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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이란 늪에서 헤어나올 결심이 힘든 이유

올여름 두 편의 영화로 덕통사고 일으키다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박해일’을 검색해본 적 있나? 검색되는 박해일의 프로필은 마치 증명사진 같은 느낌이다. 일반적인 연예인들의 프로필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 꾸미지 않은 모습, 딱 박해일스럽다. 

박해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갛다. 첨가물이라곤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을 섭외했던 박찬욱 감독은 "박해일은 투명한 사람이다.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뇌나 딜레마를 겪으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큰 동작이나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헤어질 결심’에서 허리가 꼿꼿하고, 정도를 걸어온 해준의 모습과 썩 잘 어울린다. 그랬기에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인 서래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다가 "난 완전히 붕괴됐어요"라고 외치는 해준은 박해일이라는 인물과 몹시 겹친다.

이는 같은 시기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 출현’(연출 김한민)에서도 매한가지다. 처음 그가 이 영화의 주연을 맡는다고 했을 때 적잖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작인 ‘명량’의 이순신, 즉 배우 최민식이 떠올랐던 탓이다. ‘장군’이라는 용맹한 이미지와 박해일은 어딘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그래서 박해일 역시 ‘한산’의 출연을 제안받은 후 김한민 감독에게 "제가요? 제가 왜요? 제가 장군감입니까?"라고 몇 번을 되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 감독은 "박해일이 최민식 선배같은 장군감은 아니다"라면서도 "용장(勇將)과 지장(智將)을 보여주고자 했다. 지략적이고 섬세한 젊은 이순신에 박해일이 잘 어울렸다"고 답했다.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한산’이 개봉되기 전까지 이런 두 사람의 대화에 선뜻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드물었다.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1761만 명)을 가진 ‘명량’ 속 이순신의 이미지가 그만큼 크고 강했던 탓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부정은, 긍정으로 변했다. 역사적으로 ‘명량’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한산’의 이순신은 보다 젊고 차분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막판 50분간 진행되는 해전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도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순신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목에 큰 힘을 주지 않고 "발포하라"고 명하는 차분한 네 음절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치밀한 계산 끝에 내리는 그 결정은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통해 그 묵직함이 배가됐다.

박해일은 결코 ‘오버’하지 않는 배우다. 뻔한 표현을 빌리자면 도화지 같다. 언제 어디에 두어도 ‘박해일 같다’는 느낌을 주는데, 돌려 생각하면 언제 어디에 두어도 박해일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다. 스펀지다. 물에 넣으면 물을 온 몸으로 머금어 묵직해진다. 하지만 꾹 눌러 물을 짜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해진다. 그리고 다시 새로 머금는다. 

그래서일까? 거장들은 박해일을 선호한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서 초창기 박해일의 말간 이미지를 십분 활용했다. 손과 얼굴이 고왔던 박현규가 진범인지 여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이때 너무 연기를 잘한 탓일까? 박해일은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살인의 추억’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봉 감독은 ‘괴물’에서는 룸펜과 같은 이미지로 180도 다른 모습의 박해일을 소비했다.

김한민 감독에게 박해일은 페르소나라 할 만하다. 그의 초창기 연출작인 ‘극락도 살인사건’을 비롯해 스타 감독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최종병기 활’을 박해일에게 맡겼다. 그리고 ‘명량’ 이후 1761만 명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을 견뎌야 하는 후속작을 만들며 다시금 박해일에게 손을 내밀었고, 박해일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헤어질 결심'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헤어질 결심' 박해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 외에도 ‘이끼’의 강우석 감독, ‘은교’의 정지우 감독,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 ‘행복의 나라로’의 임상수 감독이 박해일의 유약하면서도 묘한 고집이 있는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했고,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혹자는 박해일에 대해 ‘받혀주는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한다. 극성 강한 연기로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런 캐릭터가 부각되도록 곁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빈틈을 채워주는 연기를 잘한다는 의미다. 때에 따라서는 배우에게 기분 나쁜 평일 수도 있다. 송강호와 함께 한 ‘나랏말싸미’에서의 신미 스님, 김윤석·이병헌이 맞붙은 ‘남한산성’의 인조, 설경구의 연기가 돋보인 ‘나의 독재자’의 태식 등이 그런 역할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자. 송강호·김윤석·이병헌·설경구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팽팽한 평행선을 유지할 배우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게다가 박해일은 여기서 적절하게 자신의 욕심을 거두는 미덕도 갖췄다. 이는 작품 속에서 때리는 역할과 맞는 역할, 즉 공격과 수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판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의미다. 

한 영화 관계자는 "충무로에서 박해일은 ‘상식과 말이 통하는 배우’로 정평 나 있다. 작품을 평가하고 배역을 고르는 과정에서 사심이 최대한 배제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좋은 작품 안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작품에 기꺼이 출연하는 주연 배우"라면서 "여전히 박해일의 나이는 고작 45세라는 것이 가장 반갑다. 그의 작품을 한참 더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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