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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박현민(칼럼니스트)
  • 입력 2021.12.27 10:06
  • 수정 2021.12.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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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바다ㅣ 의미있는 도전, 첫술에 배부르기엔

첫 한국형 SF 드라마, 기술력은 합격, 스토리는 글세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극본 박은교, 연출 최항용)는 떠들썩하게 소문난 잔치였다. 시기적으로 'D.P', '오징어 게임', '지옥'까지 넷플릭스 시리즈가 연달아 크게 흥행을 일궈내며, 차기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상태에서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톱스타인 정우성이 제작에 참여하고 배두나와 공유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역시, 사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작품에 적잖은 독이 됐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를 그 배경으로 한다.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생존기를 다룬 8회로 구성된 시리즈다.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배두나), 탐사 대장 한윤재(공유)를 비롯한 개별 사연을 지닌 여러 인물들이 발해기지에 남아있는 중요 샘플 회수를 위해 5년 전 폐쇄된 달로 떠나는 것이 전반적인 스토리다. 사전 공개된 몇 개의 예고편은,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편은, 기대에 못 미쳤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부족했다. 전체 회차가 8회라는 점을 감안해도 3회까지의 스토리는 지나치게 느렸다. 지루한 구간이 속속 등장했고, 반복적으로 집중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여기를 버텨내 중후반부로 넘어가는 것은 확실한 고비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이것은 순차적으로 회차가 공개되는 형태의 플랫폼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방식이다. 자칫 초반부에 관심과 기대가 완전히 사그라져서 그 누구도 다음 회차를 기다리지 않게 되면 낭패니깐 말이다. 시리즈 8회 전체가 동시 공개되는 넷플릭스의 형태는 그나마 '고요의 바다' 시청에 자그마한 위안이 됐다. 여차하면 '구간 점프'를 시도할 수 있으니깐.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비주얼은 훌륭했다. 막대한 제작 비용으로 인해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던 SF 장르를 이렇게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큼 K-콘텐츠가 성장한 것 같아, 한국인으로서 괜한 자부심까지 샘솟을 정도다. 촬영 세트장 5개, 무려 2700평에 달하는 공간에 그려낸 광활하게 펼쳐진 달 표면, 어둠 속에 감추지 않고 밝고 또렷하게 그려낸 발해기지 내부 디테일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도 이제 이만큼 만든다!"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서. 

배두나와 공유를 비롯한 이준, 김선영, 이무생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딱히 흠잡을 데 없다. 익숙지 않은 두툼하고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생경한 우주 상황 속 연기를 캐릭터에 몰입해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 그렇지만 클리셰로 버무려진 '고요의 바다'의 시나리오는 이들의 연기에 별다른 힘을 보태주진 못했다.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는 그대로 작품 안에 갇혀서, 화면 밖 시청자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데 아무래도 실패한 분위기다.

자본이 일궈낸 스케일과 기술력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보았을 때, 스토리 자체에 힘이 없다. 해본 적 없는 장르에 도전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창의성과 차별성까지는 끌어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안타깝다. 기술의 진보가 영상의 퀄리티를 극도로 끌어올렸으나, 작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 자체는 해당 퀄리티와 함께 올라오지 못했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단편 영화를 바탕으로 8부작 시리즈로 만든 작품이다. 짧은 스토리를 필요에 의해 러닝타임을 기다랗게 늘렸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긴 시간을 버텨낼 만큼 유효한 장치들은 마련되지 못했다. 정우성과 배두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극찬한 원작의 매력이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무사히 안착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의 바다'가 유의미한 작품이라는 데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위상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K-콘텐츠가 내디딘 SF 장르로 안정적 지반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고, 콘텐츠 퀄리티 상향에 주요한 디딤돌이 됐다. 기술적인 요소가 안정을 찾게 되면,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매력 넘치는 한국형 스토리가 듬직한 엔진을 달고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될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지만 맛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고요의 바다' 잔치로 말미암아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흡족할 정도로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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