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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집', 아쉬운 전반전 "후반전에 만회하나?"

한국적 설정에 발목 잡힌 리메이크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붉은색 작업복에 하회탈을 쓴 강도들이 4조 원을 훔친다. 진분홍색 작업복을 입고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그려진 가면을 쓴 ‘오징어 게임’의 관리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면이 주는 묘한 긴장감으론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넷플리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가 또 한 번 전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엔 리메이크로 승부수를 띄운다. 결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판 ‘종이의 집’의 문이 열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하 ‘공동경제구역’)은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종이의 집’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제작 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모으며 기대감을 드높였다. 원작 드라마의 공개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인지 1시즌 전회차를 공개하는 대신 파트 1, 2로 나눠 파트 1, 6화를 먼저 공개한 ‘공동경제구역’은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순위 3위에 오르며 순항 중이다. 다만 순위와 별개로 리메이크와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확신컨대 ‘공동경제구역’은 여러 암반에 부딪힌 모양새다. 

일단 스페인 원작이 높은 인기에 힘입어 시즌 5까지 나온 쟁쟁한 넷플릭스 드라마다. 천재적인 범죄 설계자 ‘교수’가 여덟 명의 범죄자들을 불러 모아 스페인 조폐국을 터는 내용을 그린 시즌 1,2는 스페인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조폐국에 쌓인 돈을 훔쳐내는 게 아니라 조폐기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찍어낸다는 기발한 설정,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범죄자들, 범죄조직 리더와 경찰 협상가가 벌이는 두뇌 싸움과 사랑, 여기에 범죄자들과 인질들의 심리전이 변수를 일으키며 하이스트 장르의 통쾌함을 안겼다. 조폐국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들끓는 욕망과 충돌은 시간 단위로 전개되며 보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공동경제구역’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 요인으로 손꼽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를 리메이크의 돌파구로 내세운다. 한국적 설정을 과감하게 투입한 것. 배경은 통일을 앞둔 2026년의 한반도, 남북한은 비무장지대에 경제 협력 활동을 위한 공동경제구역을 건설하고 그 안에 공동 화폐를 만드는 통일 조폐국을 세운다. 한국판의 강도단이 노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옥 기와지붕을 얹은 조폐국 외양과 병풍, 도자기, 산수화, 엽전 등 전통 소품을 대대적으로 배치한 조폐국 내부는 한국적인 색채를 물씬 풍긴다. 원작에서 강도단이 착용하는 화가 달리의 얼굴 가면을 하회탈로 바꿔 승부수를 제대로 띄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원작은 ‘캐릭터의 집’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캐릭터들의 활약상이 워낙 거셌다. 강도단, 경찰들, 조폐국 직원, 인질들까지 굳이 어느 집단으로 분류하지 않아도 체스 말처럼 분주히 움직이며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를 안겼다. 범죄자는 악인, 경찰과 인질은 선인이라는 이분법은 시작부터 내던지고, 사전 계획에 없던 사랑이라는 변수에 종잇장처럼 흔들리는 인물들의 감정과 무모한 행동이 화를 자초하는 전개가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했다. 

‘공동경제구역’은 강도단 구성원들이 자신이 고른 세계 도시명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원작 캐릭터 고유의 성격은 그대로 살리되 남북한이라는 출신 배경을 더했다. 주요 캐릭터로 1화 초반을 이끄는 도쿄(전종서)와 조폐국 내부를 지휘하는 베를린(박해수)을 북한 출신으로 설정해 캐릭터 성격을 강화했다.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일으키는 이미지 캐스팅은 전반적으로 주효했다. 모스크바 역의 이원종, 조폐국장 역의 박명훈이 원작 캐릭터와 가장 닮은꼴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한국적인 설정을 적극 차용한 것과 별개로 ‘공동경제구역’은 K-드라마의 진부함에 갇히는 상황을 연출하고 만다. 원작 자체가 범죄 스릴러 치고는 긴장감이 매순간 요동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대신 회마다 완급을 조절하며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쾌감이 있었다. 이런 원작과 비교하면 한국판은 설정만 바꿨을 뿐 원작의 상황극을 그대로 따르다보니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소품을 휴대폰에서 스마트워치로 바꾸고, 등장인물을 남북한으로 나눠 대립 구도를 만들어도 긴장을 일으키는 동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다. 

