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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바로 이 순간 되짚어본 대의와 정의

확고한 자기 스타일로 승부하는 실화 정치극

'캉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캉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50여 일 앞두고 1970년대 대한민국 선거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 제작 (주)씨앗필름)가 개봉한다. 대선 시즌을 겨냥한 영화냐고?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개봉 시기와 무관하게 평가받고 싶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대선 막바지와 맞물려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2019년 제작된 '킹메이커'는 지난해 12월 29일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방역 지침 강화로 인해 설 연휴로 개봉일을 옮겼다. 개봉 연기는 '킹메이커'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이번 대선 선거판이 네거티브 경쟁이 되면서 50년 전 네거티브 전략을 펼친 선거전략가의 이야기를 다룬 '킹메이커'가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됐다는 거다. 

알려진 대로 '킹메이커'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와 선거전략가 엄창록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실화 영화지만 실존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았고 1960-70년대 한국 정치사를 뼈대 삼아 상상력을 불어넣은 장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은 1961년, 이북 출신 서창대(이선균)는 지역 선거 유세장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지닌 젊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의 연설을 듣고 그와 뜻을 같이 하기로 결심한다. 김운범의 사무실을 찾아가 전략가를 자처한 서창대는 선거캠프를 이끌며 4번이나 낙선한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로까지 끌어올린다. 

최종 영화 제목에서는 빠졌지만 '킹메이커'의 부제는 ‘선거판의 여우’였다. 선거판의 여우는 엄창록의 별명을 뜻한다. 김충식 작가의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엄창록은 세간의 지명도는 낮지만 이 땅의 선거사를 연구하는 데 반드시 거명되어야 할 인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선거의 귀재’ 혹은 ‘네거티브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엄창록의 기상천외한 선거전술은 '킹메이커'에서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극 중에선 서창대의 지휘 아래 야당 운동원이 여당 운동원 행세를 하면서 여당 후보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는 에피소드는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캉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캉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킹메이커'는 기존의 한국 정치 영화와 다른 스타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스타일리시하다. 상대적으로 친밀한 DJ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에 엄창록이라는 낯선 인물을 통해 궁금증을 자극한다.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하는 은유적인 도입부처럼 변성현 감독은 엄창대가 ‘달걀 도둑’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킹메이커' 도입부에 배치해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1960-70년대를 스크린에 세련되게 구현한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빈티지 렌즈를 이용한 촬영이나 8mm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들은 레트로와 클래식의 멋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부터 선거 사무실 정경, 전당대회장까지 세심하게 꾸려진 소품과 세트 등 볼거리를 안기는 미술의 공도 크다. 

'킹메이커'를 관통하는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를 대비한 연출도 눈에 띈다. 김운범은 빛, 엄창대를 김운범의 그림자로 설정해 인물의 성격과 두 인물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 준다. “빛이 세질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는 대사를 조명으로 대비되게 표현하는 식이어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킹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킹메이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한 작품에서 처음 함께 호흡을 맞춘 주연배우 설경구와 이선균은 기대와 예상을 넘나들면서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설경구는 DJ라는 실존 인물에게 눌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평정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안정감과 무게감을 겸비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영화 시작부터 전면에 나서는 이선균은 모사꾼과 전략가, 빛을 동경하는 그림자, 대의를 저버리는 킹메이커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영리하게 조율하며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유재명, 조우진, 박인환 등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알맞게 고루 빛난다. 

'킹메이커'는 대의와 정의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영화다. 서창대의 말처럼 대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가, 영화 속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승자의 단어’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지금 각자의 대의와 정의는 무엇인지 여러 물음을 던진다. 70년대 선거판을 흔들던 엄창록은 흑색선전, 지역 감정론을 만들어내며 현대 정치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영화에선 그에게 인간적인 이야기를 부여했지만 역사에선 베일에 싸인 그의 행적이 온전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빛과 그림자의 운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가 아니고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이라는 김운범의 대사를 곱씹어 보면 지금 현실에선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킹메이커가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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