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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에 있는데 '걸스플래닛'엔 없는 것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 사진제공=Mnet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 사진제공=Mnet

‘오디션 왕국’ 엠넷의 전략은 늘 ‘투 트랙’이었다. 하나는 국민 대부분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국민 오디션류’의 프로그램, 다른 하나는 마니아층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새로운 문화요소를 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자는 오디션 열풍의 시작이었던 ‘슈퍼스타K’ 시리즈 그리고 아이돌 오디션의 시초를 알린 ‘프로듀스’ 시리즈였다. 후자는 힙합 열풍의 근원이 된 ‘쇼미더머니’ 시리즈였고 거기서 파생된 ‘고등래퍼’ ‘언프리티 랩스타’ 등의 프로그램이었다.

늘 전자의 오디션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주류 흐름을 바꾸며 엠넷의 입지를 올려준 프로그램이었으며, 후자의 오디션은 주류 가요계에 관심이 없는 마니아들 거기다 서브 컬쳐였던 힙합이나 춤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해줬다. 하나가 주류로의 확장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틈새공략에 이은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었던 것이다.

엠넷에는 그러한 두 기조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 전자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 받아 한국과 일본에 모자라 중국의 연습생까지 출연시킨 ‘걸스플래닛 999:소녀대전(이하 걸스플래닛)’이며, 후자는 SNS로 일어난 ‘댄스 열풍’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린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다.

두 종류의 오디션은 항상 엠넷을 끌고 오던 쌍두마차였지만 지금의 성적은 판이하게 엇갈린다. 시작부터 1% 이하의 시청률로 시작한 ‘걸스플래닛’은 지난 15일에 방송된 11회도 0.634%의 시청률로 소수점 후 세 자리까지 표기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지만 ‘스우파’의 경우는 지난 12일 방송이 2.5%를 넘겼다. 단순히 이들의 인기 차이는 시청률 수치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이른바 화제성이라 불리는 검색어 빈도, SNS 언급, 기사 조회수 등을 종합하면 ‘스우파’는 10대, 20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걸스플래닛’은 인기가 없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스우파’의 완전한 우위다.

두 프로그램의 우열은 초반 방송 전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걸스플래닛’은 비록 투표수 조작의 멍에가 있었지만 엠넷 오디션 제작 노하우가 집결된 작품이었다. ‘프로듀스 48’의 대혼란 이후 전열을 수습한 엠넷은 ‘I-LAND’나 ‘월드클래스’ 등의 유사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예열을 한 후 ‘걸스플래닛’을 론칭했다. 소녀들의 신선함 그리고 경쟁의 치열함 거기에 일본과 중국으로 참가자를 늘려 외연의 확장도 꾀했다.

'걸스 플래닛 999', 사진제공=Mnet
'걸스 플래닛 999', 사진제공=Mnet

하지만 해외 연습생의 출연, 특히 최근 악화된 젊은 세대의 반중감정은 프로그램의 발목이 됐다. 중국인 참가자들은 오디션 내에서의 독단적인 행동이나 프로그램 출연 전 역사왜곡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일찍부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소속사에 국적까지 겹쳐 소녀들 사이의 정치공학은 훨씬 복잡해졌지만 제작진은 이를 데뷔조를 위한 화학적 결합으로 유려하게 빚어내지 못했다. 반목을 위한 반목, 경쟁을 위한 경쟁이 거듭됐다.

‘스우파’의 경우에도 엠넷 오디션 특유의 자극적인 요소가 존재했다. 하지만 일단 대중들은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던 ‘스트릿 댄서’라는 새로운 직군에 더욱 열광했다. 이들은 젊은 층 사이에서는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의 댄서로 알음알음 이름을 알려가던 상황이었다. 마치 ‘쇼미더머니’가 처음 나올 때처럼 대중들은 랩이 아닌 춤으로 대결하는 크루들의 모습에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게다가 ‘스우파’는 팀전 즉 단체전이었다. 팀의 리더들은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고, 제작진 역시 팀 사이 또는 팀 안 개인 간의 반목보다는 갈등요소를 줄이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에 집중했다. 무대 위 모습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댄서들 개인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오디션의 요소에 집중하지만 ‘댄스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그들의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프로그램은 무리 없이 시청자를 유도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오디션은 경쟁이 체질이 된 대한민국 대중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의 형식 중 하나다. ‘국민 가수’가 사라져도 그 자리를 ‘국민래퍼’ ‘국민 트로트 가수’ ‘국민 국악가수’ 등이 채운다. 매번 노래 가사를 중심으로 한 언어적인 표현의 오디션 한계에 답답증을 느꼈던 대중은 말 한 마디 없이 폭발적인 비언어적 메시지를 전하는 춤에 열광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기존 성공코드를 답습한데다 시기적 도움도 받지 못한 ‘걸스플래닛’을 압도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스우파’의 성공과 ‘걸스플래닛’의 부침이 방송가 오디션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또 다시 춤을 소재로 한 아류작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과 아이돌 오디션의 인기는 ‘야생돌’ ‘걸스플래닛’의 침체를 포함해 한동안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걸스플래닛’에서는 없었던 것이 ‘스우파’에서는 분명히 있었다. 다른 점이 있었기에 ‘스우파’의 그녀들은 승승장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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