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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환, 화낼수록 더 빠져들게 하는 마성남

'우리들의 블루스'서 정인권 역으로 시청자 마음 훔치다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박지환은 마초 성향을 지닌 순대 장수 정인권을 연기한다. 얼핏 인권은 웃음기 하나 없이 성질만 내는 못된 성미의 악역인가 싶다가도, 화내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친근한 사람 냄새를 풍긴다. 박지환은 휴머니티와 로맨스가 오가는 이 작품 속에서 매운맛의 동적인 연기로 드라마의 감칠맛을 살린다. 웰메이드로 불리는 이 드라마에서 잔잔한 에피소드 사이로 가장 극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웃음이 새어나오게 하는 천연덕스러운 박지환의 연기다.

1화에서 인권은 친구인 생선 장수 은희(이정은)가 길가에서 한 남성과 차 시비가 붙었을 때 홀연히 등장해 두 사람을 좋은 말로 달래며 떼어낸다. 하지만 상대 남성의 "쪼다"라는 발언에 돌연 얼굴색을 바꾸며 웃통을 벗어제낀다. 까무잡잡한 살결이 드러난 상체에는 24K 쯤 돼보이는 굵직한 금목걸이가 빛나고 있다. 누가 봐도 소위 '어깨'라고 불리는 형님의 비주얼이다. 겉모습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인 인권은 "개나리 고사리 쌈장 같은 새끼"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욕까지 퍼붓는다. 약이 오른 남성이 주먹을 날리자 인권은 날랜 몸짓으로 이를 피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친구 호식(최영준)이 대신 맞으며 웃음을 터지게 한다.

3화에서는 호식과 함께 한수(차승원)의 뒤를 캐 은희에게 이르는 장면이 있는데, 은희가 "돈 있는 나도 친구고 돈 없는 한수도 친구"라며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자 호식과 함께 붙들고 있던 전화기에서 손을 떼버린다. 발걸음을 돌리는 인권에게 호식이 "야 왜 가"라고 화를 내자 인권은 말한다. "은희 말이 다 맞는데 뭔 말을 더해".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인권의 모습은 쿨하기 그지없다. 아들 정현(배현성)이 가게에 들러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하자 "생활비 삥땅 치냐"며 고함을 치다가도, 이내 돈통의 위치를 알려주며 얼마를 가져가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손님에게는 "쟤가 전교 1등"이라며 은근히 자랑 섞인 말을 뱉는다.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그렇다고 인권을 '츤데레'라 부르기에도 뭐한 구석이 있다. 하나뿐인 아들 정현에게 그는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 다정한 구석 하나 없이 모든 말을 언성 높여가며 하고, 수험생인 자식에게 밥 한끼 차려주지 않고, "넌 아직 내꺼"라며 자식을 소유물 취급한다. 때문에 인권과 정현 사이에는 부자지간의 애틋함이 없다. 인권을 바라보는 정현의 시선은 애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하게 빈 시선은 언제라도 인권에게서 미련없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황 상 아들조차 엄마의 이혼을 찬성했을 만큼 평탄한 가정 생활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인권의 등장을 기다리게 된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이 있는 캐릭터다. 매력이라기보단 마치 마력에 가깝다. 잔잔한 블루스 같은 이 드라마에서 홀로 메탈과 같은 자극성으로 시청자들을 홀린다. 이는 인권을 연기한 이가 박지환이라 가능한 지점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수십 개의 필모그래피 사이로, 자신만의 연기톤을 연구해 온 필사의 결과물이다. 그동안에도 연기력은 모자람이 없었으나, 어느 포인트에서 매력을 발휘하는지를 조금씩 연구하고 찾아낸 것이다.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사진출처=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화면

박지환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배우는 아니었다. 출연했던 모든 작품은 단역이나 조연에 머물렀고, 아직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 '그라운드 제로' '유체이탈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봉오동 전투' '사바하' '마약왕' '성난황소' '1987' '대립군' '대배우' '검사외전' '대호' '악인은 살아 있다' '무뢰한' '빅매치' '나의 독재자' '남자가 사랑할 때' 등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일부일 뿐 반도 읊지 않았다. 여기에 드라마 출연도 상당하니 얼마나 성실히 활동을 해왔을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박지환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장이수를 연기하면서부터다. 유난히 매섭고 얍실한 눈은 조금만 안색을 달리해도 무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특유의 표정이 묘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가 연기한 장이수는 한 일대를 주름 잡을 정도로 잔인한 성미를 지녔지만, 우락부락한 삶 사이로 부모님의 생일 잔치를 거하게 챙기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정도로 인간미도 넘쳤다. 덕분에 마동석과 더불어 '범죄도시' 시즌2까지 연이어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연기의 연장선을 보여주고 있다. 나쁘지만 나쁘지 않은, 칼의 날과 손잡이 사이를 꽃으로 장식해 놓은 듯한 특별한 캐릭터로 말이다.  이제 전성기가 막 열리기 시작한 듯한 박지환이 앞으로 펼쳐낼 연기세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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