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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랙 쿨리뷰] 걸리면 약도 없는 선미 열병

사진제공=어비스컴퍼니
사진제공=어비스컴퍼니

선미는 지난 29일 발매한 '열이 올라요' 뮤직비디오에서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를 붉게 물들인 채, 요염하기 그지없는 훌라춤을 자유롭게 춰보인다. 1년 전에 발표한 'You can't sit with us(유 캔트 시트 위드 어스)', '꼬리'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안무 역시 'You can't sit with us' 등에서 과격하게 추던 것에서 살랑거림에 가까운 것으로 바뀌었다.

데뷔 16년차인 선미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룹 원더걸스 초창기에는 커다란 눈망울과 가녀린 몸매로 마치 인형에 가까운 예쁜 소녀의 이미지를 전달했고, 활동 말기 무렵 내놨던 'I Feel You(아이 필 유)'에서는 기타를 손에 쥐고 제법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여러 콘셉트를 소화했던 선미는, 솔로 가수로선 더 특별함을 꽃피웠다. 마냥 소녀로 머물 것만 같았던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24시간 모자라'나 '보름달'과 같은 노래에서 자신의 몸선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완전히 무너트렸다. 이는 선미에게서 섹슈얼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예쁜 아이돌에서 디바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소속사를 옮긴 후 낸 곡들은 보다 강질적인 흐름을 탔다. 유혹의 제스처가 확실했던 지난곡들과 달리 '가시나'나 '꼬리' 등은 눈과 입꼬리가 모두 반달처럼 휘어지도록 웃다가 돌연 차디찬 표정으로 돌변하는 모습으로 또 다른 이미지를 쌓아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잉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아울렀다. 단순한 차원의 섹슈얼이 아닌, 강한 자의식에서 오는 보다 강질적인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나 활동 텀을 짧게 두며 이러한 이미지를 반복해온 선미는,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했다. 1년 여간의 공백 끝에 내놓은 '열이 올라요'는 그 고민의 지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사진제공=어비스컴퍼니
사진제공=어비스컴퍼니

'열이 올라요'는 기존곡들과 달리 사운드가 세거나 무겁기보단, 가벼우면서 몽환적이다. 덜어냄으로써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너 하나 땜에 out of my mind'('You can't sit with us')라며 사랑 앞에 늘 강성적인 태도를 취했던 선미는 '한번쯤은 무너져 줄게요'라는 '열이 올라요' 속 가사처럼 관점의 변화도 보인다. 노래를 통해 이런저런 사랑을 다 겪어본 선미는, 집착이나 꾸며낸 유혹이 아닌, 오늘날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구태여 공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성이 꼬이는 팜므파탈의 원형에 가깝다.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관점을 더욱 전달력 있게 보여준다. 그저 평범하게 웃고 떠드는 일상을 살 뿐인 선미의 모습에 남자들은 알아서 사랑에 빠진다. 존재 자체로 치명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남자들은 선미를 사랑할수록 열병에 오르고, 끝내는 죽음에 이른다. 사랑은 이뤘으니 상사병은 아니나 그것에 가까운 열병이다.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선미는 기도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멈추지는 않는다. 삶에 주도적이면서,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움으로 사랑스러움을 꽃피우는 인물. '열이 올라요'의 선미는 그렇게 그려진다.

선미의 캐릭터는 여성 뮤지션이 어디까지 콘셉트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증명해내는 분명한 챌린지가 있다. 이러한 것들을 곡, 안무,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실현하면서, 그것을 선명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은 그만이 이뤄온 성취다. 'You can't sit with us'를 낼 쯤부터 기세가 한풀 꺾였던 선미는, 공백으로 자신을 비우고 새로 채움으로써 꺾인 풀 위로 다시 새싹을 피워낸다. 지금의 선미는 열이 아닌 열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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