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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박희순, 세대 통합을 이루는 ‘지천명 아이돌’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설경구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지천명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들었을 때, 솔직히 코웃음을 쳤다. 뭐래, 설경구가? 뒤늦게 ‘불한당’을 보고 나서 코웃음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와, 설경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 네임’ 공개 이후엔 박희순이 ‘지천명 아이돌’로 떠올랐다. 10~20대 팬들 사이에 ‘엄마, 나 50대 아저씨 좋아해’라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지천명 아이돌’로 만든 걸까?

설경구와 박희순이 ‘지천명 아이돌’로 명명된 과정은 흡사한 부분도 있지만 다르다. 연극으로 데뷔해 2000년대에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연기파 트로이카로 불리며 충무로를 씹어 먹었던 설경구는, ‘실미도’ ‘역도산’ ‘공공의 적2’를 연달아 찍으며 엄청난 체중 증가와 감량으로 화제를 모은 적은 있으나 그 외에 외모로 화제를 모은 적은 없었다. 빈말로도 잘생기거나 섹시하다는 반응은 받아보지 못했던 그는 ‘불한당’에서 포마드를 바르고 쓰리 피스 맞춤 정장을 갖춰 입고 ‘섹시한 중년미’를 내뿜었다. 아이돌 출신 임시완과 퀴어적인 브로맨스를 선보인 것도 여느 ‘아저씨 배우’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불한당’의 흥행 자체는 실패했지만 이 영화는 뜨거운 팬덤을 얻으며 연이은 작품 실패로 슬럼프를 겪던 설경구에게 제2의 연기인생을 열어줬다. 

역시 연극으로 데뷔해 주로 영화로 활동한 박희순은 특유의 저음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조직폭력배 보스 역을 여러 번 연기했을 만큼 필모그래피에서 멜로 장르를 찾아보기 힘든데, 2007년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로맨시스트 보스로 훗날 ‘지천명 아이돌’의 조짐을 보였으나 워낙 낮은 시청률로 극소수 팬들만 그의 섹시한 매력을 알아보았다. 설경구와 달리(?) 애초에 잘생긴 외모와 피지컬, ‘멜로눈빛’이라 불리는 그윽한 분위기를 장착했지만 이를 작품에서 발휘할 기회가 적었는데, ‘마이 네임’이란 판에서 제대로 자신의 장기를 부려 놓은 셈이다. 

설경구와 박희순, 그리고 그들이 작품에서 맡은 역할을 따져 보면 ‘지천명 아이돌’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외모와 피지컬. 비록 설경구가 외모로 부각된 바 없다지만 ‘불한당’에서는 날렵한 몸매와 잘 가꿔진 외모로 후천적으로도 멋있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178cm의 작지 않은 키도 한 몫 했다. 박희순은 두 말할 것 없으니 패스. 둘째로 섹시한 중년의 교복과도 같은 슈트 등 나이에 걸맞은 스타일링. 젊게 보인답시고 10~20대의 차림새를 무모하게 따르다가 자칫 대참사가 날 수도 있다. 젊은 차림새가 어울릴 수도 있지만 중년 남자의 중후한 멋을 표출하기 적합한 것으로 슈트만한 것을 찾기 어려우니까. 여기에 세심하게 스타일링된 헤어스타일과 고급스러운 시계 등 적절한 아이템을 곁들이며 제대로 된 꾸밈이 필요하다. 젊을 때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로 밀고 갈 수 있으나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꾸꾸(꾸민 듯 꾸민)’가 최선이다. 외모와 피지컬, 그리고 그에 걸맞은 스타일링이 잘 결합되어 시너지를 발휘할 때, 세 번째 조건인 섹시미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섹시미는 아이돌의 기본이다. 아무리 섹시보다 귀여움, 청량미에 집중된 아이돌이라 해도 적어도 무대에서만큼은 그 특유의 아우라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섹시미가 결여된 중년은 그저 미중년에 그칠 뿐, 농담이라도 갖고 싶은 대상은 되지 못한다. 여기에 대중을 홀리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면, 드디어 ‘지천명 아이돌’이 탄생할 수 있는 것. 아, 빼어난 연기력은 기본이고. 

박희순, 사진제공=넷플릭스
박희순, 사진제공=넷플릭스

‘지천명 아이돌’ 설경구와 박희순 이전에도 ‘꽃중년’ ‘중년돌’이란 수식어를 얻으며 인기를 얻었던 남자 배우들은 있었다. 특히 2010년대 초반, 브라운관을 중심으로 김갑수, 조성하, 정보석, 이병준, 길용우 등이 중후한 연기와 매혹적인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며 활발히 활동한 바 있다. 이때의 ‘중년돌’ 특징은 미중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관리된 외모와 젊게 사는 감성, 로맨틱한 분위기, 그리고 극에서 크지 않은 롤이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데서 비롯됐다. 지금의 ‘지천명 아이돌’과 매우 흡사하지만 섹시미 자체는 적었다. 당시만 해도 20~30대 배우가 드라마에서 주로 주인공을 맡았기에 주조연급 분량을 차지하기 힘든 데다, 다양한 연령대가 지켜보는 TV에서 치명적인 섹시미나 퇴폐미를 부각시키긴 어려웠기 때문. ‘불한당’과 ‘마이 네임’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때의 ‘꽃중년’들이 ‘지천명 아이돌’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치명적인 섹시미의 중년 남자 배우를 찾기 힘들어서 그렇지, 해외로 눈을 돌리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젊을 적에는 ‘미스터 다아시’로 섹시했다가 나이 들어서는 ‘킹스맨’으로 중후한 섹시미를 전 세계에 표출한 콜린 퍼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로 딸과 엄마의 대화합을 일으킨 양조위, ‘한니발’ 시리즈로 빛나고 최근 ‘어나더 라운드’에서 섹시한 춤사위로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매즈 미켈슨 등이 ‘엄마, 나 아저씨 좋아하나 봐’란 반응을 일으키며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은 인물들. 젊을 적 빼어난 미모와 연기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들이 나이 들어서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그들을 몰랐던 10~20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경이 자못 흐뭇하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고 딸이 “엄마, 나 양조위랑 결혼할래”라고 하자 엄마가 “네가 뭔데 양조위를 탐내”라고 응수했다는 커뮤니티의 우스갯소리를 보면, 이렇게 세대 통합이 이루어지는가 싶다. 

제3, 제4의 ‘지천명 아이돌’은 누가 될까? 지천명을 기다리는 40대 남자 배우군은 워낙 탄탄해 향후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당장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중년돌로 거론된 바 있고 누아르에 최적화된 박성웅이나 차가운 도시 남자의 매력이 특징인 김상중, ‘비밀의 숲’으로 ‘중년섹시의 정석’이란 찬사를 받은 유재명이 떠오른다.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와 길선미 역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박혁권이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더티 섹시’ 열풍을 일으킨 류승룡, 최근 들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허준호도 강력한 후보군. 개인적으로는 류승수와 이승준을 꼽고 싶다. 좋은 역할만 만나면 피곤한 듯 나른한 섹시미를 제대로 보여주며 만개할 수 있을 같거든. 누가 되었든, 젊은 톱스타 말고도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중년 배우들이 많아진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런 분야에서라도 세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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