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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의 아찔한 배신 "애들은 제발 가라!"

MCU 사상 가장 무섭고 긴장감 넘치는 126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작품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적어도 필자는 MCU에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몇 번 있다. 

가장 크게 배신감이 들었던 작품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였다.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블랙팬서, 스파이더맨, 윈터솔저가 차례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 상영 시간 내내 재잘 거리던 우리 어린이 관객들이 일순 침묵에 빠졌던 그 기괴한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난 4일 국내 관객들과 만나 쾌조의 흥행세를 보이며 4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역시 이런 비슷한 종류의 배신감(?)을 안긴다. 어린 관객에게는 꽤 트라우마가 될 작품이니 관람 전 주의를 당부한다. 믿어도 좋다. 30대인 필자에게조차 미세하게나마 트라우마가 남았으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초반은 처음부터 새로운 캐릭터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와 다른 우주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소개한다. 화려한 CG로 이뤄진 공간을 뛰어다니는 아메리카 차베즈, 꽁지머리 스타일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며 관객은 ‘내가 알던 닥터 스트레인지 맞구나’라며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곧이어 아메리카 차베즈가 우리가 아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사는 세상에 떨어지고 그가 지닌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스칼렛 위치(완다 막시모프)가 노리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여기가 바로 첫 번째 배신 지점이다. MCU 세계관 내 마법 분야 최고의 권위자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스칼렛 위치가 이번 작품에서 힘을 합쳐 빌런에 대항할 것을 기대했지만 정작 아메리카 차베즈를 두고 양 측이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극한 대립을 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멀티버스 여행 능력을 가진 소녀를 달라는 스칼렛 위치와 절대 소녀를 줄 수 없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추격전’이라고 볼 수 있다. 단, 이 추격전이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카 체이싱을 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다른 우주의 존망까지 위협할 수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추격전은 ‘이블데드’ 시리즈, ‘드래그 미 투 헬’ 등을 연출한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을 통해 기존의 MCU와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게 된다. 그 유명한 전설적인 일본 공포영화 ‘링’ 속 사다코처럼 온 몸을 비틀어 가며 거울에서 빠져나오는 스칼렛 위치의 모습이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음향과 함께 관객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장면을 직접 마주하면 이 작품이 우리가 그동안 봐 온 MCU가 맞나 싶다. 

앞서 이 작품은 제작 초기부터 “MCU 최초의 호러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주연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MCU에서 가장 무서운 영화”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은연중에 ‘그래도 MCU가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샘 레이미 감독은 이런 순진한 관객들을 그의 노하우로 마음껏 놀라게 하며 이 작품을 MCU 내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에 안착시켰다. 

이처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기존의 MCU 작품과 다른 정통 호러의 탈을 썼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 작품의 재미는 배가될 수 있다. 놀라는 재미, 그리고 언제,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동안 언제 MCU를 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는지.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리고 이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스칼렛 위치의 존재감이다. 스칼렛 위치는 이 작품에서 빌런으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고 완벽하게 소화했다. 아메리카 차베즈를 갖겠다고 이물질로 범벅이 된 채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뒤를 쫓는 모습은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존 코너를 쫓던 T-1000을 처음 봤을 때만큼 충격적이다.

이에 더해 스칼렛 위치는 이 작품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데 이미 흑화돼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그의 눈과 표정이 더해져 관객이 느끼는 공포감을 배로 끌어올린다. 특히 일루미나티의 울트론들을 손쉽게 박살내고 피 범벅이 된 모습은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캐리’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우리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 작품에서 손가락 빨고 노는 것일까. 오히려 이 작품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를 한 단계 성숙한 히어로로 만든다, 과거 파티 피플이자 망나니였던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3’를 통해 진짜 히어로로 거듭난 것처럼.

이 작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내내 다른 이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타노스에게 타임스톤을 건넨 것이 정말 유일한 방법이었는지, 지금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행복한지,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는지, 크리스틴 팔머와 행복하게 맺어지는 세계에서 살고 싶지는 않은지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 폭탄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차례차례 답변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런 선택들이 조금씩 쌓여 극의 최종장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아는 닥터 스트레인지는 다른 우주의 닥터 스트레인지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한때 “타임스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꼬맹이(스파이더맨)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속 모습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말미에 보여줄 그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더없이 갸륵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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