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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안나'로 인생작 교체중

거짓말도 응원하게 만든 수지의 힘

사진제공=쿠팡플레이
사진제공=쿠팡플레이

배우 수지가 10년 만에 인생작을 교체하는 중이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극본 연출 이주영)로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10년간 짙게 드리웠던 ‘국민 첫사랑’의 잔상을 비로소 씻어낼 수 있게 된 것. 총 6부작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2회가 공개된 상황이지만, 이러한 확신을 굳히기엔 딱히 부족한 분량은 아니었다. 2시간이 넘지 않는 러닝타임 동안 수지는 극중 ‘유미’가 반짝이는 어린아이에서 거짓으로 점철된 ‘안나’의 삶으로 떠밀리듯 흘러들어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격렬한 공감을 자아내게 했다. 2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이 되면, 슬슬 ‘안나’로서 사는 ‘유미’의 거짓말을 범죄라고 질타하기보다는, 몰래 응원까지 하고 싶을 정도다.

예쁘고, 꿈도 많고, 뭘 해도 다 잘하는 재능까지 겸비한 유미(수지)였지만, 불운과 가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고3 시절 교사와의 연애가 발각돼 쫓겨나듯 학교를 옮겼고, 그 여파로 대학 입시에도 실패하며 인생의 첫 좌절을 겪었다. 걱정하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려고, 무심코 내뱉은 하얀 거짓말은 이후 유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의도하지 않게 거짓 대학생 신분이 된 유미는 심지어 교지 편집부 활동에도 참여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약속할 정도의 진지한 남자친구가 생긴다. 그와 함께 해외로 떠나려던 찰나 거짓은 들통났고, 재차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후 펼쳐지는 일들도 20대 유미가 감당하기에 녹록지 않은 일들투성이다. 결국 유미가 택한 것은, 지금의 자신을 완전히 벗어내고 ‘안나’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더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수지는 이 작품에서 교복을 입은 10대 학창 시절부터 생업에 쫓겨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는 초췌한 20대, 그리고 거짓으로 쌓아올린 부와 명예로 치장된 화려한 대학교수로서의 성공한 삶까지 온전히 소화했다. 어떠한 거부감도, 딱히 부족함도 없다. 수지는 ‘유미’이자, 곧 ‘안나’이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미쓰에이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해, 배우와 가수의 삶을 오가며 양쪽 모두를 성실하게 소화해낸 수지의 삶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수지는 유미가 겪는 리플리 증후군을 표현해내기 위해 촬영 전 심리 전문가를 만나 상황별로 세세한 조언을 구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사진제공=쿠팡플레이
사진제공=쿠팡플레이

사실 ‘건축학개론’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렬해서 그렇지, 수지는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자신이 맡은 배역을 곧잘 소화해냈다. 드라마 ‘드림하이’, ‘구가의 서’, ‘함부로 애틋하게’, ‘배가본드’, ‘스타트업’, 영화 ‘도리화가’, ‘백두산’ 등 모든 작품을 곱씹어 봐도 수지는 유별나지 않고 튀지 않았을 뿐, 적절하게 작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쌓인 연기 내공을 자신의 데뷔 첫 단독 주연작 '안나'에서 가감없이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경쟁에서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 1~2화만 공개된 '안나', 그리고 주연 배우인 수지를 향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대중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몹시 풍성할 정도다.

‘안나’는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분위기를 꼭 붙들고, 남은 3~6회의 만듦새에서 제작진이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작품도 주역인 수지도 지금보다 더욱 빛을 발산할 수 있다. 유미가 고된 삶에 떠밀려 불가피한 선택을 한 과정을 설득시킬 요량으로 다소 느릿하게 전개된 1회의 호흡,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거짓말의 눈덩이에 올라탄 유미의 모습이 긴박하게 흘렀던 2회의 호흡은, 충분히 시의적절한 분배였다. 이제 남은 회차에서는 한층 불어난 거짓말과 언제 그것이 발각될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쫄깃한 긴장감이 남았다.

사진제공=쿠팡플레이
사진제공=쿠팡플레이

향후 빌런들과 뒤엉켜 치고받을 연기 호흡도 관건이다. 인생이 거짓말로 점철된 유미는, 2회 말미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진짜 '안나' 현주(정은채)를 마주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랐던 상황이 연출됐던 바. 이미 드러난 현주의 인성이 흡사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 명백하다. 더욱이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미의 남편 지훈(김준한) 역시 잠재 불안요소 중 하나다. 유미까지 포함해 전혀 이타적이지 못한 이 3종 빌런이 만들어낼 이기적인 관계의 진흙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질 괴이한 연기 앙상블이 후반부의 화려한 볼거리가 될 것이 자명하다.

영화 ‘건축학 개론’을 봤던 뭇남성들이 마음에 한 번쯤 품었던 ‘국민 첫사랑’이 약 10년 만에 리플리 증후군을 세게 장착한 ‘희대의 사기꾼’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 그것을 배우 수지가 연기로 부지런히 납득시키는 중이다. 분명한 것은, 이 터널을 무사히 지나면 연기자로서 수지의 위치는 분명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배우로 소화 가능한 스펙트럼은 한층 두터워질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과 배역의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안나’ 속 유미는 언젠가 고꾸라지고 그 죗값을 받겠지만, 그런 유미를 온전히 떠나보낼 때 수지는 그 반동으로 인해 훨씬 더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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