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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 입력 2021.11.17 10:04
  • 수정 2021.11.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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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힙'의 트렌드세터, 창모의 새로운 출발

사진제공=앰비션뮤직
사진제공=앰비션뮤직

2년 전 올라온 유튜브 딩고 프리스타일(DF) 채널에서 창모의 '킬링버스 라이브'를 다시 봤다. 그는 'Prime Time Remix'를 끝낸 뒤 미소를 띤 채 "아 이거 한 번에 끝내기 싫다, X라 아쉽네"라며 여유를 부렸다. 그 순간 창모는 정말 음악을, 노래를, 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의 실수조차 그 안의 과정으로 보이게 할 만큼 그에겐 거칠 것 없는 자신감과 탄탄한 실력이 있었다. 창모 나이 25살 때 모습이다. 

창모 하면 떠오르는 것 세 가지 돈, 덕소, 그리고 오토튠.

먼저 돈. 돈과 돈을 버는 행위는 한때 창모의 모든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돈 벌 시간'을 시리즈로 만들어 '돈 번 순간'을 기록하고, '내꺼'라며 '돈 벌자!'를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며 "재정적 여유가 창작의 자유를 만들어준다"는 현실의 진리를 그 책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창모에게 돈은 그래서 중요했다. 아티스트의 자유는 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가까이 하려면서도 돈이 자신을 삼킬 순 없도록 그것과 거리를 두었다. 스스로를 뮤지션, 예술가로 생각하는 창모는 이제 가장 큰 가치를 돈이 아닌 작품의 질에 두고 산다. 'Selfmade Orange'와 함께 미니앨범 '닿는 순간'을 뒤흔들었던 'Holy God'의 가사 일부("Underground Rockstar")를 타이틀로 쓴 이번 신작에서 모종의 자아 성찰, 자기 쇄신이 느껴지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두 번째, 덕소. 덕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의 줄임말이다. 덕소는 학창 시절 창모가 성장한 곳이고 그래서 창모는 덕소를 틈만 나면 가사에 싣는다. 그가 음악으로 지은 자기 마을('MOTOWN')의 실사판이 바로 덕소인 셈이다. 흔히 창모를 래퍼 겸 프로듀서, 피아니스트라고 부른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랩과 비트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5살 때부터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하루 3~4시간씩 연습했다. 좋아하는 것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창모는 피아노로 미국 버클리 음대 문을 두 차례 두드려 두 번 모두 합격했지만 학비가 부담돼 결국 진로를 접어야 했다. 가령 이번 앨범에서 'Hotel Room'의 인트로는 '피아노 치는 래퍼' 창모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창모를 잉태했던 곳이 바로 덕소였다.

 

사진출처=스타뉴스DB
사진출처=스타뉴스DB

그리고 오토튠. 알려진 대로 래퍼인 창모는 노래도 즐긴다. 거대한 스트링 편곡과 생(生) 베이스 연주를 축으로 창모의 가창이 시전 되는 '모래시계'가 앨범 머리에 배치된 건 때문에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창모 스스로는 평소 노래를 못하는 편이라며 은근히 위축되곤 했다. 그런 위축된 창모를 구해준 것이 바로 오토튠이었다. 2008년 무렵 세계적으로 유행한 그 기술로 창모는 자기 노래의 모자랐던 부분을 메웠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오토튠은 곳곳에서 응용되는데 파사딕과 365LIT이 피처링한 'Rockstar Lifestyle', 듀오 Y2K92의 지빈이 함께 한 'Chronic Love', 창모 홀로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을 다 해낸 'Hyperstar'가 대표적이다.

자타공인 창모의 롤모델은 칸예 웨스트다. 구체적으론 칸예의 2010년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다음 앨범 'Yeezus'(2013)다. 창모는 스스로를 "칸예 대학의 칸예 과" 전공이라며 칸예 연구원을 자처, 그에게서 많은 것을 훔쳐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는 '칸예와 닮았다'는 평가를 칭찬으로 여기고 '칸예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의견을 영광으로 삼는다. 물론 영감의 7할이 칸예인 건 사실이지만 창모가 칸예에게만 집착하는 건 아니다. 그의 랩은 "악보를 그릴 때 무조건 지켜야 하는 오선처럼 무조건 지켜야 하는 존재"인 투팍의 그늘 아래 있고, 들국화와 산울림은 창모에게 한국 대중음악도 챙겨 들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들이다.

사진제공=Mnet
사진제공=Mnet

또한 창모는 회사원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스튜디오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운동과 서류 확인을 병행하는 퍼렐 윌리엄스에게 일상의 루틴을 배웠으며, 신보 수록곡 'Vivienne'에 샘플링 소스('Fan')를 준 에픽하이를 통해 "랩 뒤에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마찬가지로 주석과 다이내믹 듀오, 일리네어 레코즈가 창모에게 큰 영향을 준 건 익히 알려진 사실들. 이렇게 창모의 음악 DNA를 추적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밴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창모는 당시 밴드에서 옛 록 기타 리프들을 들으며 '힙합 비트 루프를 만들 때도 이런 멜로디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를 깨달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 시절 알게 된 록스타 중 한 명이 바로 서태지였고, 창모는 이번 새 작품에 그 90년대 공룡을 데려와 '태지'라는 곡에 녹였다. 물론 원작자 허락을 얻어 그가 샘플링한 건 록이 아닌 과거 '아이들' 시절 서태지가 사이프러스 힐을 표방한 'Come Back Home'의 소스. 창모가 잘하는 공격적이고 단호한 래핑이 일품인 '태지'는 스타일은 달라도 에너지에선 뒤지지 않는 'Hyperstar'와 함께 새 음반의 백미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다.

창모는 "랩에서 중요한 건 가사에 담기는 삶 자체"라고 했다. 그는 그 삶에서 번져 나오는 시 같은 가사,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메시지를 쓰고 싶어 하는데 "발밑에 비는 세상을 본다면 / 너의 가난은 농담이 될까"라는 노랫말을 가진 'Beretta'라는 곡은 그런 창모의 문학적 의지를 부분이나마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창모의 나이 올해로 스물일곱이다. 한때 그는 자신이 음악으로 승부를 볼 마지노 선을 스물여섯 살로 잡았었다. 자신에게 실패란 안 좋은 앨범을 냈을 때일 거라고 말한 창모. 당연히 그는 실패해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계속 재도전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신작에서 창모는 초심을 말했다. 뭔가 특별해 정신적으로 그 관문을 넘어야 될 것 같은 신비로움을 던져준 힙합에 대한 초심. 'No Regret'의 가사처럼 그래서 "이제까지의 줄거리는 예고편"이다. 지금부터 창모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되 "더 쌓기보단 비워내"면서 자신의 예술 세계에 깊이를 부여할 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Underground Rockstar'는 어쩌면 "결국엔 유명해진" 'Boyhood'와는 다른 차원에서 창모의 출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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