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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러브 앤 썬더’, 과잉된 스타일에 허술한 이야기가 섞이면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천둥의 신 토르가 우주 바이킹으로 거듭났다. 2011년 ‘토르: 천둥의 신’을 시작으로 2013년 ‘토르: 다크 월드’, 2017년 ‘토르: 라그나로크’ 그리고 올해 ‘토르: 러브 앤 썬더’까지 11년째 MCU 솔로 무비를 이어가는 ‘토르’가 네 번째 시리즈로 돌아왔다. MCU 영화 중에서 최초로 4편의 솔로 무비를 보유하게 된 토르는 이전 시리즈들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밝고 유쾌한 에너지로 무장했다. “토르의 어드벤처는 늘 짜릿하죠”라는 대사처럼 토르의 새 모험은 이번에도 짜릿하다. 

최근 개봉한 MCU 페이즈 4 영화들이 멀티버스 세계관에 속한 것과 달리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천둥의 신’ 토르가 속한 신들의 세계관을 확장한다. MCU의 멀티버스 세계관에 피로감과 혼란스러움을 느껴온 관객이라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마지막에 토르는 “이젠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주어진 운명대로 말고”라며 발키리에게 아스왕좌를 넘겨주었다. 그러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의 우주선에 탑승했던 토르가 이번 영화에서 자아 찾기 여정을 마친 모습으로 멤버들과 함께 행성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나선다. 그러던 중 신 도살자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신들을 모두 파멸시킬 계획이며 그의 다음 목표가 아스가르드라는 소식을 듣고 아스가르드인들이 정착한 지구로 향한다. 이곳에서 마이티 토르가 된 옛 연인 제인(나탈리 포트먼)과 아스가르드를 다스리는 발키리(테사 톰슨)와 재회한 토르는 고르가 납치한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마이티 토르, 발키리, 여기에 전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의 동료가 된 검투사 코르그(타이카 와이키키)까지 새로운 팀을 꾸린 토르가 빌런 고르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토르: 러브 앤 썬더’의 골자다. 이들이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가는 옴니포턴스 시티는 우주 최강의 신들이 모인 곳으로 이곳에서 그리스 로마의 신이자 또 다른 ‘천둥의 신’ 제우스(러셀 크로)가 등장한다. 토르의 올누드가 화제가 되었던 예고편에 나온 장소가 바로 여기다. 토르는 제우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변장한 옷이 벗겨지는 봉변을 당한다. 토르 일행이 신들의 회의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나는 기상천외한 모습의 신들 캐릭터가 볼거리다. 옴니포턴스 장면이 캐릭터들의 좌충우돌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다면, 어둠의 도시 섀도우 렐름에서 토르와 고르가 대결하는 장면은 영상미에 힘을 기울였다. ‘그곳의 공기는 어둠으로 꽉 차 있어 어떤 색깔도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소개된 만큼 흑백 화면 속에서 대결이 펼쳐진다. 1980년대 스타일을 반영한 영화의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과 대조를 이루면서 강렬한 비주얼을 선사한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산전수전 다 겪은 토르 캐릭터는 사연으로 치면 MCU에서 기구한 캐릭터 상위권에 드는 인물이다. 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에 부모, (죽기를 반복하는) 동생 로키, 친구들을 잃고 고향 아스가르드 왕국은 파괴되었다. 1편에서 만난 제인과 사랑도 2편 이후론 제대로 맺어지지 않았다. 시리즈마다 외양과 스타일이 조금씩 변했지만, 4편의 토르는 우주 록스타 같은 차림에 세상을 달관한 듯한 태도에서 나오는 여유를 지녔다. 고뇌는 줄고 유머 감각은 늘어난 토르 캐릭터가 이번 시리즈의 가장 큰 변화다. 부제 중 하나가 ‘러브’인 만큼 토르의 사랑은 연인뿐 아니라 아스가르드 아이들, 후손에 대한 자애로 넓혀진다. 겉모습은 가벼워졌어도 부쩍 성숙해진 사랑꾼 토르를 만날 수 있다. 

