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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윤준호(칼럼니스트)
  • 입력 2021.12.15 10:51
  • 댓글 0

K-배우들, 오디션과 영어 불필요한 날 올까?

'오징어게임'의 잇단 후보 지명이 내포하는 의미

이정재,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이정재,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배우 이정재·오영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TV쇼 시상식인 골든글로브 후보로 올랐다. 13일(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내년 1월 열리는 제79회 골든글로브에서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작품상’ 외에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남우주연상’(이정재), ‘텔레비전 부문 남우조연상’(오영수) 후보작으로 지명됐다.

‘오징어 게임’은 이미 다른 해외 시상식에서 수차례 수상 낭보를 전했다. 하지만 이번 후보 지명은 의미가 남다르다. 비(非) 영어권인 아시아의 남자 배우가, 몸을 쓰는 ‘액션 배우’가 아닌 정극 배우로서 주요 부문의 후보에 오른 이례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영화로 비견하자면,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에 버금가는 성과다. 

#왜 남다른가?

할리우드에 최초 입성한 한국 배우는 박중훈이다. 그는 지난 1997년작인 ‘아메리칸 드래곤’으로 할리우드를 노크했고, 2002년에는 ‘찰리의 진실’에서 배우 마크 월버그와 짝을 이뤘다. 이후 장동건과 전지현이 각각 ‘워리어스 웨이’와 ‘블러드’ 등 합작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 진출 소식을 전했다.

‘합작 영화’라는 수식어를 떼고 할리우드의 유명 프로듀서나 감독과 손을 잡거나, 지명도 높은 시리즈에 참여하며 한국 배우의 위상을 높인 배우는 비(정지훈)와 이병헌이다. 비는 ‘매트릭스’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라나·릴리 워쇼스키 감독이 제작한 ‘닌자 어쌔신’ 외에 ‘스피드 레이서’ 등에 참여했다. 이병헌은 ‘지 아이 조2’를 비롯해 브루스 윌리스가 참여한 ‘레드:더 레전드’,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매그니피센트7’ 등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소화했다. 

분명 의미 있는 성과였지만, ‘아시아 남자 배우=액션 스타’라는 이미지를 지울 순 없었다. 비와 이병헌 모두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며 깎아놓은 듯한 상반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영어 대사를 주고 받으며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여자배우로는 김윤진이 2000년대 중반 미드 '로스트'로 주목받은 후 2013년부터 5 방송된 '미스트리스'에서 주연으로 등극하며 한국 여자배우의 위상을 제대로 높였다.  이후 배두나가 2012년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은 올해 영화 '미나리'로 올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렸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메이저 상업 영화는 아니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의 쾌거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 속 이정재, 오영수의 연기는 몸을 쓰는 고난도 액션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 연기를 하지도 않았다. 자막을 통해 그들의 연기를 접한 서양인들에게도 동양 남자 배우들의 연기력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건 상징적인 장면이다.  

만약 이정재나 오영수가 내년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까지 한다면 한국 남자 배우들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유수의 영화상을 섭렵했지만, 정작 주연 배우들이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동양 배우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라면서 "이정재나 오영수가 골든글로브에서 트로피를 거머쥔다면 향후 더 많은 해외 작품에서 한국 배우들에게 러브콜을 보낼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 배우의 위상,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최근 배우 마동석은 디즈니를 대표하는 시리즈인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 참여했다. 물론 그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그동안 한국을 거점으로 한국어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한국 배우의 미국 진출’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이터널스’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 나눈 화상 인터뷰에서 마동석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6년 전부터 영화 ‘부산행’이 외국에 많이 알려진 후 계속 할리우드에서 여러 제안이 왔었다"면서 "‘이터널스’의 경우 오디션은 없었고 자오 감독이 이미 내 영화 여러 편을 보고 분석이 끝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오디션은 없었다’다. 한국에서는 유명해도, 해외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오디션에 참여했다는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OTT를 통해 한국 콘텐츠와 배우들을 접한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오디션 없이도 작품에 참여시킬 만큼 한국 배우들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박서준, 사진제공=어썸이엔티
박서준, 사진제공=어썸이엔티

마동석의 배턴을 이어받아, 박서준 역시 마블 시리즈인 ‘더 마블스’에 참여하고 있다. 정확한 배역 및 극 중 비중들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내로라하는 한류스타 중 한 명인 박서준이 또 다른 마블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은, 한국 배우들이 굳이 먼 타향으로 건너가 미국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뿐, 한국 제작진과 출연진이 의기투합한 ‘메이드 인 코리아’ 콘텐츠다. 콘텐츠의 퀄리티만 유지한다면, 기존 한국의 제작 시스템 안에서 해오던 일을 해도 글로벌 진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한국 배우들이 억지로 영어를 배워 서툰 연기를 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비 영어권 시청자들이 자막을 통해 영어 대사 콘텐츠를 즐겼듯, 이제는 영어권 시청자들도 기꺼이 자막을 읽으며 한국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면서 "플랫폼의 발달에 따른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국가, 인종, 문화,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콘텐츠의 퀄리티로만 승부하는 시장을 가능케 했고, 그 안에서 한국 배우들은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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