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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 입력 2021.11.29 10:24
  • 수정 2021.11.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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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진, SM의 만능 히트메이커

이수만의 영원한 오른팔! 에스파와 NCT의 삼촌

유영진,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유영진,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SM')의 총괄PD 이수만은 2016년 1월 27일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 쇼에서 한류의 3단계를 이끌 핵심발전 기술력을 'NCT'라 소개했다. 이는 'New Culture Technology'의 줄임말로, 이수만은 내친 김에 같은 날 이 기술을 적용할 보이그룹 NCT까지 대중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 단, 보이그룹의 NCT에서 'N'은 'New'가 아닌 'Neo'로 회사 비전과 뉘앙스에서 차이를 주었다.

국적(9개국)도 인원(23인조)도 최고 수치를 자랑하는 NCT는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활동하는 에스파(aespa)와 함께 2021년 11월 말 현재 SM이 고안해낸 아이돌 진화의 기착지다. 자유로운 멤버 영입 및 변동,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유닛 운영이 특징인 NCT는 활동 지역에도 한계가 없어 이미 서울 경도를 팀명으로 쓴 NCT 127을 비롯해 NCT DREAM, NCT U, 웨이션브이(WayV) 등으로 문어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SM 아이돌 그룹의 종착지가 아닌 기착지인 이유는 미국의 4대 메이저 영화 제작사이자 '서바이벌' '더 보이스' '샤크 탱크' 같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도 만든 MGM과 SM이 합작한 또 하나의 NCT 프로젝트 '케이팝, 할리우드로 가다'가 곧 전 세계로 방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SM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뽑은 다국적 멤버들로 'NCT 할리우드(Hollywood)'라는 새로운 팀을 만들어 미국 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AI, 바이오, 나노테크라는 미래 기술에 강박에 가까운 관심을 보여온 이수만의 시공을 넘나드는 아이디어는 이처럼 끝이 없어 보인다. 멤버 수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유닛 활동의 기준도 아직은 불명확한 프로젝트라는 일각의 지적에도 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벤치마킹한 에이치오티(H.O.T) 때부터 해온 시스템 구축과 콘텐츠 수출, 타국 아티스트를 발굴해 자국 멤버와 함께 데뷔시키는 이수만식 '케이팝 현지화' 전략은 NCT와 에스파를 앞세워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의 옆엔 오랜 지원군인 유영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지금은 SM을 대표하는 작사/작곡/편곡가 겸 프로듀서, 전속 이사지만 사실 유영진의 시작은 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0년대 후반 MBC 무용단에 들어간 그는 미애(랩 댄스 듀오 '철이와 미애'의 그 미애다)를 만나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를 드나들게 된다. 유영진은 거기서 강원래, 구준엽과 친해지는데 뒤에 '클론'으로 활동하는 두 사람과 인연이 따로 중요한 이유는 이들과 함께 유영진이 SM의 첫 기획 아이돌인 현진영의 백댄서 '와와' 1기 선발 디스코 경연 대회에 나갔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서태지와 함께 90년대를 풍미할 '아이들'이 될 이주노, 양현석도 참가한 이 대회에서 그러나 유영진은 아쉽게 탈락하고 만다.(우승은 강원래, 구준엽에게 갔다.) 아직 뮤지션으로서 준비가 덜 된 유영진은 댄서로서 SM기획이라는 존재를 안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와와' 선발 과정에서 쓴맛을 본 유영진은 곧 입대를 했다. 춤에 일가견이 있던 덕에 그는 군에 가서도 예술단 무용 파트에서 활동했는데, 오티스 레딩의 'These Arms Of Mine'을 좋아한 유영진은 군대에서 시간을 십분 활용해 이후 자신의 미래가 음악 창작과 결부될 수 있도록 피아노와 기타, 작곡 공부까지 독학으로 해나갔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제대 즈음엔 100여 개에 이르는 창작곡을 손에 쥔 유영진은 제대 후 강원래와 구준엽을 따라 놀러 간 SM 사무실에서 이수만과 다시 만난다. 이때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하던 이수만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갖게 된 유영진은 '이런 사람과 음악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사무실 문을 나선다. 그리고 얼마 뒤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자신의 음악 실력을 펼쳐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던 1993년 어느 날, 'TV저널'이라는 매체에 SM기획이 올린 가수 지망생 구인 기사를 본 유영진은 이전 이수만과 만남을 떠올렸다. 이건 틀림없는 인연이라고 생각한 그는 녹음해둔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들고 SM 사무실로 찾아가 직원에게 건넸다. 음악을 전달받아 들어본 이수만은 유영진이 블랙뮤직만큼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고, 그에게 다른 곡들이 없는지 하루 열 곡 씩을 몇 차례 더 요구했다. 누가 봐도 무리한 그 요구들에 기꺼이 응한 유영진의 열정과 성실함에 이수만의 마음은 움직였다. 유영진은 그 일이 있은 열흘 뒤 SM과 전속 계약을 맺는다. 물론 지금까지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을 감안해보면 당시 계약은 전속을 넘은 사실상 종신 계약이었던 셈이다.

