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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ㅣ흠을 찾을 수 없는 진정한 '마스터피스'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애플TV+ 신작 '파친코'(각본 수휴, 연출 코고나다-저스틴 전)는 한국 시대물의 수작이다. 대표적인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무려 신선도 100%를 달성했고, 롤링 스톤은 "예술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고 호평했다. 이 외의 많은 외신들도 찬사를 쏟아냈다. 롤링 스톤의 평론에 반박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파친코'는 연출이나 연기 모두 흠을 잡으려 아무리 천리안을 돌려도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주인공들이 발을 딛는 시대 배경의 철저한 고증은 '완벽하다'는 말 위로 박수를 얹는다. 때문에 작품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의 말과 행동이 직관적으로 다가와 감정의 끓는점을 높인다. 그러나 신파는 지양한다. 시대물 특유의 과잉된 감정이 없는 게 '파친코'만의 한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바쁘게 오간 세 시간대의 교차는 머물지 않는 시선 속에서 오늘날까지 곱씹어볼 만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파친코'는 선자라는 인물을 통해 1910, 1930, 1980년대 세 시간대를 아우른다. 어린 날의 선자를 연기한 전유나와, 16세에서 22세 사이의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 노년의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의 시선으로 시점을 양분한다.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시대상을 품는다.  또한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려낸다. 가족, 사랑, 승리, 운명, 극복까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며 생존과 번영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고국을 떠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을 4대에 걸쳐 풀어낸다. 

세 시간대가 교차되는 구성은 그간 한국 시대물에서 흔히 봐온 전형성을 배제함과 동시에, 더 많은 시대상을 포용하며 자연스레 역사적 흥미를 일깨운다. 또한 선자라는 한 인물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돼 이야기의 결을  번잡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정돈한다. 여러 시대에서 필요한 장면만 실속있게 담아낸 '파친코'는 그래서 허투루 흘려보내는 시퀀스가 없다.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총 8회 분량의 '파친코'는 지난 25일 3개 회차를 동시에 공개했다. 드라마는 1900년대 선자의 어머니가 아이를 갖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며 시작된다. 다음 장면은 1980년대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진하)이 미국인 상사와 진급 미팅을 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이 갑작스레 시간을 뛰어넘는 장면 전환은 한 번 더 짚어보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선자 어머니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것과, 솔로몬이 미국 금융사에서 아시아인이라는 편견을 딛고 부사장 자리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것. 시대적 상황은 다르지만 생존이라는 메시지는 같게 이어가며 통일감을 준다. 다음 장면들도 마찬가지의 기법으로 이어진다.

어느덧 아이로 자란 선자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어머니로부터는 강인함을 배운다. 형편이 넉넉지는 않으나 부모의 극진한 돌봄 속에 잘 자라난 선자는 병증을 앓던 아버지를 성년의 중턱 쯤에서 하늘로 보내는 시련을 겪는다. 그렇게 인정은 넘치나 강하게 자란 선자는 일본군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선자의 빳빳한 고개를 우연히 보게 된 사업가 한수(이민호)는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선자가 일본인에게 변을 당할 뻔할 때 어디선가 한수가 나타나 구해준다. 그것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선자는 한수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선자는 한수에게 임신 사실을 밝히고 한수도 기뻐한다. 그러나 "결혼하자"는 선자의 말에 그제야 가정이 있음을 말하며 "지금 누가 누구 피를 더럽히는 거냐"고 윽박지른다. 한수는 선자에게 자신의 첩이 되라고 회유하지만, 선자는 반쪽 자리 삶을 거절한다. 때마침 선자의 하숙집에 전도사인 이삭(노상현)이 찾아오고, 우연히 선자의 사연을 듣게 된다. 이삭은 오랜 고민 끝에 선자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파친코', 사진제공=애플TV+

솔로몬의 이야기도 교차된다. 미국에서 터를 잡은 솔로몬은 부사장이 되기 위해 회사에 거래 조건을 내걸며 일본 지사로 건너간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한국인 소유의 땅을 사는 것. 같은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이용해 땅을 얻어내려던 솔로몬은 땅 주인인 할머니에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한 차례 실패 끝에 친할머니 선자를 찾아 대화를 하던 중 선자가 땅 주인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솔로몬은 선자와 함께 땅 주인을 다시 찾아가고, 선자와 깊은 공감대를 나누던 땅 주인은 결국 땅을 팔 결심을 하게 된다. 회사에서 축배를 들고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으로 솔로몬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3회 만에 성공적인 출발을 알린 '파친코'는  흥미로운 줄거리만큼이나 뛰어난 완성도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늘어지는 장면 하나 없이 촘촘하게 세 시대를 오가며 시청자들을 역사의 현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선자는 이 이야기의 중심이며 다른 캐릭터들은 그의 주위를 공전한다. 처음엔 단순하지만 이윽고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선자를 만나게 된다. 특히 사실성을 중시한 각본가이자 총괄인 수휴의 바람에 따라 여러 촬영지를 오가며 현실감을 높인 것이 몰입감을 높인다. 시대적인 디테일을 살린 것이 '파친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드라마 컨퍼런스에서 16세~22세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가 "작품 전체로 봤을 때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자신감 넘치는 말은 결과물을  보면 허언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출의 뛰어남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윤여정, 이민호뿐 아니라 진하, 김민하, 안나 사웨이, 정은채, 정인지, 지미 심슨, 한준우, 미나미 카호, 노상현 등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전 배우들은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파친코'는 한 마디로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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