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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조이음(칼럼니스트)
  • 입력 2021.12.30 09:57
  • 댓글 0

'한사람만' 아닌 여러 사람이 봐야 할 띵작 탄생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군가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다양하게 만났다. 익숙한 만큼 자칫하면 클리셰가 되겠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기대 이상의 재미가 된다. 지난달 20일 막을 올린 JTBC 월화드라마 ‘한 사람만’(문정민 극본, 오현종 연출)의 주인공 표인숙(안은진)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이왕 죽는 거, 나쁜 놈 한 사람만 데려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우발적이지만) 행동으로 옮긴다. 죽음과 살인, 가장 극적이고 비극적인 소재에 삶과 웃음까지 버무린, 뻔한 줄 알았지만 전혀 새로운 드라마가 나타났다.

‘한 사람만’ 속 표인숙의 삶은 퍽퍽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품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수영장에 빠졌다가 귓병을 얻었다. 당시 인숙은 친구가 내민 손을 잡으려다 그 손에 떠밀린 것. 호의라 생각했던 손은 그를 내치는 손이었고, 그때 생긴 귓병의 후유증으로 소리를 잃었다. 인숙이 기억에 남은 마지막 소리는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비웃음.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기대하고 잡으면 더 큰 상처를 받는다는 걸 가슴 깊이 새겼다.

마음을 닫은 채 어른이 된 인숙은 세신사로 밤낮없이 일하던 중 큰 어지러움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뇌종양이란다. 세상에 미련이 없기에 시한부 판정에도 덤덤했다. 연명치료는 생각도 없지만, 할머니에게만은 제 마지막을 알릴 수 없다고 생각한 인숙. 결국 해외여행으로 둘러대고 여성 전용 호스피스에 입소했다. ‘30세 이하 파격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빼앗았다.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인숙의 입소 과정에서 최악의 첫인상을 남긴 강세연(강예원) 성미도(박수영)와 룸메이트로 재회한다. 방에 흐르던 불편한 공기는 인숙의 이웃집 아이 하산아(서연우)로 인해 달라진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 하용근(백현진)이 또 찾아왔다는 소식에 인숙은 산아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 인숙을 보던 세연은 무심하게 첨언한다. “네가 데려가. 누군가를 죽여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선택하지 않겠어? 어차피 우린 죽는데, 한 사람만 데려가면 어때”. 죽음이 예정된 삶에 더 무서울 건 없기에 세 사람은 마음을 모아 산아를 구하러 나선다. 이들은 하용근의 손에서 산아를 구하지만, 결국 하용근은 죽고, 세 사람은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운명공동체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목격자 민우천(김경남). 사건 이후 갑작스럽게 호스피스에 자원봉사자로 모습을 드러내 세 사람을 놀래킨다. 심지어 인숙의 곁을 계속 맴돈다. 제 범행을 우천에게 뒤집어 씌울 생각도 해봤던 인숙은 이내 마음을 바꾸고, 자수하겠다고 나선다. 그런 인숙을 잡아 세우기 위해 우천은 급작스럽게 입을 맞춘다. 사실 사건 당일 첫눈에 반했다는 고백도 더한다. 우천에게 인숙은 어린 시절 죽을 위기에 놓였던 자신과 엄마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한 사람만’은 여느 드라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슬기로운’ 배우 캐스팅으로 새로운 감성을 그려간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발랄하고 씩씩한 면모의 산부인과 치프 레지던트 추민하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안은진은 표인숙 역으로 드라마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표정도 행동도 크지 않은 캐릭터이기에 표현이 쉽지 않을 텐데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구축된 연기력으로 표인숙의 내면 연기까지 척척 소화하는 그다. 안은진의 섬세한 연기로 탄생된 표인숙은 ‘한 사람만’의 서사를 탄탄하게 책임진다. 강세연 역의 강예원은 룸메이트의 연기 중심을 잡는다. 성미도 역의 박수영은 톡톡 튀는 매력으로 눈길을 끈다.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한사람만', 사진제공=JTBC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똘똘하고 믿음직한 준돌 역으로 안방에 얼굴도장을 찍은 배우 김경남은 전작 ‘오케이 광자매’ 속 한예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민우천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왔다. 2012년 연극 ‘사랑’으로 데뷔해 영화, 드라마에서 단역과 조연을 넘나들며 쌓은 그의 단단한 연기력은 이번 드라마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 짧은 시간 사이 전작의 색과 캐릭터는 싹 지워낸 그가 무겁고 어두운 민우천의 사연을, 그의 사랑을 시청자에게 충분히 이해시킨다.

이제 4회까지 방송된 ‘한 사람만’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주제부터 호스피스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아픔, 살인, 가정폭력 등등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주제들이 여럿 등장한다. 때문에 쉽고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작가가 적재적소에 녹인 웃음이 불편하지 않게 무게감을 덜어준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준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표현’이란 말이 있다. 당연한 듯 누리고 있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한 해의 끝과 시작을 함께할 드라마로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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