지 않는 밤에'를 소화한 염정아의 버전은 박광현의 보사노바나 김건모의 레게 대신 이승철의 것을 적극 참조한 것으로, 다만 노래를 적시는 관악기가 트럼펫이냐 색소폰이냐만 달랐을 뿐이다. 염정아는 원곡의 키가 높아 노래를 부르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한편 류승룡은 젊은 시절 실제 기타를 치며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부른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승철 발라드의 화려한 시발점으로 기억되는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는 진봉(류승룡)의 입대 장면에서 흐르는데, 진봉의 아버지 역으로 특별 출연한 박영규의 뜬금없는 열창(!)과 훈련병들이 가세해 군가처럼 부르는 합창 후렴은 영화를 본 사람들만 해당 시퀀스를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는 지점이겠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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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조조 할인' (1996) 'Solo예찬' (1998) '애수' (1999) '알 수 없는 인생' (2006)

'인생은 아름다워'는 선곡에서만 보면 마치 이문세에게 바치는(Tribute) 영화처럼 보였다. 차라리 '맘마미아!' 마냥 영화 전체에 이문세 노래를 녹였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이문세의 노래들이 주도한다. 이문세 노래 하면 떠오르는 계절(가을과 겨울)이 영화의 중요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감독이 그의 전성기였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이 아닌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이문세를 소환한 것인데, 이는 아마도 세연(염정아)과 진봉의 연애/결혼/이별까지 이어질 정서에 어울리는 노랫말이 그때 곡들에 집중돼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꿔 부르는 타이밍은 조금 달라도 사실상 영화를 여는 '조조 할인'에서 염정아와 류승룡은 절(verse)과 후렴을 나눠 부른 이문세와 이적을 적극 참고한다. '조조 할인'은 알이에프의 '이별공식', 엄정화의 '하늘만 허락한 사랑' 등을 작사한 윤성희가 가사를, 나중에 '뜨거운 안녕'으로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을 토이의 유희열이 곡을 맡아 당대에 크게 히트한 곡이다. 또 2D를 통해 판타지로 빠져드는 휴게소 시퀀스를 장식한 'Solo예찬'은 보아의 'No.1' 노랫말을 쓴 김영아가 작사했고 90년대 후반 당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윤일상이 곡을 쓴 노래다. 류승룡이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 같다"며 따로 칭찬한 '애수'는 7집 이후 이문세 곁을 지켰다 사라졌다를 반복한 고 이영훈이 작사와 작곡을 한 곡으로, 영화에선 원곡과 비슷한 느낌의 혼(Horn) 편성으로 진봉과 세연의 과거를 스산하게 비추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영화 초반 술집 장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라는 사전 정보를 안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그 사실을 대뜸 상기시켜주는 '알 수 없는 인생'은 조규찬의 형 조규만이 곡을 쓰고 이문세가 직접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2000년대 중반에 30대 이상을 보낸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곡이다.

김광진 '편지' (2000)

잔나비의 최정훈도 즐겨쓰는 하오체("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가 돋보이는 김광진의 대표곡. 김광진의 아내인 허승경이 가사를 썼고 김광진이 곡을, 더 클래식(The Classic)에서 김광진과 한솥밥을 먹은 박용준이 편곡을 맡았다. 이 노래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가 첫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거듭 좌절하는 모습을 본 남편이 아내를 놀리는 맥락에 있는 듯 없는 듯 삽입된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래선 안 되는 노래였다. 그 이유는 실화에 바탕한 이 곡의 사연에 있다. 허승경은 남편 김광진과 결혼 전 미묘한 삼각관계를 겪었는데, 집안의 반대로 반강제 선을 김광진과 교제 중에 보았던 것이다. 이후 그는 선 본 남자와 유학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김광진에게 했고 상대편 남자를 만난 김광진은 아내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허승경은 결국 김광진을 택했다. 이후 선 본 남자로부터 편지가 꾸준히 왔는데 마지막 편지에서 '이번에도 답장이 없으면 더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바로 이 노래의 모티프가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건 '편지'가 슬프고 안타깝고 그리워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발라디어 김광진의 운명론적 세계관에서 온 것으로, 곡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고 행복을 빌어주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보다 더 이 영화와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정작 최국희 감독은 '세월이 가면'의 본문 누락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편지'의 어정쩡함이 더 아쉬웠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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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뜨거운 안녕' (2007)

추운 겨울 파주에서 출연 배우 모두가 펑펑 울며 4일 동안 촬영했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에 흐른 노래다. 공일오비에 이어 객원 보컬 시스템을 받아들인 토이의 주인 유희열이 처음으로 디지털(일렉트로닉) 세계로 걸어들어간 여섯 번째 작품에서 김태훈과 함께 만든 이 노래는, 목소리 자체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이지형이 불러 더 특별하게 들렸던 기억이다. 유희열이 직접 쓴 가사는 누가 봐도 연인 간 이별 이야기지만, 영화 속에서 이 노래는 사별을 앞둔 한 부부의 안타까움과 놀라운 케미를 일으키며 이전엔 없던 감성을 곡에 깊숙이 심어냈다. '뜨거운 안녕'은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과 더불어 노랫말과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지길 바랐던 최국희 감독의 뜻이 반영된 대표 사례였다.

이적 '다행이다' (2007)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2013) 

이적은 이 영화에서 총 세 차례 호명된다. 이문세와 듀엣으로 부른 '조조 할인'에서 한 번, 그리고 자신의 두 대표곡들에서 각 한 번씩. 아직 살아있는 아내와 서로를 "만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의미로 영화에 의미심장하게 녹은 '다행이다'는 이적이 곡을 쓴 2007년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던 연인에게 피아노 치며 전화기로 처음 불러준 노래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연인은 지금 이적의 아내다.

나머지 한 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의 심정을 담은 노래로 유명하다. 감독은 이 노래를 엄마의 투병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자식의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로 여겨 영화에 넣었다. 자의로 버린다는 것과 타의로 떠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뜻이지만 어쨌거나 이 노래는 원곡과 리메이크 버전이 짊어진 비극을 묘하게 비슷한 위치로 이끈다. 최 감독은 JTBC '슈퍼밴드'에서 우승한 호피폴라의 하현상(세연의 아들 역할을 맡은 그는 이 영화로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의 노래 실력을 믿고 이 곡을 유일한 현장 라이브 곡으로 빚어냈다.

에코브릿지 (with 최백호) '부산에 가면' (2013)

아내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 떠난 진봉이 부산에 들러 둘의 신혼여행 추억에 젖어 부르는 노래다. 원곡은 9년 전 에코브릿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종명이 만들어 대선배인 최백호를 초대해 완성했다. 글을 쓰며 간간이 언급했지만 죽음과 함께 이 영화를 로드무비로 이끄는 장치는 다름아닌 세연의 첫사랑이다. 재밌는 건 '부산에 가면'과 함께 최백호 자신의 싱글에 담은 노래 제목이 바로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국희 감독은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이 노래를 자신의 영화에 넣었으리라. 참고로 류승룡은 스트레스 없이 부른 '편지'와 달리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한" 이 곡을 매우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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