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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새벽, 소름유발자 빌런이 관객에 보낸 '특송'

특송', 사진제공=NEW
특송', 사진제공=NEW

배우 송새벽이 또 한 건 했다. 영화 ‘특송’(감독 박대민, 제작 엠픽쳐스)에서 송새벽이 맡은 조경필은 무려 경찰과 깡패를 겸업하는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능력 있는 형사 반장이지만 실상 온갖 악랄한 짓은 다하고 있는 조직의 보스. ‘방자전’이나 ‘위험한 상견례’에서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쳤던 송새벽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고이 접자. ‘특송’을 보고 나면 독특한 빌런의 송새벽이 마음에 콱 박힐 테니까. 

‘특송’의 조경필은 경찰이지만 앞장서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당이라는 점, 그 상대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레옹’의 게리 올드만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게리 올드만은 게리 올드만이고, 송새벽은 송새벽. 송새벽이 연기한 투 잡 뛰는 조경필은 등장부터 존재감이 확실하다. 적당히 느릿한 말투로 “나는 예수고, 얘는 모세여. 갈라져!” 하며 쭉 모여 있던 한 덩치하는 남자들을 홍해 갈라지듯 물러서게 만드는 카리스마 있는 등장인데, 흔히 보이는 악역의 결과는 다르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묵직한 중저음에 군더더기 없는 행동으로 폼을 잡거나 아니면 눈과 얼굴 근육을 비롯 온몸에 힘을 팍 준 채 과도한 텐션으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거나. 송새벽이 연기한 조경필이 신선한 건 그 인물이 두 가지 타입 모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폼을 잡기엔 송새벽 특유의 다소 높고 가벼운 목소리 톤이 맞지 않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악역과도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다. 도리어 조경필은 ‘악역이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송새벽 특유의 느릿한 말투와 심드렁한 느낌을 베이스로 삼되 적재적소에서만 눈이 헤까닥 돌아가는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송', 사진제공=NEW
'특송', 사진제공=NEW

생각해 보면 송새벽은 출발부터 그 존재감이 돋보였던 배우다. ‘마더’(2009)에서 살인 용의자로 잡혀온 원빈에게 사과를 물고 있으라고 한 뒤 발차기로 위협하던 형사를 기억하는가? “너, 세팍타크로라고 아냐? 알지잉?” 하더니 이내 돌려차기를 한 뒤 “이게 바로 세팍타크로의 위력이여~” 하던 그 형사. 봉준호 감독이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다니다 발견한 송새벽은 그렇게 ‘세팍타크로 형사(실제 배역명)’가 되어 인상적으로 장편 영화 데뷔를 했다. 이듬해 만난 ‘방자전’의 변학도 역할은 두말할 것 없이 송새벽의 ‘인생캐’. “저는 인생 목표가 뚜려대요(뚜렷해요)”라며 어눌한 말투로 독특한 인생관을 설파하는 변태 기질의 변학도는 조연 송새벽을 주연만큼이나 돋보이게 해줬다. 미친 존재감으로 신스틸러가 된 송새벽에게 ‘넘버3’의 송강호를 보는 것 같다며 ‘제2의 송강호’란 수식어가 붙은 사실도 유명하다. 

특유의 목소리 톤도 톤이려니와 어눌하고도 심드렁한, 전반적으로 능청스러운 연기에 빼어났기에 송새벽은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로 거듭날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방자전’ 이후 그에게 쏟아진 러브콜도 대부분 코미디에 방점이 찍힌 영화였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위험한 상견례’ ‘아부의 왕’ 등을 거치며 조연에서 주연을 꿰찼다. 그러나 워낙 연기 톤이 독특해 자칫 고정된 이미지나 장르를 계속하다간 식상해지다 그렇고 그런 감초 조연으로 머물게 될 가능성이 컸다. 송새벽은 자신에게 부과된 코미디 이미지를 걷어내고 조금씩 장르를 바꾸어갔다. ‘도희야’(2014)에서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학대하는 짐승 같은 남자 박용하를, ‘7년의 밤’(2018)에선 특유의 말투를 최대한 걷어내고 진중하게 선배의 아들을 보살피는 잠수부 승환을 연기하며 송강호처럼 코믹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두루두루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해온 것. 비록 ‘도희야’나 ‘7년의 밤’이 흥행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아쉬움은 있었겠지만. 

'특송', 사진제공=NEW
'특송', 사진제공=NEW

이미지 변신을 꾀한답시고 조급하게 자신이 잘하는 것을 버리고 급선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송새벽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이미지와 장르를 도전하되, 자신이 잘하는 것에서 약간의 새로움을 불어넣으며 자신이 잘하는 것을 확장시켜 왔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기훈은 송새벽이 잘하는 연기가 확대 변주된 느낌으로, 변학도에 이은 두 번째 ‘인생캐’라 할 만하다. 오랜 시간 영화계를 전전해 왔던 한때 천재로 추앙받던 기훈은 한심스러운 삼형제 중 가장 성격이 괄괄한 인물인데, 순간적인 애드리브와 상황마다의 허세가 밉지 않은 ‘돌아이’ 캐릭터였다. “내가 막 사는 것 같아도 오늘 죽어도 쪽팔리지 않게 매일매일 비싼 팬티 입고 그렇게 비장하게 산다는 거야”라는 대사를 송새벽처럼 맛깔나게 소화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특송’의 조경필은 송새벽의 세 번째 ‘인생캐’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 송새벽 본연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양면적인 악당의 심리를 분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곁들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수갑을 채우는 징글징글한 느낌의 새로운 악역을 만들어냈으니까. ‘도희야’ 때도 구토해가며 폭력적인 장면을 찍을 만큼 악역 연기를 힘들어했다지만, 당분간 충무로는 송새벽의 악역에 매료돼 러브콜이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송새벽이 고정된 이미지로 소모될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변학도에서 박용하로, 박용하에서 박기훈으로, 박기훈에서 조경필이 된 것처럼 끊임없이 ‘인생캐’를 발굴해내는 게 그의 재능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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