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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차' 자우림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비바람 부는 광야에 한참을 망연히 서 / 문득 눈을 떠보니 나 홀로 남아있네 /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 함께 걷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 내 앞을 질러갔거나 내 뒤에 오고 있네 / 혹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나" - 자우림 5집 'All You Need Is Love' 수록곡 '曠野(광야)' 중

 

밴드 자우림이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몰래 걱정하며 달려온 지 올해로 24년이 됐다. 며칠만 있으면 25년 차에 접어든다. 물론 부지런한 이들은 데뷔 25주년을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자우림은 얼마 전 11집을 발표했고 9집부터 다시 고개를 든 앨범 단위의 작품성을 이번 음반에도 드리웠다. 무한을 향한 불신 또는 유한함에 대한 자각을 다룬 'FADE AWAY'를 시작으로 이선규의 사무치는 기타 솔로가 사랑의 허무를 폭로하는 '영원한 사랑'이 이어지며 앨범은 자우림의 건재를 들려준다. 그 외 유희열이 '강추'했고 자우림의 주요 팬층인 20대 중후반 여성들이 좋아해 타이틀 곡이 된 'STAY WITH ME', 옥구슬 같은 건반 루프가 그랜대디(Grandaddy)의 'Crystal Lake'를 떠올리게 하는 'DADADA', 멜로디가 좋아 따로 반응이 예상되는 '잎새에 적은 노래'와 '디어마이올드프렌드', 베이시스트 김진만의 결혼 축가로 김윤아가 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등 새 앨범은 20년이 넘도록 그들 음악에 공기처럼 떠돌던 냉소(김윤아는 영원한 사랑 뒤에 '따위'를 붙여 부른다), 고독, 열병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강산이 두 번 변한 시간을 제자리걸음 시켰다.

25년. 한 사람 일생에서도 긴 시간일 이 태산 같은 세월을 이들은 밴드라는 이름으로 함께 헤쳐 나왔다. 아마 멤버를 떠나 가족이나 다름없을 것이고 어떤 면에선 가족보다 가까운 무엇이 그들 사이엔 있을지 모른다. 나는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이처럼 오랜 시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변치 않은 라인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위한 예술가로서 긴장이 양질의 결과물로 수렴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나와 내 주변의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밴드는 당연히 멤버 변동이 없을 때 그 '안정'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우림의 무엇이 자우림을 버티게 한 것일까. 이 글에선 그걸 좀 따져보려 한다.

자우림 김윤아,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자우림 김윤아,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김윤아라는 존재

나는 자우림이 어떻게 상업적으로 먹혔는지 한 번씩 의아할 때가 있다. 아무리 들어도 이들 음악은 절대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들을 음악은 아니기 때문이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긍정과 힐링이 유행처럼 번진 시대에 이런 음산하고 습하고 때론 잔인한 음악이 대중적일 수 없으리란 건 일단 표면적으로도 상식이다. 그럼에도 자우림은 성공했고 그들은 얼마 전에도 새 앨범을 냈다. 왜일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해보인다. 그건 바로 김윤아가 밴드의 생명줄 같은 히트곡들을 꾸준히 써온 덕분이다. '일탈', '미안해 널 미워해', '매직 카펫 라이드', '팬이야', '하하하쏭', '샤이닝', '반딧불', 'IDOL', '스물다섯 스물하나', '있지'까지. 11집에서 어떤 곡이 히트할지는 아직 잘 모르니 10집까지만 훑어보면 대략 저 정도다. 여기서 '미안해 널 미워해'만 기타리스트 이선규와 함께 썼고 나머지는 모두 김윤아가 작사, 작곡했다.  

그러니까 퀸의 쌍둥이 명반 'The Night At The Opera'와 'A Day At The Races'를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음악 안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시너드 오코너를 흠모하는 김윤아는 단순히 팔세토/바리톤 성향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자우림의 싱어 이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200곡 이상을 등록한 송라이터이고, 따라서 부조리를 걷어내기 위해 상상과 현실을 평행선에 두는 자우림의 메시지는 곧 김윤아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여성 보컬 밴드들이 유행하던 시절, 이런 김윤아와 견줄 만한 사람은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정도였다. 그를 '자우림'씨로 알고 '우림 언니'라 불렀던 팬들과의 에피소드는 그래서였던 것이며, 8집 발매 후 김윤아가 쓰러졌을 때 이선규가 자우림의 존폐를 걱정한 이유도 다 밴드에서 김윤아가 갖는 지분, 존재감 때문이었다. 자우림은 분명 김윤아만의 밴드는 아니지만 김윤아가 없는 자우림은 있을 수 없다.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개성 있는 음악

