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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신윤재(칼럼니스트)
  • 입력 2022.08.11 09:49
  • 수정 2022.08.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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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진화? 안이한 안주만 고집하는 SBS 예능

사진출처='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사진출처='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요즘 인기있는 콘텐츠의 필수 요소 중 하나가 ‘세계관’이다. 일종의 ‘설정’과 비슷한 말인데, 하나의 설정을 공유하는 콘텐츠 안의 세계를 의미한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상황이나 성격이 있더라도 고도로 설정된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고, 이 캐릭터가 인정받는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나름 그것으로 하나의 재미가 된다.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김태호PD가 고안한 ‘유(YOU)니버스’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뛰놀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러한 세계관의 개념을 예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채널은 요즘 아마 SBS가 아닐까 싶다. 하나의 인기 콘텐츠가 나오면, 이 콘텐츠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와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굉장히 능숙해 있다. 방송에서는 유식한 말로 이를 ‘스핀 오프(Spin-Off)’라고 한다. 세계관을 공유한 상태에서 하나의 설정만을 추출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미운 우리 새끼’는 2016년 방송을 시작한 SBS의 대표 예능이다. 그 당시 유행했던 관찰예능을 기본으로 해 ‘결혼적령기를 넘긴 출연자가 철없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스튜디오에 나오는 엄마가 본다’는 내용을 담았다. 출연자들은 독특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좋았고, 엄마들의 머리는 더 아파야 재미를 줬다. 방송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SBS 예능 최정상급의 시청률을 보인다.

그러자 지난해 7월부터 ‘신발벗고 돌싱포맨’이 스핀오프로 등장했다. ‘미운 우리 새끼’ 출연자 중 결혼을 한 번 했던 탁재훈, 이상민, 임원희, 김준호가 뭉쳤다.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미운 우리 새끼’들 중에서도 그 사정이 더욱 딱한 이들이다.

사진출처='돌싱포맨'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사진출처='돌싱포맨' 방송 영상 화면 캡처

‘골 때리는 그녀들’은 SBS 최근 예능 중 가장 히트작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돼 단번에 지상파 예능의 판도를 ‘스포츠 예능’의 바람으로 몰아갔다. 특히 올해는 카타르월드컵의 해다. 더욱 그 기세가 오를 수밖에 없다. SBS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인기를 끌자 스핀오프인 ‘골 때리는 외박’을 지난 5월 신설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 팀 단위 MT를 보내 거기에 해설자 이수근을 붙이는 식이다. 또한 최근에는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주요 미혼 출연자들을 모아 최여진, 송해나, 최윤영, 유빈 등으로 연애 리얼리티 예능 ‘연애는 직진’을 신설했다.

가히 하나의 유기체처럼 하나의 콘텐츠에서 하나를 또 뽑아내고, 이를 변주해 하나를 또 만든다. 하나의 세계관이 인기를 얻는다면 요즘의 기세라면 서너 개의 프로그램은 너끈히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을 ‘성공적’이라고 표현하려면, 하나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이 의미있는 결과를 보여줬을 때에만 가능하다. ‘신발벗고 돌싱포맨’은 벌써 맹점을 노출했다. ‘돌싱’들 중 막내 김준호가 개그우먼 김지민과 공개연애를 시작하자 이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노출하면서 피로감을 주기 시작했다. 이는 본진인 ‘미운 우리 새끼’ 역시 다르지 않다. 어느새부터 진솔한 출연자들의 속내는 사라지고 작가들로부터 정교하게 구성된 이벤트만이 남았다. 최근에는 물놀이도 가고, 캠핑도 간다. 이들이 노는 모습에서 어떤 ‘미운’ 구석을 발견하라는 걸까.

사진출처='연애는 직진'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사진출처='연애는 직진'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이는 SBS 예능국의 전통적인 ‘안주’ 위주의 전략에서 비롯된다. 2010년대 ‘먹방’이 발견되자 SBS는 이를 가장 기민하게 받아들였다. ‘육아예능’이 인기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들을 모은 ‘관찰예능’의 유행에서도 SBS는 빠지지 않았다. ‘동상이몽’ 시리즈는 지난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지속된 시즌 1 ‘괜찮아 괜찮아’부터 시작해 두 번째 시즌 ‘너는 내 운명’이 5년째 방송 중이다. 이미 출연 부부들의 웬만한 모습들은 모두 드러났고 언젠가부터 제작진에 의해 가공된 상황들이 계속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전통과 안주는 조금 다른 의미다. 무조건 하나의 콘텐츠를 오래 가져간다고 해서 이를 ‘안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나의 굳건한 틀을 만들고 이를 조금씩 변주하며 변함없는 재미를 주는 것과 이미 굳건한 틀의 기한이 지났음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이를 인위적으로 끌고 가고, 심지어 여기서 나오는 설정으로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동상이몽’ ‘미운 우리 새끼’ ‘집사부일체’ ‘런닝맨’으로 이뤄지는 SBS 예능의 골격은 벌써 5년이 넘게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설 특집 파일럿 예능을 봐도 새로운 형식을 하나씩 시도한 KBS, MBC와 다르게 SBS는 과거 프로그램 ‘판타스틱 듀오’를 재탕한 ‘판타스틱 패밀리’를 선보였다. 이러한 안주로는 TV 바깥, OTT나 유튜브를 중심으로 회오리치는 새로운 콘텐츠 유행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이미 드라마 부문에서 창작의 주도권은 지상파에서 그 바깥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갖은 OTT 플랫폼들이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는 지금, 예능도 지상파가 그 왕좌를 내려올 일은 시간 문제다. 지금 SBS 예능의 안일한 기획과 안주하는 태도는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길 힘찬 동력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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