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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위에 핀 연꽃, ‘마이 네임’ 한소희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한소희의 선택은 옳았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연출 김진민, 극본 김바다)에 대한 기대치는 한소희에 있었다. ‘부부의 세계’의 내연녀 여다경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알고있지만’의 대학생 유나비로 하이퍼리얼리즘 로맨스를 선보인 한소희는 지금 주목받는 20대 여배우 중 첫손에 꼽히는 인물. 함께 출연한 박희순이 제작발표회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20대 여배우 한소희의, 한소희에 의한, 한소희를 위한 작품’이라 요약했을 만큼 ‘마이 네임’은 한소희라는 배우에 전적으로 힘을 싣는다. 

‘마이 네임’은 많이 본 듯한 클리셰로 쉬이 유추가 가능한 드라마다. 여고생 윤지우(한소희)가 국내 최대 마약조직 동천파의 일원이던 아버지 윤동훈(윤경호)의 죽음을 목격한 뒤 복수를 다짐하며 조직에 들어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경찰에 잠입한다는 이야기다. 복수를 다짐하고 언더커버가 되어 온몸을 불사르는 액션을 펼치는 주인공이 여성이기에 일견 신선해 보이긴 하지만, 가족에 대한 복수, 조직에 의한 언더커버, 그에 따른 필연적인 반전 등 이런 유의 누아르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와 장면은 죄다 등장한다. 한마디로 빤한데, 재미난 건 그렇기에 안심하고 안정적으로 시청할 수 있기도 하다. 

‘마이 네임’에서 한소희가 연기하는 윤지우 캐릭터를 보면 연상되는 인물들이 여럿 있다. 우선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으나 당시 무기력했던 점에서 영화 ‘레옹’의 ‘마틸다, ‘킬 빌’의 어린 오렌 이시이가 떠오른다. 어린 소녀가 인간병기로 키워지는 과정은 영화 ‘악녀’와 ‘마녀’도 오버랩된다. 즉, 한소희의 윤지우는 그간 존재한 여성 액션 캐릭터와 그 배우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셈이다. 해외는 배제하더라도 멀게는 ‘조폭마누라’의 신은경과 자타공인 ‘액션퀸’ 하지원, 무술과 복싱 등 리얼 액션으로 유명한 김옥빈과 이시영 같은 액션 여걸들이 뚜렷이 기억되는 가운데, 한소희만의 특장점을 내세워야 한다는 소리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액션 누아르에 도전하면서 한소희는 근육량을 10kg이나 증량했고, 액션신 대부분을 직접 소화하며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비주얼로 유명한 한소희가 ‘미모’를 포기했다는 것부터 이 배우의 욕심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멋들어진 액션이 아니라 처절하게 구르고 짓밟히고 달겨드는 짐승 같은 액션이 주를 이루는 ‘마이 네임’을 보면 한소희가 얼마나 이를 악물고 이 작품에 뛰어들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타고난 피지컬의 한계를 현실감 있는 날것의 액션으로 부수려 한 한소희의 모습이 자못 인상적이다. 

생각해보면 한소희는 짧은 연기 인생에서도 쉬운 선택은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하고 다음 작품인 ‘돈꽃’에서 재벌 2세의 내연녀로 등장한 것에 이어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무려 다른 사내의 아이를 임신한 조선의 세자빈으로 나오더니, ‘어비스’에서는 신혼집을 팔고 잠수를 타는 사기꾼으로 등장한 것을 기억해 보라. 자신의 불륜을 폭로하는 본처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만큼 뻔뻔스러웠던 ‘부부의 세계’ 여다경으로 한소희가 스타덤에 오른 뒤 터진 타투와 흡연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여배우에게 자못 치명적일 수 있는 이미지이기에 어린 시절 치기였다고 적당히 고개 숙이며 무마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때의 모습도 나고 지금의 모습도 나다’라며 담담히 인정하는 모습에 오히려 대중의 호감도를 상승했을 정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후 ‘알고있지만’에서 나이대에 맞는 대학생 역할을 맡았으나 수위 높은 애정신을 소화하는 파격 연기를 선보였고, 그 다음이 지금의 ‘마이 네임’이다. 고강도 액션은 물론 ‘윤지우에서 오혜진, 송지우를 거치는’ 정체성에 따른 변화와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는 동천파 보스 최무진(박희순)에게 보이는 부정(父情)과 연모 사이를 오가는 신뢰, 언더커버로 잠입해서 만난 동료 형사 전필도(안보현)에게 스며 들어가는 감정, 진실과 거짓 사이 누구를 믿어야 할지 괴로워하는 모습과 진실을 알게 된 이후 폭발하는 장면 등 곳곳에서 고강도 감정 연기를 펼쳐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마이 네임’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한소희가 연기한 캐릭터만큼은 열과 성을 다해 고군분투하는 게 절절히 느껴진다. ‘마이 네임’ 공개 이후 뜨거운 반응과 넷플릭스에서의 높은 순위도 한소희의 연기에 감응한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리라. 

‘부부의 세계’ 연출을 맡은 모완일 PD가 ‘첫 미팅을 하면서 비현실적으로 예쁜 외모에 놀랐다’고 소감을 남길 만큼 극강의 비주얼을 지녔음에도 그에 안주하지 않는 보기 드문 20대 여성 배우, 계산된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발걸음 자체가 결국 자신의 이미지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21세기 여성. 20대 여성과 예쁜 여배우에게 씌우는 각종 프레임을 선뜻 벗어 던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배우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재간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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