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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한수진 기자
  • 입력 2022.05.13 11:07
  • 수정 2022.05.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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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심' 이준, 결핍의 아름다움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KBS2 '붉은 단심'(극본 박필주, 연출 유영은)의 이태는 이준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처절하고도 치열한 인물이다. 일국의 세자로 태어났지만, 그 권세가 약해 어미의 죽음으로 간신히 자리를 붙들었고 처음 연심을 품은 여자까지 지켜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태는 힘없는 왕자의 처지에 비관해 혼자 울지라도, 무기력하게 자신을 방관하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쳐 훗날 반격을 도모하는 야심찬 권력가다. 유약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제 사지를 찢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라며 복수를 다짐하는 처절한 왕. "어질진 않으나 담대하고 지혜롭기보단 간교하며 덕은 없으나 인내는 강하다." 정국공신 좌의정 박계원(장혁)이 이태에게 허를 찔리고 한 말처럼, 그에겐 생존하고자 발버둥치며 몸소 터득해 온 꾀가 있다.

이런 이태의 모습은 이준이 그간 연기해온 결핍된 캐릭터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곤룡포를 입은 이준은 분명 전보다 한발 더 나아간 위치에 있다. 새롭지는 않으나 더 능숙해졌고, 저변의 감정들이 더 강하게 결집됐다. 특히 예민함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눈빛 연기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류태석와 tvN '갑동이' 류태오 때도 탁월했다. 이름마저도 비슷한 이 두 인물에서 그는 의뭉스러운 얼굴로 곧잘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캐릭터들이 음울한 얼굴을 드러내고도 밉지 않았던 건, 이준의 데뷔 영화 '닌자 어쌔신' 때부터 보여준 장점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불운한 기운을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보는 이를 캐릭터 편에 서게 만드는 매력 말이다. 

이태는 그렇게 그가 걸어온 결핍의 얼굴들에 굵은 점 하나를 더 찍는다. 반정으로 왕이 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국공신들의 등살에 고개 숙이는 왕. 하지만 바닥을 향한 그의 얼굴에는 좌절이 아닌 분노가 서려있다. 영민한 이가 분노의 마음을 갖게 되면 결국 이르는 곳은 파국이다.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이태의 얼굴엔 더욱 다양한 색채감이 묻어난다. 이와 동시에 연모하는 유정(강한나) 앞에서 보이는 얼굴은 또 다르다. 처량한 듯 안식이 느껴지고, 잃을까 두려운 불안함 속에 작은 생기가 자리하고 있다. 내내 결핍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상대에 따라 곁가지의 감정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이는 이준만이 형상화 할 수 있는 이태의 모습이다. 그가 아니라면 닿지 않을 온갖 저변의 감정들로 결집된 얼굴. 다크서클이 짙게 내린 퀭한 두 눈은 어딘가 피로해 보이지만, 보는 이에게 피곤함을 주지 않는 긴장감을 갖고 있다. 저 불안한 눈빛 아래에 놓인 창백한 뺨은 두 손으로 어루만져 주고 싶은 가련함마저 느껴진다.  

이준은 "칫솔에 치약처럼 바퀴벌레가 붙어 있던" 집에 살았을 만큼 어린시절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꼴찌로 들어갔고, 졸업할 때는 차석이 되어 수재들만 간다는 한예종에 입학했다. 그는 일찍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노력 하나로 이겨내왔다. 때문에 이준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한번 발을 들이면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위해서 늘 심지 굳은 선택을 했고, 캐릭터를 따라 본인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래서 처지가 불안한 왕과 그의 가련한 정인이 정적이 되는 핏빛 로맨스를 표방하는 '붉은 단심'은 조금 과장하자면, 이준을 위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태는 이준이 연기한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날이 서 있는 모습으로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칼날에 제손이 베어도 말이다. 공허한 구석이 있는 이준의 얼굴에서 "과인이 모두를 만족시킬 묘안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있게 내던지는 반격의 한수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를 듯한 불안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극 전반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어둡고 치열한 이야기를 전하기에 이준이란 배우는 가장 좋은 메신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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