‘토르’ 시리즈를 지켜봐 온 팬이라면 토르의 연인 제인 포스터가 다시 등장하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토르: 다크 월드’ 이후 9년 만에 시리즈에 등장한 제인 포스터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손에 든 히어로 마이티 토르로 변신한다. 암에 걸린 제인이 묠니르에서 강력한 힘을 얻고 히어로가 되는 설정은 마블 코믹스 시리즈 ‘마이티 토르’(2015)와 동일하다. 천체물리학자에서 근육이 도드라진 액션 히어로로 거듭난 나탈리 포트먼의 복귀는 반가움을 넘어 상징적이다. 왕에서 전사로 돌아온 발키리와 마이티 토르가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때, 고르가 ‘레이디 토르’라고 부르자 “내 이름은 마이티 토르야!”라고 당당히 외칠 때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배우의 기백이 캐릭터와 일치하면서 쾌감을 안긴다. 나탈리 포트먼의 재출연을 뒤늦게나마 성사시킨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현명한 판단은 관객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토르’ 3편에 이어 4편의 연출을 맡았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연출한 ‘토르’ 1편과 ‘왕좌의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앨런 테일러 감독이 맡은 2편이 신의 아들 토르의 영웅담을 판타지와 정극으로 그렸다면, 3편 ‘라그나로크’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코미디를 결합해 감독의 개성이 두드러진 히어로 무비로 거듭났다. 흥행과 평가 면에서도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다. ‘토르’ 시리즈를 새롭게 일으킨 일등공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참여한 4편은 당연히 기대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기 신’ 크리스찬 베일이 빌런 역을 맡았으니 3편의 빌런 케이트 블란쳇에 버금가는 명배우가 힘을 실을 터였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오프닝을 장식하는 크리스찬 베일은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인상적인 등장을 알린다. 이어 토르의 과거와 현재 상황이 유니크한 분위기 속에 전개되며 초반 예열을 마친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 깨알 같은 코미디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전편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토르의 무기 스톰 브레이커가 의인화 되어 묠니르를 보고 반가워하는 토르에게 토라진다거나, 토르가 전투를 치르고 선물로 받은 염소 두 마리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설정은 감독의 키치한  연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문제는 이번 영화가 이야기보다 볼거리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전편이 이야기와 볼거리의 균형을 맞추며 개성과 무게감을 골고루 살렸다면, 4편의 이야기는 시리즈를 통틀어도 빈약한 편에 속한다. 비주얼엔 잔뜩 힘을 주고 이야기엔 힘을 뺀 나머지, 속빈 강정을 보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와 별개로 신에게 배신당하고 신 도살자가 된 고르의 사연은 광기 넘치는 빌런 캐릭터의 힘을 약화시킨다. 주요 신들을 오만방자한 캐릭터로 묘사해 희화화엔 성공하지만, 향후 ‘토르’ 시리즈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은 신들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일으키진 못한다. 코미디뿐 아니라 시각효과, 음악 등 적재적소의 묘미를 갖췄던 3편과 비교하면 영화의 요소들이 과도하게 설정되어 매력이 반감되고 만다. 록 스피릿을 강조하기 위해 1980년대 인기 록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음악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음에도 시너지 효과가 강렬하진 않다. 토르와 함께 시리즈를 견인해온 인기 캐릭터 로키의 부재도 팬들에겐 아쉬움이 될 터다. 

웃음과 액션, 감동을 주는 히어로 영화에 만족한다면 ‘러브 앤 썬더’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팝콘 무비다. 5월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어두운 분위기와 정반대인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기분 전환용이 되어 줄 수도 있다. 다만, 세계관 확장을 거듭하면서 장르 변화를 꾀하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색다른 이야기와 전에 없던 볼거리로 완성하기 위해 골몰하는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교하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관객의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처럼 보인다. 알맹이는 부실한데 분위기와 스타일이 주도하는 영화는 공허하고 헛헛한 느낌을 준다. 쿠키 두 편은 새롭게 등장할 캐릭터와 본편에서 더 나아간 이야기로 여지를 남기는데,  ‘토르는 다시 돌아온다’는 자막이 이번엔 썩 반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요란 법석한 변화보다 내실을 다진 ‘토르’의 다음 시리즈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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