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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ㅣ 진정한 한국적 글로벌 프로젝트의 의미

사진제공=애플TV+
사진제공=애플TV+

OTT 플랫폼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애플 TV+가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로 잭팟을 터트릴 조짐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괴테의 말처럼 요즘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가장 세계적인 콘텐츠라는 것을 간파한 애플 TV+는 화제성과 주제성, 작품성을 고루 갖춘 야심 찬 드라마를 제작했다. ‘파친코’는 제작비 1000억 원의 규모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작이자 한국계 제작진의 손길이 골고루 뻗어 있는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공개 직후 ‘마스터피스’로 불릴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만큼 한국 이민사를 소재로 한 역사 가족 드라마가 세계적인 OTT을 통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높다.

한국계 1.5세대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2017년 발표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대서사극이다. 원작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고향인 부산 영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주인공 ‘선자’와 그의 가족이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부당한 차별과 이에 굴복하지 않는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4대에 걸쳐 시대순으로 전개된다. 1910년, 선자의 부모 이야기로 시작해 1989년 선자의 손자 솔로몬과 나이 든 선자의 이야기로 끝나는 소설은 1,2권을 합쳐 76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임에도 한 번 펼치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 넘치는 서사와 흡인력 있는 전개가 일품이다. 제목 ‘파친코’는 파친코 사업을 운영하는 선자 아들의 생계 수단이자 돈과 권력(힘), 출세를 위해 도박 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상징한다. 

원작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드라마의 첫 시작은 몇 줄의 자막으로 시대 배경을 소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라는 자막부터 ‘견뎠다(endured)’라는 단어가 연달아 등장해 시선을 붙든다. 한국 시청자라면 이 단어를 보고 벌써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이 눈앞에 닥친 고난과 시련을 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견뎌낼 것이라는 예고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게 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단단히 먹게 만든다.

반면에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드라마와 대비를 이룬다. 아카이브 푸티지와 등장인물, 배우들의 이미지에 키치한 분위기의 파친코 세트를 배경으로 주요 인물들이 밴드 그래스 룻츠의 ‘Let’s Live for today’(1967)를 빠르게 편곡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신선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대개 OTT 드라마 시리즈의 오프닝은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기 마련인데 ‘파친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 계속 지켜보게 된다. 마지막 8화에선 더 신명 나는 오프닝 타이틀 음악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사진제공=애플TV+
사진제공=애플TV+

유명한 원작 소설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드라마와 원작의 차이점을 살피게 될 것이다. 시대순으로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2대 선자와 4대 솔로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시대를 오간다. 제목 ‘파친코’는 선자의 아들이 파친코 가게를 운영하는 1대 선자 부모의 이야기는 선자의 사연에 녹아들었고, 3대 선자 아들의 이야기는 축약된 편이긴 하지만 제작진이 시즌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차후 시리즈에서 다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선자와 솔로몬을 원작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투쟁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조모와 손자 사이인 둘의 관계를 두텁게 설정한 점도 드라마의 묘미 중 하나다. 

드라마 ‘파친코’의 가장 큰 성과라면 원작을 충실히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과감함에 있다. 전개 방식부터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잇고자 하는 제작진의 부단한 노력은 소설 속에서 중도 퇴장한 인물의 현재를 보여주기도 하고, 한 인물의 과거를 창작해 역사적 비극과 맞닿게 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듯, 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시도하고 귀결점에 다다른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코고나다 감독은 연출 데뷔작인 존 조 주연의 영화 ‘콜럼버스’(2018)로, 배우 겸 연출자로 활동하는 저스틴 전 감독은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푸른 호수’(2021)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되며 국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파친코’ 에피소드 1,2,3,7의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 감독은 영상 에세이스트로 활동한 이력답게 아름답고 빼어난 영상미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에피소드 4,5,6,8을 맡은 저스틴 전 감독은 솔직하고 힘 있는 연출로 드라마에 힘을 싣는다. 두 감독의 연출력이 시너지로 작용해 에피소드 전체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완성도를 유지한다. 

드라마 공개 전까지는 윤여정, 이민호 등 유명 한국 배우들의 출연에 화제가 집중되었다. 막상 드라마를 보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캐스팅 덕분에 배우 한 명 한 명에 눈길이 쏠린다.  전세계 시청자들이 드라마 ‘파친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윤여정은 노년 시절의 선자 역을 맡아 등장하는 모든 신을 명장면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대배우는 작은 몸동작 하나, 미묘한 표정 변화 한 번으로 혼신의 연기가 무엇인지를 절로 깨닫게 한다. 에피소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있고 인상적인 등장 신을 차지한 이민호는 선자의 연인 고한수로 분해 정통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갖춘 고전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한 에피소드를 온전히 이끌면서 존재감을 공고히 다진다. 

사진제공=애플TV+
사진제공=애플TV+

선자의 아들 모자수 역으로 오프닝 크레디트 맨 처음에 이름을 올린 미국 국적의 재일동포 3세 아라이 소지(박소희), 손자 솔로몬 역의 진하, 선자의 동서 경희를 연기한 정은채, 드라마의 첫 장면을 책임지는 선자의 어머니 양진 역의 정인지, 모자수의 여자친구를 연기한 일본 중견배우 미나미 카호, 솔로몬의 상사로 등장하는 지미 심슨 등 다국적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한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어 글로벌 프로젝트의 의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이렇게 괜찮은 배우들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친코’는 한국 배우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드라마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끄는 배우는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다. 16세에서 22세의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는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단역을 거쳐 오디션을 통해 ‘파친코’의 주연 자리에 올랐다. 가난 앞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선자의 꼿꼿한 생명력은 김민하의 강단 있고 다부진 연기와 건강한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선자의 남편 이삭 역을 맡은 노상현의 차분한 연기와 굵직한 외모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의 등장을 알린다. 두 젊은 기대주의 활동 무대는 더 넓어질 것이다. 

지난 25일 첫 공개일에 에피소드 3편을 공개한 8부작 ‘파친코’는 4월 29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남은 에피소드 5편을 공개한다. 공개일에 전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매주 한 편씩 공개하는 디즈니플러스와 차별화를 선언하는 셈이다. 공개 시점에만 화제를 끌거나 회차를 거듭하면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앞의 두 공개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는 공개 전략으로 읽힌다. ‘파친코’의 초반 장악력이 상당한 만큼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맛에 단단히 붙들려 4월 한 달을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으로 보낼 듯하다. ‘파친코’의 등장으로 애플 TV+의 입지가 달라졌다. 잘 만든 한 편의 드라마가 당당하게 위력을 발휘하는 콘텐츠 세상, 마음껏 공감하고 열렬히 응원하자. 그래야 다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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