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Credit 정수진(칼럼니스트)
  • 입력 2021.11.02 09:26
  • 수정 2021.11.02 09:45
  • 댓글 0

박은빈 ㅣ 작지만 단단한 진정한 실력파

'연모'서 남장여자 역할에 새로운 방점 찍어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박은빈을 보면 단단한 재질의 것들이 연상된다. 쇠붙이 같은 날카로운 재질의 단단함은 아니고 뭐랄까, 숲속 낙엽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토리나 개울가의 자갈, 투명한 수정같이 작지만 단단한 것들. 보는 순간 화려하진 않아도, 만지고 있으면 은연중에 힘이 되는 따뜻한 단단함. 아동복 광고모델을 시작한 다섯 살부터 26년의 시간을 배우로 살아온 박은빈의 이미지다.

KBS2 월화 드라마 연모’(극본 한희정, 연출 송현욱)를 보는 가장 큰 이유도 박은빈이다. 지상파 드라마에 기대를 갖지 않은 지 오래지만 박은빈이 자신의 전공이라 할 만한 사극에서 남장여자 캐릭터를, 그것도 조선의 왕세자를 연기한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박은빈의 기나긴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명성황후’ ‘상도’ ‘무인시대’ ‘왕의 여자’ ‘태왕사신기’ ‘천추태후’ ‘선덕여왕’ ‘계백등 사극 드라마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성인이 된 후 맡은 구암 허준에서 허준의 부인 다희를 연기해 젊은 시절부터 노역까지 소화하는 기염을 토했고,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맡은 비밀의 문에서는 대선배인 영조 역의 한석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발성과 톤을 잡기 쉽지 않은 사극에서 박은빈은 오랜 시간 쌓아온 연기 내공으로 완벽한 발성과 톤으로 안정감을 보여왔다.

그렇다 해도 남장여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간 존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와 비교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연모의 이휘는 조선의 왕세자인지라 그간 있었던 남장여자 캐릭터 중 볼 수 없었던 신분이 높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기 때문.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 ‘선덕여왕의 덕만(이요원),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식(박민영),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김유정) 등 그간 등장한 사극의 남장여자 캐릭터들은 화원, 화랑, 내시 등 주로 동적인 활동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그러나 연모의 이휘는 임금 바로 밑 서열인 왕세자. 항상 위엄을 내보여야 하기에 오버스러운 행동이나 말투로 남자인 척 연기하는 건 금물이다. 단단한 발성과 눈빛과 표정, 즉 연기로 모든 것을 커버해야 한다는 소리다. 박은빈은 그 정면승부를 제대로 해내고 있는 중이다. “못 들었느냐? 이 나라 조선의 세자라는 내 말을. 어명이 아니면 나를 불허할 자는 없다!”라고 나직하게 외치는 순간, 숱한 남장여자 캐릭터가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의 젊은 이도(송중기)가 오버랩될 정도다. 작은 키와 몸집이라는 피지컬의 한계가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도 박은빈이다.

사극에서 진가를 보여온 아역 출신 배우들이 성인 연기자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아역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노출 등 파격적인 연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고. 반면 박은빈은 사극 구암 허준’ ‘비밀의 문에 잇따라 출연하며 자신이 익숙한 장르에서 자신이 잘하는 연기를 더 잘하는 방식으로 성공적인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무엇이든 가능한 법. 이후 선택한 청춘시대의 송지원은 그간 박은빈이 보여줬던 단아하고 단정하고 단단한 연기와 180도 다른 캐릭터로, ’이 배우가 이런 연기도 가능하구나감탄을 자아내며 박은빈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왈가닥 학보사 기자로 천연덕스럽게 음담패설을 즐기는 여자 신동엽이지만 내면에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복잡미묘한 송지원이 박은빈의 첫 변환점이었다면, “선은 니가 넘었어!”를 외치며 걸크러시를 선사했던 스토브리그의 이세영은 두 번째 변환점이 되었다. 프로야구단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이자 최연소 운영팀장이라는 다소 현실감 떨어지는 설정도 박은빈의 사자후가 돋보이는 연기로 설득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7년 만에 돌아온 사극 연모에서 박은빈은 청춘스타의 이미지에 도전한다.

사진제공=KBS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연기해왔으나 박은빈은 서른 살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춘스타들의 전매특허인 로맨스물의 출연이 드물었다. 전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클래식 음악학도로 분해 김민재와 꽁냥꽁냥한 커플 연기를 선보이긴 했으나 다소 아쉬운 시청률로 대중적으로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획득하진 못했던 것. ‘연모는 여자의 몸으로 세자가 되어 그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릴 적 인연이 있는 시강원 사서 정지운(로운)을 만나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 이야기이기에, 로맨스의 아슬아슬함이 한층 극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7화까지 방영된 내용에서는 동빙고라 불릴 만큼 서늘한 세자가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는 궁 내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습이 강했다. 세자를 향해 연모를 내보일 정지운에게 흔들리면서 시작될 아릿한 로맨스의 물결에서 박은빈이 얼마나 시청자의 연심(戀心)을 당길지가 중후반부의 시청 포인트가 될 것이다.

차기작으로 정해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활약할 예정이기에 연모에서만큼은 박은빈이 스타성 높은 청춘스타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미 연기 잘하는 배우로는 정평이 나 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