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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리스펙트가 연발되는 한국 대중음악의 찐 대장

김창완,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 화면 캡처
김창완,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 화면 캡처

KBS2 '불후의 명곡'은 2011년 6월에 첫 전파를 타고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 방송에서 재해석된 곡만 2000곡, 누적 관객 수는 28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3월, 이 오래된 프로그램이 무려 10년 동안 러브콜을 보냈지만 고사하다 마침내 섭외에 응한 사람이 있다. '불후의 명곡' 측은 그를 위해 두 회를(547, 548회) 편성했다. 주인공은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이다.

김창완은 그동안 '불후의 명곡' 섭외 요청을 계속 거절한 이유에 대해 "'불후'라는 말이 어마어마한 말이지 않나. 내 곡이 진짜 썩지 않는 노래가 되나 10년은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인디 음악이 태동하기 20년 전 이미 인디의 개념으로 음악을 만든 김창완은 방송 첫 회에서 산울림 2집의 첫 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자신의 밴드와 직접 연주하며 오프닝 무대에 섰다. 관중석에는 록 공연을 좋아하신다는 그의 93세 모친이 앉아 있었고, 다양한 장르에 종사하는 음악 후배들은 대선배가 공연하는 동안 산울림의 곡들을 재해석하기 위해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김창훈의 베이스 리프가 주도하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도입부 연주로만 3분을 넘기는 사이키델릭 록 넘버다. 그러니까 보통 3~4분 안에 듣는 사람을 납득시켜야 하는 대중음악의 일반 공식에서 이들은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곡을 앨범의 머리에 배치한 셈이다. 김창완과 산울림은 그런 팀이었다. 데뷔곡 '아니 벌써'부터 이미 상식의 바지를 내려버린 그들은 남들과 비슷한 것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음악으로 꾸준히 증명해왔다. 지난 '불후의 명곡'에서 다뤄진 곡들로 그런 산울림 음악이 지닌 특징을 따져본다면 다음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먼저 상식을 벗어난 가사다. 이는 김창완과 16년 인연을 자랑하는 밴드 크라잉넛이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로 충분히 환기시켜 주었다. 보컬의 기교 따위 무시하고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는 자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보컬리스트 김창완의 개성, 업적이다. 이 부분에선 산울림 10집에 있는 '지구가 왜 돌까?'가 대표적이겠지만 지난 방송에선 잠비나이가 커버한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가 그 업적을 되짚어주었다.

최정훈(왼쪽)과 이승윤,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화면 캡처
최정훈(왼쪽)과 이승윤,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화면 캡처

가사의 일탈, 자유로운 노래에 이어 산울림 하면 '형식의 파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앞서 김창완 밴드가 프로그램을 여는 곡으로 썼고, 남성 4중창 크로스오버 보컬그룹 포레스텔라가 다시 뮤지컬 풍으로 편곡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늘 거론되는 영역이다. 그리고 청년의 서글픈 감성과 어린이의 아련한 동심이라는 두 가지 정서도 김창완(산울림) 음악을 지탱하는 두 기둥인데, 정동하와 손진욱이 터프하게 재해석한 '나 어떡해'와 김재환이 부른 '회상', 솔지가 부른 '청춘'은 전자에 부합하고 보이 밴드 펜타곤이 안무를 곁들여 표현한 '개구장이'와 공소원이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부른 '안녕'은 후자의 대표 예가 되겠다. 잠비나이의 이일우가 말했듯 김창완과 산울림은 그 이름 자체로 장르가 되어버린 존재였다.

이번 김창완을 초대한 '불후의 명곡'에선 특히 눈에 띈 두 무대가 있었다. 하나는 잔나비의 최정훈이 섰고 나머지 하나는 JTBC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이 채웠다. 최정훈은 산울림의 여섯 번째 앨범 대표곡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골랐다. 처음엔 조용한 어쿠스틱 느낌으로 가다 곧장 원곡의 들썩이는 폴카 리듬으로 갈아입은 그의 노래와 편곡은 입으로 낸 손피리 솔로와 팬서비스 차원의 골반춤을 더해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공연 전 최정훈은 김창완과 산울림에 대한 소회를 가감없이 풀어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라면 산울림을 꼽는 편이고, 산울림이 없었다면 아예 음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최정훈은 또 잔나비 1집이 산울림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은 앨범이라고 고백했는데, 실제 그 앨범에 있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라는 긴 노래 제목은 자신이 곧 커버할 산울림의 곡 제목과 꼭 닮아 있었다.

반면, 1년 여 전 '싱어게인'에서 이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멋있게 편곡해 보인 이승윤은 아이유도 불렀던 산울림 10집의 히트곡 '너의 의미'를 빼들었다. 그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아 편곡 아이디어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이승윤은 나중에 이 곡을 자신의 앨범에도 담고 싶다고 했다.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화면 캡처
사진출처=KBS2 '불후의 명곡' 방송화면 캡처

그의 머리 속에서 솟구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드럼의 마칭(Marching) 리듬과 휘파람이었다. 이어 "너의 그 한 마디 말도"를 세 번 반복하고 노래 속으로 들어간 이승윤은 1절로 긴장된 분위기를 충분히 빌드업 한 뒤 이내 헤비메탈 사운드를 머금은 퀸의 'We Will Rock You'식 비트에 다시 곡의 운명을 맡겼다. 그는 여기서 리듬의 뒷덜미를 낚아채 무대 위로 내동댕이 쳐버리는 격정의 순간을 연출했다. 이승윤의 파격적인 무대에 김창완은 "무대를 보면서 엄마는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내 배를 갈라 낳은 애가 노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호평을 보냈다. 이승윤은 이날 '불후의 명곡' 우승자가 됐다.

프로그램 첫 무대를 장식한 김창완은 최정훈, 이승윤이 함께 부른 '청춘'의 스페셜 무대에까지 같이 서며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처럼" 빛냈다. 앞서 솔지가 '청춘'을 부를 때 스크린을 통해 표현된 세월의 무상함은 어느새 무대 위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그것은 음악적 세대 차이가 아닌 음악을 통한 세대의 공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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