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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 앤 윈터솔저’ , 방패의 무게를 견디는 법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 플러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 ‘팔콘 앤 윈터솔저’는 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마블 관련 드라마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앞서 소개되었던 ‘완다비전’이 기괴한 분위기와 스토리 전개로 독특한 지점을 확보했다면 ‘팔콘 앤 윈터솔저’는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주제를 담으려다가 재미를 조금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팔콘 앤 윈터솔저’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노인이 된 캡틴 아메리카로부터 비브라늄 방패를 물려받은 팔콘(샘 윌슨)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동경하던 히어로의 상징과도 같은 방패를 받고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명됐음에도 팔콘은 이를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기증한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무거운 이름을 지고 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 윈터솔저(제임스 버키)는 완전히 세뇌에서 벗어난 후 그의 친구 스티브 로저스가 겪은 것처럼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만, 윈터솔저 시절 자신이 세뇌 상태에서 저지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그의 수첩엔 피해자 혹은 피해자 가족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현대 문명에 적응하려 너바나, 소련 해체, 박지성, 올드보이를 적어놓던 스티브 로저스의 수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팔콘은 방패를 들 용기가 없고, 윈터솔저는 속죄할 용기가 없어 방황할 때 미국 정부가 정한 제2대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가 모습을 드러낸다. 국가나 정부의 이익을 아득히 초월해 소코비아 협정마저 거부했던 1대 캡틴 아메리카가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일이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그러나 존 워커 역시 미 육군 소속으로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명예훈장을 3회나 획득한 경력만 놓고 본다면 그는 이미 전쟁 영웅이가 국가적인 영웅이다. 

그럼에도 존 워커는 캡틴 아메리카를 치켜세우고 그의 방패를 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한다. 제2대 캡틴 아메리카 홍보를 위해 각종 미디어 출연, 행사 참석 등을 하고 나서 “나는 그저 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구하고 지키는 일. 그것이 캡틴 아메리카의 일이라는 것을 존 워커 역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존 워커는 구속 위기에 놓인 팔콘과 윈터솔저를 자신의 손으로 구해주는 등 줄곧 호의를 보이며 팔콘, 윈터솔저와 함께 슈퍼솔저 혈청을 맡고 테러를 저지르는 플래그 스매셔를 추적한다. 이 때 존 워커는 캡틴의 방패를 들고 있음에도 나이 어린 플래그 스매셔 멤버와의 전투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전장을 누비던 전쟁 영웅이었던 존 워커가 제2대 캡틴 아메리카라는 부담감에 더해 첫 번째 열등감을 갖게 된 순간이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이에 더해 그를 지지해 줘야 할(?) 팔콘과 윈터솔저는 존 워커의 존재와 방식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과 코스튬을 멋대로 물려받은 존 워커가 곱게 보일 리 없고 정부의 명령에 따라 플래그 스매셔를 구제하기보다 윗선의 명령에 따라 제거하려는 방식 역시 1대 캡틴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

이 때 존 워커는 다시 한 번 열등감에 휩싸인다. 도라 밀라제와의 짧은 전투에서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하자 그는 “그들은 슈퍼솔저도 아니었는데…”라며 자괴감에 휩싸인다. 이처럼 ‘팔콘 앤 윈터솔저’는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로 성장하는 과정보다 존 워커의 흑화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보면 재미가 배가된다. 

특히 존 워커의 시점이나 감정에 공감하면 ‘퍼스트 어벤져’부터 ‘어벤져스:엔드게임’까지 보아온 1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의 위대함이 더욱 피부로 다가온다. 

방패를 들기 전에도, 슈퍼솔저 혈청을 맞기 전에도 만신창이가 된 깡마른 몸으로 “난 하루 종일 할 수 있어(I can do this all day)라고 외치던 모습이나 소코비아 협정을 어기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도 지하철역 플랫폼 어둠을 뚫고 형형한 안광을 내뿜던 모습 등 스티브 로저스가 왜 캡틴 아메리카였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스티브 로저스가 고결한 사람만 들 수 있다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휘두를 정도의 성품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팔콘 앤 윈터솔저', 사진제공=디즈니플러스

어쩌면 존 워커 역시도 1대 캡틴의 그런 고결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열등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 영웅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스티브 로저스가 쌓아놓은 유산을 감당하기엔 버겁지  않았을까. 

결국 존 워커는 최악의 방식으로 캡틴의 방패를 내려놓는다. 동료 배틀스타가 죽자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은 열등감을 분노로 승화시켜 대중이 보는 앞에서 어린 플래그 스매셔 일원을 방패로 찍어 죽여 버린다. 이에 그는 팔콘과 윈터솔저의 손에 의해 강제로 방패를 빼앗기고 만다.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전쟁 영웅이 하루아침에 흉악범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이런 존 워커의 작중 행보는 결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가 겪은 심리적 고통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존 워커의 이 같은 불행은 그가 3개의 명예훈장을 감당할 수 있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감당하지 못할 그릇이었다는 걸 몰랐다는데서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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