SM에 합류하고 7개월이 지나 유영진은 자신의 데뷔작을 내놓는다. 이 음반의 프로듀싱은 당시 SM 수석 프로듀서였던 홍종화의 몫이었다. 보이즈 투 멘을 표방한 '그대의 향기'가 큰 인기를 얻은 해당 앨범은 이후 김범수, 휘성 같은 알앤비 계열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SM의 초기 간판스타였던 현진영이 대마초와 필로폰 사건을 잇따라 터뜨리며 회사는 수렁으로 빠지고 마는데, 이 여파로 당시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은 서태지의 매니저로 이직했고 김광진과 이현도 같은 아티스트들도 결국 소속사에서 발을 뺐다. 흥미로운 건 SM의 위기가 유영진에겐 기회였다는 점이다. 바로 자신의 데뷔작을 프로듀싱한 홍종화 역시 이 시기 SM을 떠났던 것인데, 기회가 올 것에 대비해 늘 준비해왔던 유영진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메웠다. 이후 지금 기준으로 대한민국 아이돌 1세대인 H.O.T와  S.E.S를 시작으로 영입 당시 13세였던 보아, 보아와 함께 일본 시장을 뒤흔든 동방신기 등 SM의 기반이 되어준 아이돌들의 걸음마 때부터 유영진은 창작자 겸 프로듀서로서 깊이 관여했다.

NCT,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NCT,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여기서 놀라운 건 데뷔 29년 차를 바라보고 프로듀서로는 25년 차를 찍은 그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레드 벨벳을 지나 4세대 아이돌 그룹인 NCT, 에스파까지 자신의 음악 자장 아래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단순히 세계 음악 트렌드에 관심만 가져서 이룰 수 없는, 소속사의 협업(송 캠프) 체제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장비의 기술적 응용력까지 겸비해야만 이를 수 있는 경지라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장비를 쓰고 있다는 프로듀서로서 유영진의 명성은 그래서 허명이 아닌 걸로 보인다. 그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장비를 대하는 것이다. 언젠가 뉴 잭 스윙의 대명사인 테디 라일리가 자신이 작/편곡한 소녀시대의 'The Boys'의 믹싱을 두고 "사운드가 충격이다. (믹싱 한) 그가 내 노래들을 전부 믹스해줬으면 좋겠다. 정말 끝내준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곡을 믹싱 한 사람이 바로 유영진이었다.

지난 7월 21일. 빌보드는 '위대한 21세기 프로듀서 50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와 작업한 레드원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리아나 그란데, 위켄드가 선택한 맥스 마틴까지 내로라하는 새천년의 공룡급 프로듀서들을 꼼꼼히 다룬 이 리스트엔 한국 프로듀서 두 사람도 포함됐는데 한 명은 YG엔터테인먼트의 테디(25위), 다른 한 명은 이 글의 주인공인 유영진(39위)이다.

슈퍼주니어와 신화, 엑소를 프로듀서 유영진의 이력을 빛낸 대표 아티스트들로 꼽은 빌보드는 그의 "요란한 키(Keys)와 끈질긴 댄스 비트가 20년 넘게 케이팝 가수들을 스타덤에 올려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하며 슈퍼주니어의 2009년 컴백 싱글 'Sorry, Sorry'의 폭발적인 신스 사운드에 따로 주목했다. 이처럼 빌보드의 이번 선정은 미국 '버라이어티 500'에 4년 연속 뽑힌 이수만이 주도하는 SM의 새 문화 기술(NCT)의 중심이 유영진이어야 할 이유에 무시 못할 무게를 실어주었다. H.O.T에서 에스파까지, 올해로 지천명을 맞은 유영진은 지금도 자타공인 SM의 간판 프로듀서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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