“혹시 무슨 일 없어?” 조폐국 내부 상황을 전화로 묻는 교수에게 강도단 멤버 중 한 명인 리우(이현우)가 답한다. “하긴 아주 큰 일이 생기긴 했어. 벌써 따분해지기 시작했다는 거?” 이 대사가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르의 기본 재미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여기에 스토리와 캐릭터에 넣고 빼고 더하고 덜면서 독창성을 불어넣어야 하는 각색이 진부한 대사와 지지부진한 전개로 채워지면서 한국판 고유의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아무리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꼬박 끼니를 챙기거나 밥 먹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해 빈곤한 상황을 채우는 것도 긴장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사물놀이가 배경 음악으로 쓰여 신선함을 주지만 효과가 지속되진 않는다. 정작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드라마의 주제와 연결되는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가 주는 감흥은 싱거울 정도다. 이렇듯 핀트가 맞지 않은 요소들이 누적되어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여성 캐릭터에 대한 묘사도 아쉽다. 원작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남자친구를 잃었고 작전 준비 중에 어머니를 잃은 도쿄는 반항적인 성격에 감정 진폭이 심한 인물이다. 한국판에서는 도쿄가 남한의 자본주의 생활에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캐릭터의 사연을 대체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도쿄가 BTS의 팬이라거나 남한에서 범죄에 연루되는 이야기는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강도단에 합류한 도쿄의 모습도 입체적으로 묘사되지 못하고 원작의 도쿄가 가진 변화무쌍한 매력이 눈에 띄게 반감되었다. 강도단의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나이로비 또한 얄팍하게 해석해 하이스트 장르의 전형적인 팜므파탈 캐릭터에 머문다. 이들에게 주어진 대사의 무게도 가볍기는 마찬가지다.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해소하는 건 역시 배우들이다. 경찰 협상가를 작전에 이용하려다 사랑에 빠진 교수 역의 유지태, 일과 가족과 사랑을 모두 지켜내려는 경찰 협상가 선우진 역의 김윤진은 두 배우의 대표작을 떠올리게 하며 닮은 듯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유지태는 ‘올드보이’(2003)에서 치밀한 복수를 설계하는 차우진을, 김윤지는 ‘쉬리’(1999)에서 남한 특수요원과 사랑에 빠지는 북한 첩보원 이명현 역으로 스타배우 입지를 굳힌 바 있다. 두 배우가 한국 배우의 관록을 보여준다면, 박해수는 ‘오징어 게임’ ‘야차’ 등 다수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출연작을 보유한 배우답게 한국판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원작의 베를린 캐릭터와 비교해도, 연기력으로 따져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다. 인질과 사랑에 빠지는 덴버 역의 김지훈, 조폐국장 비서 미선을 연기한 이주빈, 원작의 부경감 캐릭터를 변형한 북한 특수요원 출신 차무진 대위 역의 김성오가 한국판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들이다. 

결과적으로 ‘공동경제구역’은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받을 듯하다. 원작 팬이라면 기대만큼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리메이크작의 숙명은 오리지널과 비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원작을 해석하는 능력뿐 아니라 신선함을 가져오는 개성과 독창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패하면 유독 혹독하게 비난받고 성공하면 몇 곱절의 찬사가 뒤따른다. 이제 절반을 공개한 드라마를 두고 온전한 평가를 내릴 단계는 아니지만, 절반에 대한 평가라면 리메이크의 한계선을 제대로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에 남은 6화를 공개할 예정인 ‘공동경제구역’이 전반전의 아쉬움을 만회하기를 바라며 후반전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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