김윤아의 말을 빌리면 자우림 1, 2, 3집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만든 "희한한" 앨범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4집은 자우림이 사운드에 집착하기 시작한 작품이었고, 이후 8집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즉흥적 에너지를 담는데 집중한다. 9집은 그런 자우림의 사운드가 완성된 분기점, 10집은 이 모든 걸 어우른 "자우림 그 자체"라고 그는 자평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자우림 그 자체"는 빛과 그늘,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음악이다. 즉 음악의 '지킬 앤 하이드'다. 먼 옛날 '김가만세(金家萬歲)'나 이번 앨범의 'PÉON PÉON'처럼 뮤지컬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스토리텔링과 8집의 'RED RAIN' 같은 곡에서 불거져 나오는 광기도 중요하지만 나는 저러한 양면의 조화(또는 비틈)가 자우림 음악의 본질인 동시에 이들 색깔을 살린다고 보는 쪽이다. 가령 자우림과 김윤아는 '하하하쏭'과 '팬이야'처럼 밝고 긍정적이다가도 '미쓰코리아'나 '실리콘벨리' 등으로 냉소할 땐 제대로 이빨을 드러낸다. 또한 악몽 같은 무드를 만들어 'Good Morning'을 들려주며, 듀오 일기예보와 제목만 같지 느낌은 전혀 다른 'Beautiful Girl'을 태연하게 노래한다. 물론 '낙화(落花)'의 우울한 정서나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류의 파격적인 제목은 어떤 면에선 자우림의 정체성에 가깝다.

저러한 밴드의 불길한 매력은 리메이크 앨범 '청춘예찬(靑春禮讚)'에서 밝힌 해외 팀들과 뮤지션들(너바나와 펄 잼, 데이비드 보위와 필 콜린스, 마돈나와 지미 헨드릭스 등)에 빚진 부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해왔고 그때그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또 만들어왔을 뿐이다. 남의 취향을 궁리하지 않았다는 2집도, 창작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될 대로 돼라"는 심정으로 썼다는 '매직 카펫 라이드' 같은 곡도 모두 마찬가지다. 희망과 절망, 냉소와 광기가 함께 하는 자우림의 개성 만점 음악을 나는 그래서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상업적인 음악'이라 부르고 싶다.

신뢰와 의리

밴드의 생명은 신뢰와 의리다. 부부들이 흔히 '성격 차이'로 헤어지듯 '음악적 견해차'로 갈라서는 밴드도 물론 있지만 팀의 와해는 보통 신뢰가 꺾이거나 의리가 틀어졌을 때 온다. 예컨대 영국 밴드 오아시스처럼 드러머가 드럼을 너무 못 쳐 일방적으로 해고했을 때가 바로 신뢰가 증발한 경우이고, 메탈리카처럼 리더가 멤버의 다른 활동을 통제해 그 멤버가 탈퇴한 경우가 바로 의리가 실종된 경우다. 밴드 역시 결국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사람과 사람이 더 어울리지 못하면 그 팀은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자우림은 그런 면에서 행운이다. 아마 멤버들이 무작정, 억지로 잘 지내려고만 했다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각자의 타고난 성격 덕분이다. 아니, 성격보단 인격에 가깝겠다. 자우림 멤버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키는 걸 중요시 하고 서로를 존중, 존경하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래서 김윤아는 지금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서로가 서로를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당연히 누구 한 명이 혼자만 잘 되겠다고 팀을 나가려 했거나, 돈과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했을 경우에도 자우림의 생명은 거기까지였을 거다. 그러나 자우림은 그러지 않았다. 이들 사이에는 20년 넘게 지켜온 신뢰와 의리, 그리고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자우림,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의 공감

자우림은 주로 뉴스에서 곡 소재를 찾는다. 그들의 주제는 언제나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우림의 세상으로 끌어들여 그걸 해체하고 해석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우림 노래의 주인공들은 성별도 나이도 특정 짓지 않은,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어느 한 청년'에 머문다. 멤버 모두가 불혹의 언저리에 있던 때에도 '스물다섯 스물하나' 같은 곡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이선규는 그런 자신들의 노래를 "20년이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라 정의했다.

사실 자우림은 이번 11집을 지난해에 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암울한 팬데믹 시국에 자신들의 어두운 음악을 내놓는 건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겠다는 판단에 결국 1년을 더 기다렸다. 그래도 그냥 넘기기엔 아쉬웠는지 이들은 11집의 분위기와 다른 밝고 따뜻한 노래들을 담은 디지털 미니 앨범 '홀라!(HOLA!)'를 발표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들 음악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우림을 데뷔 때부터 봐왔고 꾸준히 응원했다. 그들은 어쨌거나 한국의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를 정복했을 때 데뷔해 4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세계를 정복 중인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남들이 '록의 시대는 갔다' '밴드 음악은 더는 안 된다'는 볼멘소리들을 할 때 그들은 자신들만의 록 음악을 만들었고, 만든 것에 만족했으며, 다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작업실로 들어갔다. 인디 록이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할 때도, 힙합이 대세 장르가 됐을 때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안주하지 않았다. 앞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어쩌면 이것(근면과 인내, 그리고 확신)이야말로 자우림이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었을지 모른다. 

끝으로 11집 수록곡 '디어마이올드프렌드'의 가사엔 이런 게 있다.

"네가 있어 줬기에 나는 내가 된 거야 (...) 가장 외로운 날에도 내가 여기 있을게"

이것은 마치 25년을 무사히 꾸려온 자우림이 오랜 기간 자신들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들린다. 그리고 나는 저 말처럼 이들이 유투(U2)나 롤링 스톤스 마냥 밴드의 지속성에서나 음악성에서나 한국 록 밴드의 모범 사례로 역사에 남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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