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고요의 바다ㅣK-신파의 성공적인 달나라 착륙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신작 '고요의 바다'(극본 박은교, 연출 최항용)는 한국 우주 SF물의 신기원이다. 1화 27분 30초에 등장하는 우주선만 보더라도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등장인물들이 우주선을 타고 당도한 연구기지(발해)의 모습은 더욱 놀랍다. 황무지에 가까운 달에서 홀로 생명의 온기를 품고 있는 듯한 발해기지는 진귀하게도 보인다. 허나 탐사팀이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처음 마주하는 것은, 얼굴에 고통을 한 가득 머금은 익사체다. 그리고 발해기지에서 처음 마주한 이 공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커진다.

'고요의 바다'는 미국 SF물에서 흔히 봐온 기술의 놀라움이나 우주의 광활함 위주보단, 인류애적 접근을 주로 통한다. 허나 기존 SF물의 전형도 모두 담는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반전이 되는 물에 얽힌 기발한 발상이나, 탐사대원 송지안(배두나)이 우연히 발견한 방에서 마주한 달의 풍경은 신비롭고 광활하다. 허나 한국식 신파가 조미료처럼 쓰여진 이 작품은, 가족애나 동료애를 비롯한 인류애적 '감정'을 가장 크게 운반해낸다. 그만큼 '고요의 바다'는 기술력에 의존한 이전 영화들과는 다르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SF 흥행작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은 광활한 우주의 위엄과 함께, 생존에 있어선 제한적인 폐쇄 공포를 모든 기술력에 집중시켜 전달했다. 고도화된 3D의 현실감과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을 주는 카메라 워크 등은 극도의 사실화를 통해 무거운 긴장감과 공포를 만들었다. 그렇게 위의 영화들이 기술을 활용한 SF물의 영역을 개척했다면, '고요의 바다'는 맷 데이먼 주연의 '마션'과 비슷하지만 보다 신파적 정서의 영역을 개척해 보인다. 극사실화와는 거리가 먼, 그럴듯한 가설로 창조해낸 판타지인 셈이다. '마션'에서 사고로 화성에 홀로 버려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기어코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간 기적처럼 말이다. 물론 '마션'은 치밀한 계산법에 근거해 마크의 생존을 추론해내는 식의 과학적 접근도 상당하다. 허나 고통에 몸부리치며 상처를 치료하고, 기를 쓰고 파편을 제거하는 마크의 악착같은 생존본능은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깝게 접근한다. 

'고요의 바다'는 위의 영화들보다 과학적 타당성에선 한참이나 동떨어진 판타지적 이야기를 내세운다. 달에서 홀로 5년을 생존한 복제인간 루나의 말도 안되는 존재만큼, 탐사대원들이 달에 당도해 걷는 걸음걸이는 중력이 작용하는 듯 편해보이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때와 달리 외신 반응이 미지근한 것도 이 때문이다. SF물에서 더욱 까다로운 판단 기준을 두기 때문. 허나 이 작품은 SF물의 원형지인 미국의 기준점으로 바라봐선 안된다. 그들이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기술력을 단 한 작품으로 따라잡길 바랐다면, 허무맹랑한 희망이다. '고요의 바다'가 신파에 더 집중했던 것도, 단계를 밞아가는 과정을 영리하게 깨우쳐서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가 표현하는 우주 공간의 독특함은 이야기의 끝무렵 발해기지에서 터져나온 물이 눈처럼 비춰지는 것 정도다. 오직 이 장면만이 무중력에 관한 표현으로 채워진다. 대신 이 작품은 한국 고유 정서의 정(情)이라는 무엇보다도 근본적 가치의 전제를 깔고 출발한다. 보안 팀장 공수혁(이무생)이 친동생인 엔지니어 공수찬(정순원)과 함께 탐사대원으로 합류해 겪는 애끓는 형제애와, 과거 발해기지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우주생물학자 송지안이 사고 현장에서 맞닥뜨린 언니의 고뇌와 아픔. 탐사대장 한윤재(공유)가 목숨을 희생하는 것도 지구에 남아있는 딸과, 동료, 그리고 기근에 시달리는 남은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SF물에서 기술력을 제외하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인간의 존귀 밖에 없다. 이 작품은 이기(利己)의 공포도 존재하지만, 결국 배려와 희생을 통한 은근한 휴머니즘을 담고있다. 

출연배우들은 네임벨류처럼 K-신파의 무게와 정도를 잘 잡아준다. 타이틀롤 배두나는 어떤 작품이든 뻔하지 않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들이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가치를 믿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의 연기관처럼 극중 지안도 이 희귀한 가치를 품고, 작품에 특별함을 채워넣는다. 공유 역시 본 적 없던 비릿한 얼굴과, 품넓은 아빠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며 극의 무게를 운반한다. 동생의 죽음에 애써 슬픔을 참아내는 이무생의 불안한 얼굴과, 커다란 비밀을 품고 있는 이준의 다단한 내면, 그리고 이 모든 등장인물을 품넓게 포용하는 김선영의 친근한 얼굴까지, 각자 주어진 설정 이상의 연기를 해낸다.

그리하여 '고요의 바다'가 증명한 한국형 우주 SF의 미래는 충분히 희망적이다. 일각에서 지루하다는 평가된 부분은, 범람한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메시지는 더욱 유의미하다. 자극의 단순한 역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미온하지만 휴머니티적으로 마음을 덥힌다. 등장인물의 형상은 내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에게로 대입하게 만든다. 창의성과 차별성은 그리 다른 시선에 있지 않다. '고요의 바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할 뿐, 시사점은 결국 사람에게 닿고 애틋하게 피워내는 정의 향유다. 그리고 달나라에 상륙한 한국식 온정이 '고요의 바다'의 창의성과 차별성을 완성한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