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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드', 관속의 마릴린 먼로에게 사과가 필요한

새로운 시각 전혀 없는 불행에만 초점 맞춘 과잉의 세시간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가 마릴린 먼로의 삶을 왜곡하고 고인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시청 반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공개되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작품을 보지 않고 악평하거나 영화를 둘러싼 단편적 사실들만 가지고 작품에 잣대를 들이대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했으면 한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려면 주관이 있어야 한다. 나쁘고 형편없는 작품은 있어도 절대 보지 말아야 하는 작품은 없다.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의 전기 영화가 아니다. 먼로를 주인공으로 한 조이스 캐럴 오츠의 2012년작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먼로의 삶을 재구성한 픽션이란 소리다. 마릴린 먼로를 알고 싶다면 그의 삶과 죽음을 천 명의 인물이 증언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마릴린 먼로 미스터리 비공개 테이프’를 보는 게 효율적이고 현명하다. 실존 인물을 다큐에 가깝게 다룬 극 영화가 아니라, 인물의 삶을 창작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영화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탑재해야 ‘블론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블론드’가 전기 영화처럼 보인다는 거다. 먼로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가 배우가 되고 스타로 성공하는 과정, 유명인들과 두 번의 결혼 생활, 대통령과의 스캔들, 죽음까지 일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먼로의 전기 영화라는 오해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하다.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도 실존 모습을 그대로 되살렸다. 먼로가 출연한 영화의 재연뿐 아니라 유명 사진작가들이 남긴 먼로의 사진과 기록 영상을 복원한 듯한 장면들은 ‘블론드’를 실화 영화에 더 가깝게 보이게 만든다.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럼에도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라는 세기의 아이콘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데 주력한다. 먼로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비중 있게 다루고, 배우 마릴린 먼로와 인간 노마 진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인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난 마릴린 먼로의 노예예요”라고 말하는 먼로의 대사는 이 영화에서 먼로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환풍구 바람에 치마가 들썩이는 장면으로 유명한 ‘7년 만의 외출’(1955) 촬영 장면을 비롯해 가변 화면비와 흑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스타일적 시도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마릴린 먼로의 인생을 깊게 파고들기보단 그가 불행했다는 사실을 피상적 이미지로 다루다 보니 영화는 점점 과잉으로 흐른다. 초반에는 아버지의 부재와 정신 분열을 앓는 어머니로 인해 애정 결핍과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할리우드 연예계가 그를 취급하는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훌륭한 배우가 되고자 노력했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임신 중단과 기대와 달랐던 결혼 생활, 유산을 겪는 중반부터 불행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먼로가 태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영화의 톤앤매너와 어울리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하고, 약물 중독과 존 F. 케네디와 관계가 묘사되는 후반부에선 자제력을 잃고 수위 조절에 실패하고 만다. 

수위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등급 심의 조정으로 인해 공개 시기가 늦춰지면서 ‘역대 넷플릭스 최고 수위’라는 홍보 문구가 붙었다. 허구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먼로와 이상적 관계를 맺는 찰리 채플린 주니어, 에드워드 G. 로빈슨 주니어가 등장하는 장면은 높은 표현 수위를 활용하며 독특한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가슴 노출과 누드가 빈번하게 나오고 후반부의 노골적인 성 묘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블론드', 사진제공=넷플릭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연기는 영화의 논란과 별개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금발머리와 특유의 목소리뿐 아니라 먼로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표현했다. 먼로의 유명한 두 남편이었던 전설의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역은 바비 카나베일이, 극작가 아서 밀러 역은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인물의 외모부터 특징을 살리며 개성 있게 연기했다. 

‘블론드’는 1950년대 스타 마릴린 먼로를 21세기 시각으로 접근한, 먼로에 관한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실패한다. 먼로는 할리우드에 불어닥친 매카시즘을 비판했고, 흑인 민권 운동을 후원하고, 핵실험 반대 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다. 여성 배우를 대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먼로의 정치적 행동과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는 곧 섹스 심벌이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고리타분한 그 이미지를 이용한다. 마릴린 먼로의 로맨스를 다룬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2)이 먼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 것과 정반대다. 

“영화 비평 같군요.” 영화에서 스태프들이 읽어주는 팬레터 중에서 험담이 적힌 내용을 들은 먼로가 하는 말이다. 이어서 담담한 척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혐오하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덧붙이는데 표정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이 대사가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고백이라면 ‘블론드’는 자기기만적이고 무책임한 영화다. 할리우드가 마릴린 먼로를 또 한 번 불행하게 만들었다. 마릴린 먼로의 삶을 재발견하고 제대로 다룬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까. 아닐 것이다. 마릴린 먼로에게 빚을 진 할리우드는 이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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