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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조성경(칼럼니스트)
  • 입력 2021.11.30 13:48
  • 수정 2021.11.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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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헤중' 송혜교, 우연도 설득력 있게 만드는 멜로마술사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거듭된 우연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혜교여서 가능해진다. 배우 송혜교가 내놓은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극본 제인, 연출 이길복, 크리에이터 글Line&강은경,이하 지헤중)는 보는 내내 이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게 한다.

‘남자친구’ 이후 2년여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송혜교는 변함없는 미모로 화면을 압도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국내 굴지의 패션회사 디자이너로 실력을 뽐내는 하영은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캐릭터를 완벽히 이입시켰다. 무엇보다 숨을 멎게 하는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당당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일과 사랑을 오가는 모습이 팬들을 환호하게 한다.

사실 ‘지헤중’은 송혜교가 아니었더라면 아쉬움이 적지 않을 드라마다. 화려하면서도 냉정한 패션업계를 배경으로 하는 ‘지헤중’이 다루는 업계의 에피소드들 하며 휘몰아치듯 현장을 보여주는 연출 등은 과거 패션을 소재로 한 적잖은 드라마들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오던 것들이다.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안방극장에 OTT시대가 열리면서 신선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 최근의 트렌드에서 보면 너무 옛스러운 스타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드라마들과 성적이 비교될 때도 진부함을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그 진부함의 절정이자 시청자들을 정말로 고민에 빠뜨리게 한 것은 따로 있다. 남자주인공 윤재국(장기용)이 영은과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며 운명적 인연임을 강조하는 기가 막힌 설정이다.

원나이트 스탠드 상대를 친구 대신 나간 맞선 자리에서 다시 만난 것은 애교였다. 남다른 끌림을 부정할 수 없던 찰나 재국이 10년 전 ‘잠수이별’로 헤어진 전 남친 윤수완(신동욱 분)의 동생이고 심지어 수완은 10년 전 자신을 만나러 오다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 한순간에 밝혀지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이라니! 보수적인 정서의 시청자라면 하영은과 윤재국의 사랑을 응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듯 최근의 ‘지헤중’은 두 사람의 인연이 이미 10년 전 시작됐다고 곱씹고 있다. 재국이 10년 전 수완보다 먼저 영은을 알았다고, 영은이 파리에서 샀던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작품이 재국의 것이었다고, 영은은 그 사진에서 위로를 받고 영감을 얻어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재국 역시 누군가(영은이) 자신의 사진을 사준 것을 격려로 여기며 사진작가로 대성할 수 있었다며 두 사람의 남다른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여기에 영은의 아버지가 사기꾼에게 당하는 현장에서 재국이 목격자로 나서며 은인이 되는 우연까지. 아무리 레트로 스타일 멜로물의 클리셰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헤중’을 지켜보게 되는 이유는 송혜교가 채워주는 깊이와 격조 때문이다. 송혜교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드라마의 흠결들을 다 끌어안고도 남는다. 드라마에 부족한 참신함을 송혜교의 새로운 패션 아이템들을 살펴보는 맛으로 상쇄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사실이다. 

‘지헤중’이 보여주고 있는 남다른 클래스는 오롯이 송혜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는 영은이 냉혹한 업계에서 당당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마치 전장에 나선 전사와 같은 비장함으로 그려내곤 하는데 이때도 송혜교는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이라는 수식어로만은 부족한, 단호하면서도 우아한, 격이 다른 애티튜드를 보여주며 ‘지헤중’의 품격까지 높여주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는 영은의 절친인 전미숙(박효주분)이 췌장암 선고를 받으며 망연자실한 가운데 그의 남편 곽수호(윤나무분)는 회사 후배 서민경(기은세분)과 바람이 난 이야기가 펼쳐졌다. ‘지헤중’이 미숙을 통해 죽음 앞에 선명해지는 인생의 교훈을 담아내고,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영은과 재국의 사랑에 당위성을 더해주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친구를 잃게 함으로써 한순간에 꺼질지 모르는 사랑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사진제공=삼화네트웍스, UAA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송혜교의 로맨스물이라는 자체로 드라마를 보게 하는 힘이 있다.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 또는 끝이 보이는 뻔한 이야기라고 한들 ‘지헤중’의 개연성은 결국 송혜교인 것이다. 

그동안 ‘멜로퀸’이라는 수식어에 손색이 없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해온 송혜교이기에 그에 대한 팬들의 믿음도 두텁다. 그가 히트시킨 수많은 시청률 40%대 로맨스물들 사이에서 성적은 다소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시청자들은 인생작으로 꼽는 명작들도 즐비하다. 송혜교 역시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나섰다.

더욱이 총 16부작 중 이제 6회를 방영하며 반환점도 채 돌지 않은 ‘지헤중’은 제목처럼 ‘이별 액추얼리’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송혜교는 아직 보여줄 게 많을 것이다.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 사랑, 혹은 진부하다고 폄하되는 지금 이 사랑에 대해 송혜교라고 고민이 없었겠는가. 그 고민 끝에 내놓은 사랑과 이별일 것이라 행여 당장은 수많은 비판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헤중’을 끝까지 지켜볼 이유가 생긴다. ‘멜로퀸’ 송혜교가 왜 이별을 택했을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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