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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마약왕의 아들, 에스코바르 더 무비’

사진제공=왓챠
사진제공=왓챠

전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악당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약왕의 아들, 에스코바르 더 무비(Escobar by Escobar)'의 타이틀을 보는 순간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콜롬비아 최대 마약 카르텔인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이자 한때 전세계 마약의 70% 이상을 유통시킨 전설적인 범죄자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는 유명 TV시리즈 '나르코스'와 영화 '에스코바르'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다. 

살아 생전 약 5,000명 가량의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경제지 포브스가 꼽은 전세계 부자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재산으로 정계, 경찰, 군인 등을 매수하며 자신만의 범죄 왕국을 세웠다. 

아버지의 범죄 왕국에서 후계자로, 작은 왕처럼 군림했던 후안 파블로는 아버지의 몰락과 죽음을 모두 지켜본 인물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돌아야 했던 비운의 남자이기도 하다. 

3월 왓챠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마약왕의 아들, 에스코바르 더 무비'는 후안 파블로와 그의 어머니, 아내의 회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2020년 작품으로 토마스 미스라치와 다비드 페리세어 감독이 연출을 맡아 에스코바르 가족과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기자, 변호사, 지인들의 증언, 당시의 실제 자료화면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에게 유년시절을 없었다. 그는 어릴때부터 장난감이 아닌 기관총을 만지며 놀았으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코카인 운송에 관여했다. 그는 왕이었다."

다큐는 바이크를 타고 가는 중년의 후안 파블로의 모습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세계적인 부자이자 콜럼비아를 주무른 실세여서인지 에스코바르와 그의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자료사진이 적잖게 등장한다. 

이 작품은 담담하게 세기의 악당이 파멸한 후 그의 아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죗값을 과업으로 짊어지고 사죄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진제공=왓챠
사진제공=왓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안 파블로는 "어느 특정 순간이 아니라 늘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싶다"고 말한다. 수천명의 사람을 죽인 범죄자이지만 그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다정하고 가족을 끔직하게 아꼈다. 특히 아들이 그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에스코바르가 사살된 후 후안은 언론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극적인 멘트를 유도하는 상대에게 휘말려 "그 개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직접 죽이겠다"라고 말해버렸다. 그것은 후안 파블로가 저지른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 그 말로 인해 그는 아버지의 적들로부터 계속되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고 이름을 바꾸고 25년동안 타국을 떠돌며 살게 됐다. 

에스코바르는 막대한 돈을 투입해 살아생전 나폴레스 농원을 지었다. 30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농원은 27개의 인공호수가 있었고 1,200마리의 동물을 사육하는, 군대를 방불하는 경호대와 온갖 편의 시설을 갖춘 '에스코바르 왕국'이었다. 

후안 파블로는 그곳에서 인생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한순간에 무일푼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부유한 시절이 그립지는 않다"고 회상했다. 

에스코바르가 죽은 뒤 후안 파블로는 아버지의 숙적인 '칼리 카르텔'과 생명을 건 협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후안에게 궁금해 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에스코바르의 돈은 어디있나?” 

그것은 적이든 친구든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였고 심이어 가족들까지 돈만을 원했다. 칼리 카르텔과의 협상 자리에 나온 것은 상대 조직의 수장 뿐 아니라 자신의 조모(에스코바르의 어머니)와 친삼촌도 있었다. 칼리 카르텔보다 더 악랄하게 "모든 돈을 빼앗으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모습에 더 큰 배신감을 느낀 후안은 2억 달러 이상의 돈을 모두 넘기고 생명을 보장받았다. 

자신을 받아줄 국가가 전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이들 가족은 이름을 바꾸고 아르헨티나로 입국한다. 그곳에서 후안 파블로는 세바스티안 마로퀸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을 다니고 산업 디자이너가 돼 한동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돈을 관리했던 회계사에게 정체가 들통나고 협박을 받던 중 결국 5년만에 경찰에 체포된다. 언론의 질타와 수감 생활 후 후안 파블로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사진제공=왓챠
사진제공=왓챠

고국인 콜롬비아로 돌아와 아버지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다큐멘터리는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은 마약왕의 아들이 그의 뒤를 잇지 않고 평범하게, 아버지의 죄를 속죄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사실적이다못해 에스코바르의 시신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피로 얼룩진 얼굴과 시체를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가 하면 장례식에서 관 속에 누운 모습 역시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색적인 것은 에스코바르가 탈출 중 저격수의 소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와 달리 후안은 아버지의 자살 가능성을 말하는 장면이다. 

그는 "증거는 많다. 부검사진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죽인게 본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관자놀이를 관통한 총상은 분명 가까운 거리에서 쏜 것이다. 아버지는 자살에 대해 여러번 말했었다. 수백번의 전쟁, 악명높은 수배자였던 아버지는 잡히면 고문을 받을 걸 아는데 그걸 피하는 방법은 자살뿐이라고 늘 얘기했다. 하지만 유일한 진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거다"라고 서글프게 말한다. 

희대의 악당이자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를 제멋대로 주물렀던 권력가. 대통령과 후보를 잇따라 암살하고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였지만 아들에게는 그립고 보고 싶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죗값을 대신 치르며 가족을 지키는 후안 파블로. 마약왕의 아들은 처연하고 고통스럽게 아버지를 회상하고, 다시는 누구도 그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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