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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조성경(칼럼니스트)
  • 입력 2022.03.09 08:59
  • 수정 2022.03.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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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홉'',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내 오랜 친구야!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우정이 일깨워준 친구의 의미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현상은 인과응보에 의해 특정한 때와 환경이 되어야 일어난다는 불교용어인데, 요즘은 ‘인연에도 때가 있다’는 의미로 많이들 쓰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맺는 수없이 많은 인연에 시작하고 끝내는 때가 있다고 말이다.

또한, 흔히 이성 간의 사랑을 그렇게 시작과 끝이 있는 인연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절인연’을 이야기할 때는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감정에 골몰하게 된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변해도 친구 사이의 우정이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의 판타지가 세월에 따라 점차 퇴색되는 걸 피부로 느끼는 이유다.

학창시절 화장실까지 붙어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던 친구들이 사회인이 되면서 하나둘 저마다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기고 나면 그 삶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직업이나 직장이 같거나 사는 동네 등 공통분모가 남아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아니라면 학창시절 같은 우정을 누리기에는 일상이 너무 버겁다.

그렇기에 친구가 전부이던 시절의 그 우정이 정말 그리운데,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이 안방극장에서 여자들의 진한 우정을 잇달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 방송 중인 JTBC 수목극 ‘서른, 아홉’(극본 유영아, 연출 김상호)이 딱 그렇다. 마흔을 앞둔 동갑내기 여자 셋이 10대 때 우정 그대로 똘똘 뭉친 모습을 그리며 안방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39살 차미조(손예진)는 김선우(연우진)로부터 “29살에 뭘 제일 좋아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친구”라고 답한다. 입양아인 미조는 자신의 생모를 찾아나섰던 어느날 우연히 지하철과 떡볶이집에서 각각 만난 정찬영(전미도), 김주희(김지현)와 절친이 돼 10대와 20대를 거쳐 30대를 함께 했다. 그 친구들이 미조에게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전부인 모습이다.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 의사가 된 미조는 얼굴까지 예쁜, 소위 ‘다 가진’ 여자이지만 내면에는 고아 혹은 입양아라는 남들은 모르는 열패감이 있다. 가족이 진짜 가족이 아니어서 그 마음을 잘 모른다고 하는 미조에게 친구는 진짜 친구여서 더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다.

그러니 내 전부 같은 친구 찬영이 유부남인 김진석(이무성)과 어정쩡한 관계로 불륜의 프레임이 씌워지는 게 죽을 만큼 싫고, 찬영의 췌장암 4기 판정을 들었을 때는 공황장애로 힘든 자신의 처지도 잊고 친구를 돌보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미조와 찬영, 그리고 주희까지 셋이서 하루가 멀다하고 복닥복닥 붙어있다. 

떠올려 보면 얼마전 티빙 ‘술꾼도시여자들’과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에서도 여자 셋의 우정이 집중 조명됐다. 드라마 속 돈독한 우정에 한때는 나도 친구들과 저랬지, 혹은 그때 나도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면서 아득해지는 친구 생각으로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됐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운명 같은 사랑, 혹은 치명적인 로맨스로 어필하던 안방극장이 사랑은 살짝 옆으로 비켜두고 우정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흠뻑 적셨다. 그런 마음을 ‘서른 아홉’이 화룡점정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죽음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하나 생각난다는 찬영은 미조에게 “너를 생각하잖아? 벌써 그리워서 슬퍼”라고 말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이들에게도, 현실의 우리에게도 친구는 그리운 존재가 되고 있다.

친구를 그저 때가 적당해 만났고 이제는 때가 다 되어 멀리해야 하는 ‘시절인연’으로 여기기에는 안타깝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큰 것이다. 가족 간에도 터놓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알아주고, 뜨거웠던 사랑이 식고 가슴에 멍이 들어도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의 존재감은 세월에 빛이 바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리라.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사진제공=JTBC 스튜디오

게다가 ‘서른, 아홉’은 그런 우정 어린 마음을 대사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눈빛으로 느끼게 하는 배우들의 힘이 엄청나다. 팔색조 매력의 손예진은 푼수가 따로 없다가도 친구를 지켜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절규하다가 혼절하고 마는 미조로 또 한 번 인생연기를 펼치고 있다. 20대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변주해온 손예진은 어느덧 노련미가 어색하지 않은 40대 배우가 되어 두 번이나 파양됐던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극복한 여주인공을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전미도의 연기도 일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불운의 아이콘이라도 된 듯 부적절한 관계라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오랜 세월 한 남자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져오다 시한부 선고까지 받은 인물을 담담히 그리면서 보는 이들을 더 애달프게 만들고 있다. 찬영이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서글픔을 전미도는 자신만의 깊이로 느끼게 하고 있다.

손예진과 전미도의 연기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서른, 아홉’은 시청자들에게 친구의 존재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오랜 친구가 더 그리워지면서 그 마음이 들게 해주는 손예진과 전미도에게도 애정이 깊어진다. 마치 그들이 우리의 친구인 양 그들의 따뜻한 연기를 보며 고마운 마음도 든다.

친구가 그립디그리운 마음을 ‘서른, 아홉’이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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